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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10월 28일

♧2009년 10월 28일 파키스탄, 최악의 폭탄테러 발생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2009년 10월 28일 파키스탄 북서변경주에서
최대 도시에서 최악의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01명이 사망했다.

처음으로 파키스탄을 방문하는 힐러리 클린턴(Clinton) 미국 국무장관이 파키스탄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이었다. 이날 북서변경주 주도 페샤와르의 가장 번화한 시장 마에나 바자르(시장)에서 차량 폭탄 테러가 발생해 최소 101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다. 사람들로 붐비는 좁은 시장 골목에서 0.3t이 넘는 고성능 폭탄이 터지면서 건물이 무너지고 불이 번져 시장통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피해자 구출 과정에서 건물이 추가로 붕괴하며 사상자가 더 늘어났다.

인명 피해 규모로만 보면 지난 2007년 10월 고(故) 베나지르 부토(Bhutto) 귀국 행렬에서 폭탄이 터져 140여명이 사망한 이후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테러 중 최대다. 이날 폭발이 일어난 곳은 탈레반과 알 카에다가 종종 공격 대상으로 삼는 시아파 무슬림 집단 거주지역과 인접해 있다.

사건의 배후를 자처한 단체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외신들은 이날 테러 공격의 배후로 '파키스탄 탈레반(TTP)'을 지목했다. TTP 조직원 1만여명은 거점 지역인 남와지리스탄에서 정부군 3만명과 11일째 대규모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이날 테러가 클린턴 장관의 수도 이슬라마바드 도착 소식이 전해진 직후 발생한 점도 미국을 향한 탈레반의 경고 메시지일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실어주고있다.



▶ 2010년 경부고속철도(KTX) 2단계 구간(부산~대구) 개통식

11월 1일부터 완전 개통하는 2단계 구간에 투입, 울산과 서울을 오가게 될 한국형 신형 고속철이 시험운행 도중 울산역에 정차해 있다.



▶ 2010년 중국 환경운동의 대부 량충제 회장 별세


▶ 2009년 진종오, 한국 최초 사격 월드컵파이널 2관왕




▶ 2009년 파키스탄, 최악의 폭탄테러 발생



▶  2005년  국립중앙박물관 이전 개관

            
  민족 문화의 전당인 새 국립중앙박물관이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에 28일 개관했다. 1997년 공사를 시작한 지 8년 만에 대역사를 마무리한 중앙박물관은 이날 오전 10시 개관식을 갖고 오후 2시부터 일반 관람객을 맞이했다. 개관식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내외를 비롯한 사회 각계 인사, 주한 외교사절, 외국 주요 박물관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중앙박물관은 부지 9만2900여 평, 건물 연면적 1만4000여 평, 전시 면적 8100여 평으로 건물 연면적 기준으로 세계에서 6번째 큰 박물관이다. 새 박물관엔 국보와 보물 150여 점 등 총 1만1000여 점의 문화재가 전시돼 있다. 관람료는 올해 말까지 무료이고 내년부터는 500∼1000원이다.

  1945년 광복과 함께 문을 연 이래 여섯 차례나 이사를 했던 중앙박물관이 광복 60년 만에 세계적인 수준의 전용 건물을 갖게 된 것이다. 개관 첫날 박물관엔 관람객 2만여 명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관람객들은 동아일보사가 특별 제작해 배포한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올 가이드’를 보면서 명품을 감상했다. 특히 국보 86호 경천사 10층 석탑, 국보 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 국보 191호 신라 황남대총금관 등의 명품과 최근 일본에서 되돌려 받은 북관대첩비 주변에 관람객이 많았다. 아사히TV와 아사히신문을 비롯해 일본 언론이 북관대첩비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을 취재하는 등 외국 언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 2004년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


▶ 2004년 법원 항소심서 조선일보의 ‘이승복군 사건 보도’ 사실로 판결



▶ 2000년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강원랜드 '스몰' 카지노, 강원도 정선 폐광촌에 국내 처음으로 개장




▶ 2000년 국내 민간항공 사상 최초인 대한항공 조종사 파업



▶ 1999년 '고문 기술자' 이근안씨 자수

자수한 ‘고문 경관’ 이근안씨가 1999년 10월 29일 새벽 서울지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1995년 수출 1,000억달러 돌파

28일중으로 연간수출액이 사상 처음 1천억달러를 돌파한다.
통상산업부는 올들어 26일까지 수출액이 9백92억3백만달러로 잠정집계됐다고 밝히고, 월말의 하루평균 수출액이 5억~6억달러인 점을 감안하면 28일중으로 연간수출이 1천억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64년 1억달러 달성에 이어 올해의 수출 1천억달러 돌파까지 걸린 31년은 세계 수출 역사상 가장 짧은 것이며, 이 기간중 연평균 수출신장률 25.1% 역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수출상품 수는 1백42개에서 7천6백48개로 54배가 늘었고, 수출대상국은 64년 41개국에서 2백12개국으로 5배로 증가했다.
한국의 1천억달러 돌파는 90년대 들어 1천억달러의 위업을 이룩한 벨기에, 홍콩, 중국에 이은 세계 12번째의 일이다. 그러나 올해 34%에 육박하는 수출신장률에도 불구, 무역수지 적자가 1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 1992년 오늘,다미선교회 '휴거'사건 발생.
'종말론자'였던 이장림(장님?)목사가,
'1992년 10월 28일 밤 24시'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신도들로부터 삥을 뜯었다!
그러나,
'이 날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1991년 한국-루마니아, 문화협정 체결
▶ 1986년 10.28 건대 점거농성 시위


▶ 1886년 '자유의 여신상' 제막

"지치고 가난한 사람들 내게 오라!/ 자유롭게 숨쉬기를 갈망하는 사람들/ 혼잡한 삶의 해안에 쓰러진 불쌍한 사람들/ 머믈 곳 없이 폭풍에 시달리는 사람들도 내게로 오라/
나는 황금빛 문 옆에 서서 등불을 들리라."

미국의 상징물인 '자유의 여신상'이 1886년 오늘 뉴욕항 초입의 리버티섬에 우뚝섰다. 오른손에는 햇불을 왼손에는 독립선언서 석판을 든 '새로운 거상'의 받침대에
시인 엠마 라자루스는 이렇게 헌시를
새겨넣었다.
높이 46m, 무게 225t,의 여신상은 프랑스 국민들이 미국독립 100주년을 맞아
미국에 준 선물.
독립전쟁 당시 미국과 프랑스가 동맹국이었음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여신상의 원래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 프랑스는 100주년 한해 전인 1875년 민간단체주도로 성금을 모금, 젊은 조각가 오귀스트 바르톨디에게 설계와 제작을 맡겼다. 에펠탑을 설계한 귀스타브 에펠도 참여했다. 재료와 구성은 비용과 운송을 고려해서 철골구조 위에 얇게 편 구리판을 씌우는 방법을 채택했다. 그러나 진척이 늦어져 조립은 1884년에야 끝났다.
여신상은 한동안 파리에 있다가 이듬해 완전히 해체한 뒤 항구로 옮겨졌고, 다시 배로 미국으로 운반됐다.
결국 1백주년에서 10년 늦은 1886년에야 '베들러'섬에 세워졌다.
'베들러'섬은 '리버티'섬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뉴욕의 '자유의여신상'이 건립된 3년 뒤 파리의 미국인회가 프랑스 혁명100주년을 경축, 실물에 4분의 1 크기인 여신상을
파리 센강의 '시뉴섬'에 세워 빚을 갚았다. 자유의 여신상은 '911테러' 이후 한동안(3년여) 폐쇄됐다가 다시 개방되기도 했다.
영원히 꺼지지않는 자유의 햇불이되길
기대해 본다!



▶ 1982년 스페인 총선에서 사회노동당 승리
▶ 1982년 포르투갈, 군정에서 민정으로 이양
▶ 1982년 이스라엘,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서 축출
▶ 1980년 고고학회, 경남 욕지군도서 중석기 문화유적발굴, 한국고고학 전국대회서 보고
▶ 1980년 전두환대통령, 국가보위입법회의 의원 81명 임명
▶ 1980년 사우디아라비아 대(對)리비아 단교 선언
▶ 1977년 자연보호협의회 발족


▶ 1977년 오늘,
영국의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즈'
첫 정규 앨범 발매!
1975년 런던에서 결성!





▶ 1974년 서독-소련 정상회담
▶ 1973년 이집트 작가 타하 후세인 사망
▶ 1963년 북한, 노동신문을 통해 소련을 `수정주의`로 비판
▶ 1962년 소련, 미국에 굴복하고 쿠바기지 철수를 명령
▶ 1958년 요한 23세, 제262대 로마 교황에 선출



▶ 1955년 마이크로소프트사 사장 게이츠 출생, 흔히 빌게이츠라고 불림



▶ 1951년 육군대학 창설
▶ 1947년 공창(公娼)폐지령 공포
▶ 1940년 이탈리아군, 그리스 침공
▶ 1937년 몽고 자치정부 수립



▶ 1927년 대하소설 `토지`를 펴낸 소설가 박경리 출생
   - 높고 넓은 한국소설의 한 봉우리, 박경리  






▶ 1922년 무솔리니, 로마 진군

1922년 10월 28일 이탈리아 파시스트당의 우두머리 베니토 무솔리니가 사병 조직인 ‘검은 셔츠단’ 4만여 명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했다.

  파스타 임시수상이 이끄는 정부는 무력했고,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무솔리니를 수상에 임명해 그의 쿠데타를 용인했다.

  1차 세계대전의 승전국이면서도 전리품 배분에서 소외되어 얻은 게 없다는 상대적 박탈감과 경제 파탄의 위기감 때문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무솔리니의 광기를 지지했고 이탈리아는 이후 2차대전 패망까지 몰락의 길로 치달았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블로거 ohyh45


                 - 베니토 무솔리니와 아돌프 히틀러




▶ 1919년 미국의회, 금주법 가결
▶ 1914년 종이 크로마토그래피를 개발한 영국의 싱 출생. 1952년 노벨화학상 수상


▶ 1914년 오늘,
미국 미생물학자 '조니스 솔크'태어남.  소아마비백신개발! 조니스 솔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했지만, 그는 억만장자를 포기하고 특허를 내지 않았다.
'진정한 살신성인'이었다.
그는 "햇빛도 특허를 내야 하나요?"라고 했다고 한다.
미국의 면역학자 조니스 솔크(1914 ~1995) 소아마비백신을 개발해 전 세계 어린이들이 척수성소아마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게 해 준 장본인이다.척수성소아마비는 어린이의 척수신경의 폴리오 바이러스가 침범해 수족마비증세를 일으키는 전염병인데
20세기 초까지 소아마비는 치사율이
5%가 넘을 정도로 어린이에게 매우 치명적인 질병이었다.
조니스 솔크박사가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하던 1940년대 말 무렵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날 그는 가방 하나만 메고 연구실을 나와 2주간 이탈리아 수도원으로 여행을 떠난다. 너무 오랫동안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다보니 해결책도 안 나오고
삶도 황폐해지는 것 같아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이다. 그는 소아마비백신에 대한 생각은 잊은 채 13세기에 지어진 이탈리아의 오래된 성당들을 방문하면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했다. 그러던 중 불현듯 원숭이의 신경세포에서 얻은 폴리오 바이러스의 활동을 억제할 방안을 생각해 낸다.
약간의 글리세린과 포르말린을 이용하면 바이러스활동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을 스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성당에서 말이다.
그는 여행을 중단하고 바로 돌아와
동물실험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테스트 해 본다.
결과는 대성공 그는 이 아이디어로
소아백신을 개발한다. 여러 제약회사에서 거액을 제안을 해 왔지만, 그는 "누구도 태양에 특허를 걸 권리는 없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은 소아마비로부터 자유로울 권리가 있다."
수년간 씨름하던 소아마비백신 아이디어가 연구실에 선 안나오더니 13세기 오래된 성당 안에서 불현듯이 떠오르는 것으로 보아 "천장이 높은곳에서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 같다" 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솔크연구소의 모든 연구실에 천장 높이를 3~4m 정도로 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샌디에이고에 위치한 솔크연구소는 세상에서 가장 천장이 높은 연구소 중 하나로 자리하게 된다.



▶ 1913년 독일-터키 군사협정 체결
▶ 1912년 동경에서 유학생학우회 창립
▶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 발족



▶ 1886년 '자유의 여신상' 제막

1886년 10월 28일 미국 뉴욕 항 어퍼 만 리버티 섬에서 자유의 여신상 제막식이 있었다.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과 프랑스의 친목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다. 전체 높이가 92m이고 높이 치켜든 오른손에 횃불을 쥐고 있으며,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이라는 날짜가 새겨진 자유의 선언을 상징하는 서판을 들고 있다. 발코니까지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며 거기에서부터 전망대인 머리부분까지는 나선형의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받침대 입구에 있는 현판에는 받침대 건조 기금 모금을 위해 에머 래저러스가 지은 <새로운 거상>(1883)이라는 소네트가 새겨져 있다. 받침대 부분에는 미국 이민박물관(1972)이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에두아르 드 라불레가 남북전쟁 후 자유의 여신상 건립을 제의했고, 프랑스 국민들이 기금을 모아 1875년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의 지휘로 프랑스에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높이 46.1m, 무게 225t의 완성작을 1885년 분해해서 배에 실어 뉴욕으로 가져왔으며, 받침대는 미국의 건축가 리처드 모리스 헌트의 고안으로 나중에 완성되었다. 이 받침대 위에 자유의 여신상이 올려져, 10월 28일 클리블런드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제막되었다.




▶ 1837년 일본 도쿠가와 바쿠후(幕府)의 마지막 쇼군(將軍) 도쿠가와 요시노부(德川慶喜) 출생
▶ 1707년 일본, 호에이(寶永) 대지진
▶ 1704년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 사망


▶ 1636년 오늘, 미국 하버드대학교 개교.



▶ 1492년 콜럼버스 쿠바 발견





https://youtu.be/lgP95aLonYo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