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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11월 23일

✿ 1998년 11월 23일
경주시에서 ‘제2안압지’로 추정되는 통일신라시대
대규모 인공연못 발굴

경북 경주시에서 제2의 안압지로 추정
되는 통일신라시대(서기 8~9세기)대규모 인공연못
유적이 1998년 11월 23일 발굴됐다.

이 유적에서는 돌로 축대를 쌓은 인공섬
과 이곳에 누각이 들어섰던 건물터, 섬과 육지를
연결했던 다리흔적 등이 확인됐다.

영남매장문화재연구원이 1998년 10월
부터 발굴한 이 유적은 경주시 용강동 용
황초등학교 건축 부지에 자리잡고 있었다.

발굴단에 의하면 바닥에 흙을 다진 흔적
이 확인됐고, 섬 주변에 돌을 쌓아 호안
(연못석축)을 만든 흔적이 남아있으며, 다리가 발굴된 것으로 보아 이곳이 인공 연못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연못의 크기는 1,200여평이며 섬 크기는 300여평,
섬의 호안 둘레는 50여m이다.

누각 추정 건물은 큰 기둥이 3개 놓인
3칸 짜리로, 서기 8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귀신 무늬 기와(귀면와)2점과 막새 기와 100여점이 출토됐다. 귀면와는 당시 왕궁에서 사용하던 것이다.

학계에서는 ‘삼국사기’에 ‘궁 안에 큰 연못
을 팠다’는 기록이 문무왕조 14년(서기 674년)과 경덕왕조19년(서기 760년)에 각각 기록된 것으로
비추어 이 유적이 경덕왕 때 만든 것으로 추정했다.




▶2011년 외규장각 도서 반환 기여
‘직지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 별세



▶2010년 북한, 연평도에 해안포 포격

11월 23일 북한은 우리의 평화로운 섬마을 연평도에 170여 발의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해오던 북한이 우리나라를 공격할 빌미를 만들기 위해 국군과 주한 미군의 육·해·공군 연합 호국훈련을 핑계로 평화로운 연평도를 포격했던 것입니다.

북한은 연평도 포격 이후에도 “역적패당에게 연평도 불바다와는 대비도 되지 않을 강력하고 무자비하며 섬멸적인 징벌을 안기고야 말겠다”며 끊임없이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2009년 산림청 헬기 추락 사고

2009년 11월 23일 오전 10시 30분쯤 비행교율을 위해 이륙했던 산림항공관리소 전남영암지소 소속 헬기가 호수에 추락해 탑승자 3명 전원이 사망했다.
산림항공관리소 전남영암지소에서 이륙한 헬기는 낮 12시 15분쯤 전남 영암군 삼호읍 지역 상공에서 통신이 두절됐고, 오후 2시25분쯤 전남 영암군 삼호읍 오복마을 앞 영암호 둑 인근에서 70도 각도고 빠진 채로 발견됐다. 소방당국은 헬기가 오후 1시쯤 호수로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헬기 안에는 박모(52) 교관 조종사와 이모(46) 부기장, 또 다른 이모(44) 부기장 등 3명이 타고 있었으나 발견 당시 모두 숨을 거둔 상태였다.
이번 비행은 부기장들이 기장이 되는 데 필요한 일명 ‘부기장 비행교육’ 중 하나였으며, 이들은 사고지점인 전남 영암군 영암호에서 물을 담아 나르는 과정을 교육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헬기가 정지한 상태에서 물을 퍼 올리는 ’담수’(湛水) 과정은 산불진화의 필수단계로 항공전문가들에 따르면 고난도의 기술이라고 알려져있다.
사고 헬기는 러시아산 기종 '까모프(KA-32T)'로 산불진화가 주 임무인 헬기다. 1994년 국내에 처음 들어왔으며 옛 소련에 빌려준 경협차관을 받지 못하면서 대신 현물 상환 조건으로 30대가 들어왔다. 뒤 꼬리 날개가 없는 유일한 헬기로 최대이륙중량 1만 1,000㎏, 기본중량 6,640㎏, 최대 시속 230㎞ 등이며 탑승인원은 18명, 물탱크 용량은 3천ℓ가량으로, 살포폭은 18~55m다. 산림청 본부 4대, 영암 4대, 양산 4대, 원주 4대 등 산불진화용 헬기로 가장 많이 배치됐다. 2001년 5월 17일 경북 안동에서 양산 산림항공관리소 소속의 같은 기종 헬기가 산불진화 도중 추락해 조종사와 정비사 등 3명이 숨지기도 했다.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는 119구조대원들.



▶2008년 22명 잠자던 비무장지대
GP 내무반에 수류탄 폭발사고

https://youtu.be/DhzpOlMBUqk



▶2008년 원로 안무가 배명균씨 별세
▶2004년 미국 의회, 북한 인권
관련 예산 첫 통과
▶2000년 ‘그룹 테크놀러지’ 개념
정립한 재미 과학자 함인영 교수 별세
▶1993년 시인 김광균 사망
▶1990년 미국, 시리아와 13년 만의
정상회담
▶1990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공화국 대통령 내한



▶1988년 전두환 전(前) 대통령
대국민사과문 발표 후 백담사 은둔

백담사에 은둔하고 있는 전두환 전대통령(가운데) 내외.





▶1984년 판문점서 관광안내원 소련
청년, 월남 망명 요청
▶1983년 미국 중거리 핵미사일
퍼싱2 서독 도착
▶1983년 호요방 중국 공산당
총서기 일본 방문
▶1983년 레바논 이란과 단교
▶1981년 이춘덕, 제1회 계산기능대회
(일본)서 세계계산왕에 당선
▶1981년 가야시대 철갑,
경남 김해에서 발견
▶1980년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진도
7.2의 지진 발생, 4,800명 사망
▶1977년 이영희 교수, `8억인과의 대화`
내용 일부 반공법 위반협의로 구속



▶1976년 앙드레 말로 사망

말로 [Malraux, Andre, 1901.11.3~1976.11.23]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말로가 1976년 11월 23일 파리에서 사망했다. 1901년 파리에서 태어난 말로는 동양어학교에서 산스크리트어를 배우고 일찍이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아 작품을 발표했다.

  말로는 처음에는 니힐리즘에 사로잡혀 한때 인간의 반항행위를 위대하다고 생각했으나 이윽고 그것이 허무함을 깨닫게 된다. 그는 이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의 조직과의 연체성을 부르짖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도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엘리트들이 문화를 창조, 계승함으로써 인간의 의의를 확립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결국 크메르문화의 탐험을 시작으로 중국혁명, 스페인내전, 반나치운동 등의 저항운동을 거쳐 2차대전후 1958년 드골이 정권을 잡자 정보장관, 문화장관까지 역임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파란 많은 그의 생애는 외관상 모순에 넘쳐 있지만 작가로서 그는 시종일관 하나의 문제를 끈질기게 추구했다. 그것은 바로 절대적인 인간긍정과 노력이며 그것이 바로 그의 행동주의를 체계지운 엘리트이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반나치운동을 벌이며 집필한 ‘경멸의 시대(1935)’와 스페인내전 중 공화파 의용군으로 참가했던 체험을 바탕으로 한 ‘희망(1937)’, 그리고 ‘예술의 심리(1950)’ ‘신들의 변모(1957)’ 등이 있다. 말로는 1969년 드골의 실각과 더불어 다시 저작활동에 들어가 ‘反회고록’을 발표했다.




▶1974년 미-소 정상회담
블라디보스톡서 개최
▶1974년 영화배우 김지미, 파나마
국제영화제서 여우주연상 수상
▶1971년 중국,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선출
▶1968년 서울 남대문시장에
화재. 775점포 소실
▶1966년 중국 베이징 시내에 국가 주석
유소기를 비판하는 대자보 첫 등장
▶1961년 아르헨티나서
여객기 추락 52명 사망
▶1961년 브라질 14년 만에
소련과 외교관계 재개
▶1960년 제4차 개헌
(소급혁명입법) 통과
▶1958년 가나-기니 양국
합병협정에 조인
▶1955년 미국 원자력위,
소련서 최대의 핵폭발을 발표
▶1953년 미-일간 최초의
TV위성중계 실험방송 성공
▶1950년 국회, 2대 국무총리에
장면 인준
▶1946년 정당등록제 실시
▶1946년 남조선노동당(남로당) 결성
▶1945년 신의주학생 반공의거

신의주 학생의거의 주요인물

▶1945년 조선일보 복간
▶1945년 매일신보, 서울신문으로 속간
▶1945년 상해임시정부 요인 14명
(김구 포함) 환국
▶1937년 임시정부, 호남성 장사로 이전



▶1936년 사진잡지 ‘라이프(Life)’창간

《라이프》(Life)는 미국 뉴욕에서 발간되었던 시사 화보 잡지이다.
1936년 헨리 루스에 의해 창간되었으며 보도사진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국제 사건에 대한 사진을 비중있게 다루었다. 광고 급감과 인터넷의 영향으로 2007년 폐간하였고 현재는 웹사이트로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에서 주인공 월터미티가 근무하는 잡지사가 Life지. 온라인잡지사로 바뀌는 것이 영화의 주 배경이다.





▶1934년부산 영도다리 개통
영도다리는 일본인 마스다 준이 설계하고 부산 시민의 눈물과 땀으로 지어진 동양 최초의 개폐식 다리

1934년부산 영도다리 개통

부산의 영도대교(影島大橋, Yeongdo bridge)가 개통하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이네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지만/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에 등장하는 영도다리는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고단한 삶, 그 자체였다. 황급히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사람들이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이기도 했고 인생살이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푸른 파도 위로 몸을 던지던 한 많은 다리이기도 했다.

막막한 피난살이의 애환과 눈물, 그리고 끝까지 놓을 수 없는 희망의 상징이던 영도다리가 1934년 오늘, 개통됐다. 영도다리가 처음부터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국내 최초의 도개교(跳開橋)였기 때문. 전기로 육중한 다리 상판을 하늘을 향하도록 들어 올리면 그 아래에 대기중이던 배들이 줄지어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진풍경을 보기 위해 개통식에 몰려든 인파는 6만여명. 당시 부산 인구가 18만 여만명이었다고 하니 구름 같은 인파였다. 영도다리는 오전, 오후로 나눠 각 세번씩 몸체를 들어올렸다. 다리를 올리는데 5분, 선박 통과에 5분, 다리 내리는 데 5분. 도합 15분 사이에 연출되는 장관을 구경했다는 게 큰 자랑이었다.

영도다리는 일제치하의 설움도 절절히 느꼈겠지만 한국전쟁의 아픔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다리는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피란민들은 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부산광역시의 상징적인 다리.
개통 당시 이름은 부산대교.
대한민국의 유일한 도개교로,
1966년 전차궤도로 도개를
부산의 영도대교(影島大橋, Yeongdo bridge)가 개통하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이네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지만/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대중가요 ‘굳세어라 금순아’에 등장하는 영도다리는 한국전쟁 피난민들의 고단한 삶, 그 자체였다. 황급히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사람들이 만나기로 한 약속장소이기도 했고 인생살이의 끈을 놓아버린 사람들이 푸른 파도 위로 몸을 던지던 한 많은 다리이기도 했다.

막막한 피난살이의 애환과 눈물, 그리고 끝까지 놓을 수 없는 희망의 상징이던 영도다리가 1934년 오늘, 개통됐다. 영도다리가 처음부터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은 국내 최초의 도개교(跳開橋)였기 때문. 전기로 육중한 다리 상판을 하늘을 향하도록 들어 올리면 그 아래에 대기중이던 배들이 줄지어 지나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 진풍경을 보기 위해 개통식에 몰려든 인파는 6만여명. 당시 부산 인구가 18만 여만명이었다고 하니 구름 같은 인파였다. 영도다리는 오전, 오후로 나눠 각 세번씩 몸체를 들어올렸다. 다리를 올리는데 5분, 선박 통과에 5분, 다리 내리는 데 5분. 도합 15분 사이에 연출되는 장관을 구경했다는 게 큰 자랑이었다.

영도다리는 일제치하의 설움도 절절히 느꼈겠지만 한국전쟁의 아픔을 가장 뼈저리게 느꼈다. 다리는 헤어진 가족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붐볐다. 피란민들은 다리 난간을 부여잡고 피눈물을 흘려야 했다.

부산광역시의 상징적인 다리.
개통 당시 이름은 부산대교. 대한민국의 유일한 도개교로,
1966년 전차궤도로 도개를 잠시 중단했다. 이후 전차가
영도에 다니다가 전차가 운행 중단되고, 기존의 교량이
노후화 되면서 기존 교량을 철거 한 뒤 다시 공사를 하여
2013년에 도개식 다리로 다시 재개통되었다. 과거엔
여러 차례 도개를 했으나, 현재는 매일 오후 2시부터
15분까지 한 번만 도개한다.잠시 중단했다. 이후 전차가 영도에 다니다가 전차가 운행
중단되고, 기존의 교량이 노후화 되면서 기존 교량을
철거 한 뒤 다시 공사를 하여 2013년에 도개식 다리로
다시 재개통되었다. 과거엔 여러 차례 도개를 했으나,
현재는 매일 오후 2시부터 15분까지 한 번만 도개한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의 애환 등 부산의 굴곡진 근대사를 상징하는 영도다리(영도대교)의 상판이 47년 만인 27일 오후 다시 들어 올려진 뒤 해경 선박이 지나가고 있다. 국내 유일의 도개 기능 교량인 영도대교는 개통식 이후 매일 낮 12시부터 15분간 상판을 들어올린다. 2013.11.27.



▶1934년영국의 극작가 아서 윙
피네로 사망
▶1932년 고당 조만식 선생
조선일보사 제8대 사장에 취임
▶1924년 조선일보, 조-석간제 실시
▶1922년 조선민립대학기성회 발기
▶1920년 대한독립군단 결성
▶1914년 시인 이용악 출생
▶1895년 시조시인 이세보 사망



▶1814년 미국의 독립선언문 서명자,부통령 게리 사망

미국의 독립선언문 서명자, 부통령 게리 (영어: Elbridge Thomas Gerry)미국 워싱턴 D. C.에서 사망(1744년 7월 17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마블헤드에서 출생~)
미국의 제5대 부통령(1813년 3월4일~
1814년11월23일) 1810년 6월 10일부터 1812년 3월 4일까지 제9대
매사추세츠주 주지사를 지냈으며,
1812년 자기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분할한 이른바 '게리맨더링사건'으로 유명하다.
18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E.게리가 상원선거법 개정법의 강행을 위하여 자기당인 공화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분할하였는데, 그 모양이 샐러맨더(salamander:도롱뇽)와 같다고 하여 반대당에서 샐러 대신에 게리의 이름을 붙여 '게리맨더'라고 야유하고 비난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1553년 이언적 사망


https://youtu.be/I2r9K906Us4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