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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12월 10일

✿2010년 12월 10일
김대중 노벨 평화상을 수상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오늘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 주의와 인권
을 신장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증진 시킨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오슬로 시청 메인홀에서 있은 시상식
에는 하랄드 5세 노 르웨이 국왕과 각국 외교사절 등 1,100여명이 참석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군나르 베르게 노벨
위원회 위원장으로 부터 노벨평화상 인증서와 금메달, 900만 크로네, 우리 돈으로 12억원 상당의 상금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1986년부터 15번 연속으로 후보
에 오른 끝 에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김 대통령은 아시안인으로서는 일곱
번째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가록됐다.



▶ 2013년 오늘,
‘여러분 안녕들하십니까?’ 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서울대 대자보가 요즘 이슈를 보여 주고
있어서 모셔와 봅니다.

서울대 대자보가 화제다. 물론 조국 후보 딸에 대한 대자보 이야기가 아니다. 청문회도 거치지 않고 그저 흘러나오는 이야기들에 휩쓸려 돌멩이들을 던지는 행태에 대한 비판도 있지만, 그들이 정말 분노할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가온다.

서울 총학생회가 나서 조국 교수를 비판하며 논란은 더욱 복잡해졌다. 총학생회장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조국 교수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학교의 주최자들이 모두 야당에 속해 있는 자들이라는 점도 논란의 핵심이다.

"대한민국의 또 다른 청년들이 전철역에서, 화력발전소에서, 실습장에서 노동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 그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무시하거나 왜곡하거나 냉소한 언론이 서울대와 고려대의 몇백 명 학생들의 집회를 두고는 '청년들의 분노'를 대변하는 일이라며 연일 적극 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걸 두고 우리는 조금도 조금도 부끄러운 마음 없이, 그저 당당히 촛불을 들면 족한 것인가. 우리의 분노를 두고 '청년세대의 정의감'을 얘기하기에는 우리가 못 본 체하고 모른 체한,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도 제대로 누려보지 못한 청년들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27일 조 후보자가 졸업한 서울대 학생회관 앞 게시판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대자보가 게재됐다. 글의 내용은 정의의 위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사회적 불평등과 문제에 침묵하거나 외면하던 자들이 조국 교수 딸 문제에 대해 이렇게 들고 나서는 모습에서 이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청년 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허무하게 죽어갔다. 그 죽음은 분명 사회적 모순이 만든 살인이다. 하지만 이 사회적 타살에 해당 학교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아니 관심도 없어 보였다. 몇백 명 학생들 집회를 두고 '청년들의 분노'를 대변한다고 연신 읊어대는 언론에 대한 분노도 곁들였다.
"다수 청년들이 처해 있는 구조적 모순과 문제를 해결하려는 촛불인가, 아니면 우리들만큼은 나름 소소한 승리를 거둬서 학벌 타이틀을 따고 언론들의 주목도 받게 한 현 제도를 강화하기 위한 촛불인가. 우리가 외치는 정의가 포용하기 위한 정의인가 아니면 더욱 철저히 배제하기 위한 정의인가"

"조 후보자를 비호할 생각도 없고 나 또한 그가 자녀 문제에 대해 보인 태도에 철저한 반성을 촉구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그의 사퇴를 촉구하며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촛불집회를 열기 이전에 과연 얼마나 당당한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조 후보자 딸의 스펙과 커리어 관리를 두고 우리가 차마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는 거악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동안 손쉽게 잡아온 거악이 너무나 많은 것 아닌가"

"우리가 '청년세대'의 이루 말할 수 없는 박탈감을 느껴 그것을 대변하겠다고 하기에는 그동안 우리가 모른 체하고 눈 감아 온 청년세대의 현실이 너무 많고 어둡지 않나"

'K'라는 이름의 작성자는 "우리는 정말 당당한가, 우리가 조 후보자를 향해 외치는 정의는 과연 어떤 정의인가"라고 물으면서 서울대와 고려대 집회가 내세운 주제에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 과연 우리는 정당하게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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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과 배제 중 어떤 정의를 이야기하느냐며 소위 좋은 학교들 다니는 학생들이 외치는 정의에 대해 언급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것은 조 후보자를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누군가를 지지하기 위해 공격의 대상을 시위에 나선 학생들에게 쏟아내는 것이 아니다.

소위 SKY라고 불리는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는지 다들 잘 알고 있다. 과거처럼 그저 열심히만 해서 들어갈 수 없는 것이 이들 학교다. 엄청난 돈에 수많은 거악들을 저지른 결과물로 얻은 작은 트로피가 SKY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다. 이제 오직 자신의 노력으로 이들 학교에 갈 수 있는 학생은 소수라는 것이 구조적 모순이다.

과연 이들이 쟁취한 작은 성취와 현재 우리 청년 세대의 박탈감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다른 청년 문제에는 침묵만 하고 자신과 비슷한 방법을 취한 고위공직자 딸에만 민감하게 화를 내는 것일까? 이 기괴함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서울대 K는 그들에게 던지고 있다.


▶2010년여성 학생군사교육단 창설식
▶2010년노벨평화상 수상자 류샤오보
   (劉曉波), 75년 만의 궐석(闕席) 시상식




▶2008년국내 항공우주공학 선구 위상규
. 서울대 명예교수 별세
▶2000년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99년프란요 투즈만 크로아티아
   대통령 사망
▶1993년넬슨 만델라 노벨평화상 수상


▶1991년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서울)
▶1990년미국 석유왕 해머 사망
▶1990년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1988년국민일보 창간
▶1987년미국 바이올린 연주자
   하이페츠 사망
▶1982년소련, 우주인 211일의
   우주체공기록 세우고 귀환



▶1981년국회 내무위 통금해제
   건의안 가결




▶1979년테레사 수녀 노벨 평화상 수상


▶1978년베긴-사다트 노벨평화상 수상
▶1976년제20차 남북적십자
   실무회담(판문점)
▶1976년한적(韓赤) 북적(北赤)에
   성묘단교류 제의
▶1975년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 노벨평화상 수상

▶1973년한국-인도, 국교수립
▶1973년북한함정 서해 대청도
   부근에 계속 출몰. 긴장상태 조성
▶1971년광복 후 첫 민방공훈련 실시
▶1971년빌리 브란트 서독 수상
   노벨평화상 수상


▶1970년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 노벨 문학상 수상



▶1966년패티김·길옥윤 결혼
▶1963년한국-바티칸시국(市國) 수교
▶1962년황지선(黃池線) 개통
▶1961년소련-알바니아 국교단절 발표
▶1961년하마슐드 전 유엔사무총장에
   노벨평화상 수여



▶1960년박태선 장로교 신자
   1,000여명 동아일보사 습격
▶1957년시인 노천명 사망
▶1956년독립운동가 정이형 사망
▶1954년유엔총회, 중국의 한국전
   포로억류비난 결의안 채택
▶1952년알베르트 슈바이처
   노벨평화상 수상




▶1951년유엔총회 군축위원회
   설치안 채택
▶1950년50만 북한동포 남하 피난
▶1950년독립운동가 김규식 사망
▶1948년한미경제원조협정 체결



▶1948년제3회 유엔총회서
   세계인권선언 채택

세계 인권 선언(世界人權宣言,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은  인권에 관한 세계 선언문이다. 유엔 총회 결의 217 A (III) 이다. 413개의 언어로 번역되어, 가장 많이 번역된 유엔 총회 문건이다. 1946년의 인권장전 초안과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 그리고 1966년의 국제인권규약을 합쳐 국제인권장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세계 인권 선언은 유엔의 결의로서 비록 직접적인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 헌법 또는 기본법에 그 내용이 각인되고 반영되어 실효성이 클 뿐만 아니라 1966년 국제인권규약은 세계 최초로 법적 구속력을 가진 세계적인 인권 관련 국제법이다.  

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다.  

우리는 인류 가족 모두에게, 그들이 원래부터 존엄성과 남들과 똑같은 권리와 남에게 빼앗길 수 없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주어야만 자유롭고 정의로우며 평화적인 세상의 밑바탕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또한 오늘날 국가들 사이에서 친선 관계를 발전시키도록 장려하는 일도 참으로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유엔 총회는 사회 속에 사는 모든 개인과 모든 조직이 본 선언을 언제나 마음속 깊이 간직하면서, 가르침과 배움을 통해, 이미 독립해 있는 유엔 회원국들의 인민들뿐만 아니라 유엔 회원국들의 법적 관할 아래 있는 '식민지 영토'의 피식민 인민들에게도, 이러한 권리와 자유를 보편적이고 효과적으로 인정해 주고 지켜 주게 하려고, 모든 인민과 모든 국가가 '다함께 달성해야 할 하나의 공통적인 기준'으로서 이 '세계 인권 선언'을 선포하는 바이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당시 가입국 58개 국가 중 50개 국가가 찬성하여 채택되었다.




▶1948년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 사망
▶1946년헤르만 헤세 노벨문학상 수상




▶1946년`아가씨와 건달들`의 작가
   러니언 사망
▶1945년대한독립촉성총동맹 결성
▶1943년영국, 태평양함대 창설
▶1937년소련 외교관 레프 카라한 사망


▶1936년영국왕 에드워드8세,
   심슨부인과의 사랑 위해 퇴위

1936년 12월 10일 대영제국의 국왕 에드워드 8세가 퇴위했다. 월리스 위필드 스펜서 심슨이라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와 결혼하기 위해서였다. 두 번 이혼한 미국 평민과, 불과 10개월 전 대관식을 치른 총각 왕의 사랑을 영국은 결코 용서되지 않았다. 왕실과 귀족들의 압력도 거셌다.
10일 오후 3시30분 볼드윈 총리가 하원 단상에서 국왕의 칙어를 읽었다. "오랫동안 심사숙고한 결과 짐은 왕위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다음날 밤 10시 왕은 국민에게 결별 라디오 방송을 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내조와 뒷받침 없이는 국왕으로서의 중책과 의무를 다할 수 없다고 판단, 사랑의 품을 선택했다" 는 왕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 순간 에드워드 8세는 윈저공으로 격하됐다. 이로써 그는 영국 역사상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난 최초의 왕이 됐다.
1936년 1월 20일 영국 국왕에 즉위한 에드워드 8세(42)는 자신의 연인인 심슨 부인이 이혼녀라는 이유로 성공회 성직자들이 왕위와 사랑 둘 중 하나를 택할 것을 요구하자 결국 사랑을 택하고 프랑스로 떠나 버린 것이다. 윈저공은 결국 자신의 반려자와 프랑스에서 결혼했고 죽을 때까지 조국을 등진 채 주로 파리에서 살았다. 전 국왕 조지 5세의 장남으로 독신이었던 에드워드 8세는 조부인 에드워드 7세를 빼닮아 성격이 활달한 편이어서 왕으로서 자질을 높이 인정받았었다.
사람들은 심슨과 윈저공의 일화를 ‘세기의 사랑’ 으로 기억한다. 심슨 부인은 타임지에 의해 1936년 ‘올해의 인물’ 로 선정됐다.




▶1936년근대 희곡의 혁신자
   피란델로 사망 -
▶1934년 노벨문학상 수상




▶1935년경성 부민관 낙성식
▶1935년부민관 준공
▶1932년일제, 조선소작조정령 공포
▶1928년스코틀랜드릐 건축가,
   디자이너 매킨토시 사망
▶1926년유일한, 유한양행 설립
▶1922년안창남 모국방문 시범비행
▶1913년호남창의대장 이석용 체포
▶1913년타고르, 아시아 첫 노벨상 수상



▶1903년마리 퀴리, 제3회 노벨상 수상
물리학자 마리 퀴리



▶1902년나일강 애스완댐 완공



▶1901년한-프랑스 우체조약 비준
▶1901년제1회 노벨상 시상식



▶1877년소련, 플레부나 점령
▶1877년미국 보스톤에 전화 개통
▶1869년미국 와이오밍주,
   부녀참정권법 제정
▶1865년벨기에 첫번째 왕
  .레오폴 1세 사망


▶ 1799년  프랑스, 미터법 도입

​            
  1799년 12월10일, 프랑스가 미터법을 도입했다. ‘헷갈린다’는 반발이 없지 않았지만 소리를 못 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꼭 한달 된 나폴레옹의 권세가 두려워서다.

  강압적인 법령발표와 달리 준비는 치밀하게 진행됐다. 과학과 문물이 급속도로 발달하던 17세기부터 십진법 체계가 필요하다는 논란을 구체화하고 실행한 주역은 귀족 출신임에도 혁명에 적극 가담한 탈레랑. 혁명 이듬해인 1790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 십진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도량형 개발을 의뢰하고 자금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프랑스 과학자들은 북극에서 남극까지의 거리인 지구자오선의 2,000만분의1을 길이의 단위로 삼자는 데 합의했다. 문제는 프랑스 바깥은 실측방법이 없었다는 점. 결국 각국의 자료를 모아 합산하기로 정했지만 난제를 떠맡은 천문학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 각국의 단위가 무려 2만5,000여 가지에 달했으니까.

  7년간의 노력 끝에 결정된 새로운 십진법 도량형은 나폴레옹이 실각한 뒤 폐지 여론이 일었지만 끝내 살아 남아 분권적인 프랑스의 정치와 경제를 한데 묶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875년에는 17개국이 모여 국제표준으로 삼자는 미터조약도 맺었다.

  미터법이 법령으로 등장한 지 209주년. 미터법은 자유ㆍ평등ㆍ박애의 정신과 함께 프랑스혁명이 인류에게 남긴 최대 유산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도 2007년부터 평(坪)이나 근(斤) 같은 척관 단위 대신 미터체계를 법으로 강제하고 있다. 세계화에 뒤지지 않기 위해서다.

  전세계를 통틀어 미터법을 채용하지 않은 국가는 단 3개국뿐이다. 미얀마와 라이베리아ㆍ미국이다. 미터와 인치의 혼용으로 우주선이 폭발한 경험을 가졌으면서도 미국은 미터법을 외면하고 있다.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1018년거란, 제3차 고려 침입




https://youtu.be/tIqMMlOlY7E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 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