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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12월 31일

✿1961년 12월 31일
KBS TV 개국


서울중앙방송국으로 명명된 방송국에서 애국가로 시작하는 첫 실험 전파가 쏘아
올려진 것은 1961년 12월 24일 오후 6시
였다.
이후 일주일 동안 시험방송을 거쳐 공식
적인 개국 일자는 12월 31일 오후 9시로 확정되었다.박정희 최고회의 의장과 송요
찬 내각수반이 참여한 가운데 시작된 KBS 개국실황 중계방송은 임택근 아나운서가 진행했다.
역사적인 첫 아나운스먼트는“시청자 여러
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KBS 텔레비전 방송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KBS 텔레
비전의 첫 전파가 발사되는 역사적인 순간입니다.”였다.
공식 방송은 이렇게 시작했으나 해외
에서 들여온 카메라가 1대밖에 없어 며칠 동안은 불규칙적으로 방송하다가 1962년 1월 5일부터 하루 4시간 주 30시간의 정규방송을 시작했다.
그래도 여전히 녹화기가 마련되지 않아 모든 프로그램은 생방송으로 제작되었다. 초기에 외화의 편성 비중이 높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생방송을 하는 데 가장 어려운 건 드라마
였다. 1962년 1월 26일 방송된 첫 드라
마는 유치진 원작, 차범석 각색의 드라마 ‘나도 인간이 되련다’로 최상현, 나옥주, 백성희 등이 출연했다.
KBS는 1962년 한 해 동안 총 9편의 드라
마를 방영했으나 생방송으로 제작하다 보니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KBS의 개국에 이어 TBC(1964.12.7)와 MBC(1969.8.8)가 각각 개국하면서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TV시대를 맞았다.
KBS는 1976년 10월까지 남산 사옥
에서 방송을 송출하다가 1976년 11월
1일 여의도 새 방송 종합청사에서 방송 자동송출을 시작했다.
1980년에는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에 따라 민영방송이던 TBC는 KBS에 흡수 통합되어 KBS2가 되고, MBC는 KBS의 주식 70% 강제 인수로 공영방송이 되면
서 민영시대가 막을 내렸다.
 

▶2010년방통위, 종합편성채널 사업자 선정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 선정자를 발표했다.

종합편성(이하 종편)사업자로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 4개사가 최종 선정되며 방송시장은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미디어 빅뱅’ 시대를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31일 오전 방송통신위원회는 4개의 최종 종편 사업자를 발표했다. 종편 사업자는 지상파 3사처럼 뉴스, 오락, 드라마 등 전 분야의 방송을 모두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상파와 종편 사업자간의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시청자는 기존 지상파 외에 4개의 지상파와 유사한 방송사들로 인해 채널 선택권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방송사들간의 지나친 경쟁은 오히려 콘텐츠의 질적 저하를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정된 광고시장 속에서 광고유치를 위해 사업자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 선정성을 부추기는 방송으로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으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과 방송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보도부분에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신문사업자들의 방송 진출이 시너지 효과를 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종편사업자로 보수언론이 대거 선정되며 한 쪽에 치우친 방송이 될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2006년인도네시아 여객선 세노파티호 침몰 460여명 사망실종
▶2006년1975년 납북어부 최욱일씨 탈북 중국서 부인과 통한의 상봉
▶2001년혜암 조계종 종정 입적
▶2000년세계최초의 `인터넷 엑스포` 일본에서 개막
▶1999년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사임,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직무대행
▶1995년수인선 협궤열차 폐쇄


▶ 1995년  워싱턴포스트 선정 '1천년동안 역사상 최고와 최악'




▶1991년한국-중국, 무역협정 체결



▶1991년남북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문 채택
▶1989년전두환 전대통령 국회 출석
▶1984년한국과학기술대학(KIT) 설립
▶1983년나이지리아, 부하리소장이 주도하는 쿠데타 발생
▶1982년폴란드 계엄령 정지
▶1981년가나에 군사쿠데타, 리만 대통령 축출
▶1980년합동통신(1945.12.20 창간), 동양통신(1952.4.20 창간) 종간


▶ 1980년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 문화비평가 맥루언(Mcluhan, Marshall) 사망

   맥루언(맥루한) [Mcluhan, (Herbert) Marshall, 1911.7.21~1980.12.31]
   캐나다의 통신정보이론가·교육자.

   "매체가 곧 메시지이다"라는 그의 경구는 텔레비전과 컴퓨터 등의 전자정보매체가 사회학과 예술·과학·종교 등의 영역에서 인간의 사고와 사상을 형성하는 데 잠재적 영향력을 미친다는 그의 견해를 압축하고 있다. 그는 서적 등의 인쇄매체는 장차 소멸할 수밖에 없는 제도라고 보았다. 맥루안은 1946년부터 죽을 때까지 토론토대학교에 재직했다. 1952년에 그 대학의 영문학과 정교수가 되었고, 1963년부터는 문화기술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다. 또한 그는 인기있는 대중연설가이기도 했다.

   그의 저작으로는 〈기계 신부(新婦):산업사회 인류의 민간 전설 The Mechanical Bride:Folklore of Industrial Man〉(1951)·〈매체에 대한 이해:인간의 확장 Understanding Media:The Extensions of Man〉(1964)·〈매체가 곧 메시지이다:그 영향의 목록 The Medium Is the Massage:An Inventory of Effects〉(퀜틴 피요르와 공저, 1967)·〈상투어에서부터 원형까지 From Cliché to Archetype〉(윌프레드 웟슨과 공저, 1970)·〈교실로서의 도시 City as Classroom〉(캐스린 허천 및 에릭 맥루안과 공저, 1977) 등이 있다. 맥루안은 20세기 사회의 자기변혁에 관한 비판적 견해로 당대의 인기있는 예언자가 되었다.

   [20C사상을 찾아서]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한

   마샬 맥루한만큼 평이 엇갈리는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금세기 최고의 미디어 이론가'라는 찬사에서부터 '바보상자(TV)의 도사'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비평가 톰 울프의 말처럼 "만약에 그가 옳다면 어쩔 것인가?" 프로이드나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우리 시대 최고의 사상가로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란한 은유에도 불구하고 맥루한의 이론을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그는 모든 매체가 인간 능력의 확장이라고 본다. 책은 눈의 확장이고, 바퀴는 다리의 확장이며, 옷은 피부의 확장이고, 전자회로는 중추신경 계통의 확장이다. 감각기관의 확장으로서 모든 매체는 그 메시지와 상 관없이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준다. 말하자면 매체가 곧 메시지이다. 같은 메시지라고 하더라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말하는 것과 신문에 나오는 것, 그리고 TV로 방송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결국 매체가 다르면 메시지도 달라지고 수용자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여기서 맥루한은 모든 매체를 그것이 전달하는 정보의 정세도와 수용자의 참여도에 따라 쿨(cool) 미디어와 핫(hot) 미디어로 구분한다.

   맥루한에 의하면 신문과 영화, 라디오는 핫 미디어이지만 텔레비전, 전화, 만화등은 쿨 미디어이다. 쿨 미디어는 핫 미디어보다 정보의 정세도가 낮아서 수용자의 높은 참여, 즉 더 많은 상상력이 요구되는 매체이다. 맥루한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매체가 무엇이냐에 따라 문명의 성격도 달라진다고 보았다.

   맥루한에 의하면 원시부족시대에 인간은 청각, 시각, 촉각 등 오감이 조화를 이뤄 감각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술혁신으로 감각이 확장되면서 감각의 균형은 무너지고, 그것은 다시 기술을 낳은 그 사회를 재구성하게 된다. 즉 알파벳처럼 시각적으로 고도로 추상화 된 인쇄문자의 발명은 원시인들의 감각균형을 무너뜨려 시각중심형 인간을 만들기 시작했고, 16세기 인쇄술의 발명은 이런 시각중심현상을 가속화시켰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전신의 발명으로 전자매체시대가 열렸고, 특히 복수의 감각을 요구하는 텔레비전의 발명과 보급은 인간의 감각균형을 복구시켜 궁극적으로 인류를 다시 부족화시킬 것이라고 보았다. 이것은 말하자면 선형적 논리에 매몰되었던 인쇄시대의 시각 중심형 인간이 감각의 균형을 되찾는 것이며, 오래 전에 추방되었던 낙원으로 복귀함을 의미한다.

   인류문명에 대한 맥루한의 이런 기술결정론적 관점은 같은 캐나다 사람인 해롤드 이니스로부터 영향받은 것이다. 이니스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혁신이 사회변천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기술혁신에 대한 그의 입장은 대체로 비관적이었다. 왜냐하면 기술발전으로 인해 나타나게 될 커뮤니케이션의 독점이 궁극적으로는 문화적 유산을 파괴하는 억압적 권력으로 작용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맥루한의 생각은 달랐다. 초기에는 이니스의 영향이 컸지만 대표작인 '구텐베르그 은하'(1962)와 '미디어의 이해'(1964)에 이르러 그는 테크놀러지의 잠재력을 찬양하게 된다. 즉 현대의 전자과학기술이 세계를 하나의 지구촌으로 만들고 인류를 인쇄시대의 선형적 세계에서 해방시킬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의 이런 낙관적 기술결정론에 대해선 논란이 많지만, 어쨌든 맥루한은 자신의 생각을 재치있는 문장이나 극적인 은유로 표현하는 데 능했다. '미디어는 마사지'라는 표현이나 쿨 미디어와 핫 미디어 같은 용어는 그의 독특한 언어감각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그는 이런 재치있는 언어로 대중의 주목을 받는 대담한 가설을 제시함으로써 "그와 비교하면 슈펭글러는 오히려 신중하고, 토인비는 몹시 현학적"이라는 평까지 받았다.

   그러나 폭넓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에 대한 비판은 끊이지 않았다. 논리적 설명이 부족하고 통찰력과 직관에 의존함으로써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맥루한 자신은 "나는 설명하지 않는다, 탐구할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미디어에 대한 그의 진지한 탐구를 인쇄시대의 '선형적' 방식으로 이해하려 하지 말고 TV시 대에 걸맞게 '온 몸으로' 받아들일 것을 요구한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이건 반대하는 사람이건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은 미디어에 대한 그의 견해가 대단히 독창적이라는 것이다. 역사학자 코스텔라네츠에 의하면 맥루한의 탁월함은 다른 사람들이 데이터만 보거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는 곳에서 중요한 의미를 찾아내는 데 있다고 한다. 사이버 공간이 창출하는 가상현실의 세계가 급속히 확장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맥루한이 30년 전에 간파한 것을 이제야 깨닫는 기분이다. 전자 네트워크의 신기술로 페르소나(가상인격)의 신세계가 창조되면서 우리의 삶이 근본부터 변하고 있지 않은가.
(양승목/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 )



▶1978년에이즈(AIDS) 환자, 미국에서 발견
▶1977년캄보디아, 베트남과 단교
▶1977년한미양국정부, 박동선사건 5개조항 공동성명 발표


▶1975년진시황릉 발굴


   중국 역대 최대 건축물로 손꼽히는 진시황릉 발굴은 1974년 12월 31일에 시작됐다. 그러나 진시황의 무덤은 아직 발굴되지 않았다. 흔히 병마용갱(兵馬俑坑)을 진시황릉으로 착각하곤 한다. 흙으로 빚은 병사와 말, 마차 등이 발굴된 병마용갱은 무덤에 딸린 구덩이란 뜻으로 진시황릉 주위에 200개 이상 존재한다. 중국 당국은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 발굴하기엔 아직 기술과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해 진시황이 묻혔을 걸로 보이는 지하궁전을 보존하고 있다. 무령왕릉과 진시황릉 발굴에서 알 수 있듯 문화재 발굴은 하루라도 늦춰야 한다. 그리고 국가지도자의 판단력도 고고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다.


▶1973년한국-아프가니스탄, 국교수립
▶1969년럭키금성그룹의
창업자 구인회 사망
▶1965년중앙아프리카공화국 쿠데타, 보카사 집권
▶1962년‘국토건설단’ 해체
▶1961년레바논, 좌익세력 쿠데타 실패
▶1960년라오스 내전 시작
▶1960년부정선거처리법,
공민권제한법 공포
▶1957년한국-일본,
억류자상호석방협정 조인
▶1952년소련, 만주철도
(장춘선) 중국에 반환
▶1951년소련의 외교관
막심 리트비노프 사망
▶1949년한국, 인도네시아 공화국 승인
▶1945년신탁통치 반대시위 시작
▶1936년스페인 작가
미겔 데 우나무노 작고
▶1929년인도 국민회의, 라호르의 대회에서 완전독립을 결의
▶1920년구(舊)한국화폐의 통용을 금지
▶1909년뉴욕 맨해튼섬과 브루클린을 연결하는 맨해튼교 개통


▶1897년독일 기술자 R. 디젤, 디젤기관 발명




▶1893년러시아-프랑스 양국, 삼국동맹에 대항하여 군사협정 체결
▶1877년프랑스 화가 쿠르베 사망
▶1600년영국 동인도회사,
무역독점권 획득
▶192년로마의 황제
(177-192) 콤모두스 사망


https://youtu.be/QYhUEKOPb8U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