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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1월 7일

✿2009년 1월 7일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 체포…
인터넷에 허위 사실 유포 혐의

박대성(1978년 8월 ~ )은 미네르바라는
별명으로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경제
방에서 활동하던 대한민국의 유명 인터넷
논객이다. 2008년 하반기 리먼 브러더스
의 부실과 환율 폭등 등, 대한민국 경제의
변동 추이를 정확히 예견하여 주목을 받았
다.11월에 절필을 선언하기도 했으나,
이후에도 글쓰기를 계속하다가 2009년 1월 
초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검찰에 체포
및 구속되었다



▶ 2015년 오늘,
프랑스판 9.11사건!
프랑스의 샤를리 에브도(프랑스 파리 주간지 회사)에서 테러가 발생해 12명이 사망했다.





▶ 2012년 오늘,
뉴질랜드의 카터턴에서 열기구가 추락해 11명이 사망하다.

터키, 카파도키아에서도...




▶2008년이천 냉동창고 화재 참사

이천 냉동창고 화재 현장에서 화재진압을
하고 있는 소방차 200여대.


▶1996년알바로 아르수,
과테말라 대통령에 당선

알바로 아르수 과테말라 대통령.



▶1993년임시정부 국무위원 조경한 옹 타계
▶1993년청주 우암아파트 붕괴
(29명 사망, 48명 중경상)


▶1989년화학무기금지를 위한
파리국제회의 개막(~11일)

화학무기금지를 위한 국제회의가
파리에서 개막됐다.

화학무기금지를 위한 국제회의가 세계 1백49개국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1989년 1월 7일 파리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막됐다. 1925년 체결된 화학무기 금지를 위한 제네바의정서를 재확인하고, 화학무기 생산 및 비축의 전면금지를 촉진하기 위한 5일간의 토의 결과 각국 대표들은 화학무기를 불법화하는 선언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11일 폐막했다.
모두 6개항으로 된 이 선언문에는 현재 비축돼 있는 화학무기를 파괴할 수 있는 국제협약이 마련돼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회의 참가국들은 화학무기의 확산을 우려하는 선진국과, 화학무기금지와 핵군축 연계입장을 보여온 아랍 및 비동맹국가들간의 입장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절충작업을 벌여왔는데 아랍국들이 자신들의 요구를 양보함으로써 11일 폐막선언이 만장일치로 채택됐다.




▶1989년히로히토(裕仁) 일왕 사망


▶1983년소련, 핵위성 코스모스 1042호
추락중이라고 발표




▶1981년`한국미술 5천년전`
미국 뉴욕에서 개막
▶1979년베트남군, 캄보디아 공략해
폴 포트정권 태국 국경지대로 도주
▶1977년체코 지식인 257명,
자유회복을 호소하는 `77헌장` 발표
▶1975년동아방송의 16개 대기업광고주들,
광고방송을 중단, 해약
▶1974년정구영 공화당 탈당
▶1968년미국, 서베이어 7호 발사
▶1968년함양에서 버스추락사고 (43명 사망)
▶1967년중국, 친모-반모파 각지서
유혈충돌. 1천여명 사상
▶1966년철도청 부정사건, 전국에서 54명 구속
▶1963년KOC, 남북한단일팀 구성에 관한
실무회의 개최예정 발표
▶1962년언커크, 한국 정치정세 토의
▶1959년미국, 쿠바의 카스트로 신정부 승인
▶1958년한국과 일본이 문화재반환비밀조약에 조인
▶1954년영국과 이란 국교 부활
▶1953년아이젠하워와 처칠, 한국전 문제 토론
▶1950년중국 국민당정부 대만으로 후퇴


▶1949년이승만 대통령 `
대마도는 우리땅`이라고 선언

1949년 1월7일, 이승만 대통령이 내외신 기자들과 가진 회견에서 ‘대마도는 우리 땅’이라고 전격 선언했다. 2차대전 패전으로 구(舊)소련에 북방도서 4도를 빼앗겨 의기소침해 있던 일본인들에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었다.

  이대통령은 “배상요구는 어느 시기까지로 한정할 것인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 이같이 폭탄선언을 했다. 이대통령은 “대마도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게 조공을 바쳐온 속지나 마찬가지였는데 350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이 대마도를 무력강점한 뒤 일본 영토가 됐고, 이때 결사항전한 의병들의 전적비가 도처에 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10여일 뒤 31명의 우리 의원이 ‘대마도 반환촉구결의안’을 국회에 제출해 일본을 더욱 압박했다. 대마도 요구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맞대응, 장차 있을 한일회담에서 유리한 협상 고지를 점령하려는 엄포용 성격이 강했지만 회견소식을 접한 일본의 요시다(吉田) 총리는 혼비백산 맥아더 사령관에게 달려가 하소연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가 해방이 돼 1945년 9월 귀국을 서두르자 ‘대마도는 내 줄 수 있어도 우장춘은 내줄수 없다’며 귀국을 만류했다는 일본 정부였다.

대마도가 경상도에 포함되어있는 조선 고지도 '소라동천'
(실제 거의 모든 고지도에 대마도는 우리땅에 속해있다)

대마도가 경상도땅으로 표기되어 있는
조선 말기의 고지도 `소라동천`의 한 부분.
지도 오른쪽 밑에 대마도라고 표시되어 있다.




▶1948년의무교육제 실시
▶1937년총독부 경무국, 상영금지해오던
서양영화를 50%만 상영허가하기로 결정
▶1932년독일 수상 배상불응 선언
▶1927년뉴욕-런던간 무선전화 개통
▶1914년이화학당, 유치원 설립
▶1906년일본, 서원사 내각 성립


▶1895년홍범14조 선언

개혁법 '홍범14조' 공포
   1895년 1월 7일 고종은 왕족과 신하들을 거느리고 종묘에 나아가 홍범14조를 선포했다. 홍범14조는 1894년부터 추진된 갑오개혁의 근대적 개혁 내용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김홍집-박영효의 연립내각이 제정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가 고종에게 제시한 개혁안을 손질한 것으로 조선 정부는 이를 기반으로 213개의 세부 개혁안을 제정했다. 홍범14조는 청으로부터의 자주독립을 주장하고 다른 법안의 기본이 되는 원칙들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헌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청을 배제하고 조선을 독점적으로 지배하려는 일본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정부는 온건·급진 개화파 간의 갈등 속에서 어렵게 제도 개혁을 추진하여 5월 26일에 지방제도 개정을 끝마쳤다.

   홍범십사조 [洪範十四條]
   동학운동이 일어난 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을 유발시켰고, 국내에서는 전쟁의 승리를 자신하고 조선에서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갑오개혁(甲午改革)을 추진하였다. 갑오개혁은 다방면에서의 개혁으로 이는 전근대적인 사회제도를 유지해온 조선을 근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친일파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여 친청보수세력인 민씨일파를 축출하고, 개화당인 김굉집(金宏集, 金弘集의 초기 이름)을 수반으로 친일 내각을 조직하여 내정개혁을 단행하였다. 이것이 갑오개혁이다.
   내각은 정치, 사회, 경제 등 다방면에서의 개혁 내용을 종합·압축하여 개혁의 정신을 명문화한 《홍범14조》를 제정하였다(1894. 12). 이것은 정치제도의 근대화와 자주독립국가의 정신을 담은 것이었다. 주한일본공사 이노우에[井上馨]는 내부대신 박영효(朴泳孝)를 설득하여, 고종으로 하여금 종실(宗室 대원군·왕세자 포함)·백관(百官)을 거느리고 종묘(宗廟)에서 이를 선포토록 하였다. 고종은 자주독립의 뜻을 담은 '독립서고문'(獨立誓告文)을 낭독하고 아울러 개혁의 기초인 《홍범14조》를 선포하였다(1895. 1. 7). 이는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 청국에 의존하는 생각을 끊고 자주독립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2 왕실규범을 제정하여 왕위 계승은 왕족만이 하고 왕족과 친척과의 구별을 명확히 한다.
제3 임금은 각 대신과 의논하여 정사를 행하고 종실(宗室), 외척의 내정간섭을 허용하지 않는다.
제4 왕실 사무와 국정사무를 분리하여 서로 혼동하지 않는다.
제5 의정부 및 각 아문의 직무 권한을 명백히 규정한다.
제6 납세는 법에 의하여 규정하고 함부로 세금을 징수하지 못한다.
제7 조세의 징수와 경비지출은 모두 탁지아문(度支衙門)의 관할에 속한다.
제8 왕실의 경비는 솔선하여 절약하고 이로써 각 아문(衙門)과 지방관의 모범이 되게 한다.
제9 왕실과 관부(官府)의 1년간의 비용을 예정하여 재정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10 지방관제를 개정하여 지방관리의 권한을 제한한다.
제11 우수한 젊은이들을 파견시켜 외국의 학술·기예(技藝)를 받아들인다.
제12 장교(將校)를 교육하고 징병을 실시하여 군제의 기초를 확립한다.
제13 민법·형법을 제정하여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제14 문벌(門閥)을 가리지 않고 널리 인재를 등용한다.

  《홍범14조》를 통해 정부는 청나라에 대한 의존적 태도를 버리고 자주독립의 국가체제를 갖추었으며, 왕권의 전제를 제한하여 정치적 개혁을 단행하였고, 여러 가지 국가관리에 관한 제도를 개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혁에는 일본의 한국 침략을 위한 인문·사회적 인프라 구축이라는 저의가 함축되어 있었으며 이후부터 일본의 내정간섭은 더욱 심화되었다.



▶ 1864년서재필 출생


▶1839년프랑스 다게르 사진기
(은판사진, 다게레오타이프) 발명

프랑스의 물리학자 다게르가 은판사진(다게레오 타이프)를 발명한 사실이 1839년 1월 7일 세상에 공표됐다. 실물을 영구적으로 기록한 최초의 사진은 프랑스의 니에프스가 이미 10여년 전에 만들었지만, 질이 좋지 않고 노출시간이 무려 8시간이나 소요돼 불편했으나 이날 다게르가 개발해 공표한 방법은 노출시간이 20-30분밖에 소요돼지 않아 사진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다게르는 세관관리로 일하다가 오페라 무대 배경을 그리는 화가가 되었다. 1833년 경쟁자인 니에프스가 죽자 다게르는 홀로 실험에 몰두, 마침내 이날 은판사진을 발명했다. 이 방법을 발표한 사람은 다게르가 아니고 물리학자 아라고였다. 그는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이 방법을 발표했고 다게르는 이 공로로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상했다. 그의 사진기술은 고더도, 톨벗, 아처 등의 연구를 거쳐 꾸준히 개선되어 1870년대 마침내 새로운 기술인 건판이 발명됐다.



▶1834년독일의 물리학자 조한 필립 라이스 출생
▶1822년독일의 인도학자 테오도르 아우프레히트 출생
▶1800년미국의 제13대 대통령 밀라드 필모어 출생
▶1536년잉글랜드 왕 헨리 8세의 첫번째 왕비 아라곤 캐서린 사망
▶1438년장영실(蔣英實) 등, 흠경각(欽敬閣) 완성


https://youtu.be/an85LkKXAqM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갈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