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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1월 23일

✿1968년 1월 23일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북한에 피랍

미 정보함 푸에블로호 납북사건은
미 존슨 행정부 시절이던 1968년
미 해군 소속 정찰함 푸에블로호가
북한 원산 앞 공해 상에서 북한 해군에
의해 나포되어 82명의 미 해군 인원이
11개월이나 붙잡혀 있다가 승무원들만
풀려난 사건이었다.

푸에블로호는 1968년 1월 23일 북한
원산 앞 공해 상에서 정보수집활동을
하던 중 북한 함정에 의해 나포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북한군의 발포로 승무원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당하였다.
미 함정이 공해 상에서 납치되기는
미국사상 10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결국 이 사건은 사건 발생 11개월 만인
1968년 12월 23일 28차례에 걸친
비밀 협상 끝에 푸에블로호 선체와 장비는
북한측에 몰수되고, 82명의 생존 승무원과
시체 1구가 판문점을 통해 귀환하는 것으로 마감됐다




▶2009년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중국 왕자루이 접견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중인 왕자루이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오찬을 하고 있다.

▶2009년세계 D램 반도체 업계 5위
독일의 키몬다 파산
▶2001년벨기에-북한 국교 수립


▶2001년한국화가 운보 김기창 별세

한국화단의 거목 운보 김기창 화백이 2001년 1월 23일 향년 88세로 충북 청원군 자택 `운보의 집`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1913년 서울에서 태어난 운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장티푸스로 청각을 잃었지만 불굴의 의지와 자기혁신으로 ‘청록산수’ ‘바보산수’ 등 한국화의 독보적 경지를 개척하며 20세기 한국의 대표적 화가로 활동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청각을 잃은 운보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활동했던 데 따른 친일시비, 6.25가 갈라놓은 형제간 이산 등 우리 현대사의 아픔 그것이었다. 이런 역경을 때론 특유의 바보스럽고 천진한 웃음으로, 때론 야생마 같은 광기로 털어버리며, 자기보다 어려운 이에 대한 사랑과 예술로 승화시킨 것이 운보 생애의 위대함이었다.

운보는 1930년 이당 김은호 문하에 든 지 6개월 만에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입상하며 천재성을 인정받은 이래 ‘청록산수’ 와 1980년대 말 봉걸레로 그린 초대형 추상화 ‘심상예술’ 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세계를 보여왔다. 운보의 이 같은 예술적 성취의 뒤안에는 역시 탁월한 한국화가였던 부인 박래현(1976년 작고)의 동지애적 내조가 있었다. 또한 운보는 30만 청각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이었고, 대부였다. 그는 1980년 한국농아복지회를 설립, 목공 도예 등 기술을 가르치고 취업을 알선했으며 해외에서 열리는 청각장애인스포츠대회 등에 참가비를 부담하기도 했다



▶1998년일본, 현행 한일어업협정의 종료를 결정,
이를 한국정부에 공식통보


▶1997년한보그룹, 한보철강 부도

신광식 제일은행장, 김시형 산업은행 총재,
우찬목 조흥은행장(왼쪽부터)이
1997년 1월 23일 제일은행 본점에서
한보철강 부도 결정을 발표하면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보철강이 23일 5조원의 금융부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부도를 내고 쓰러졌다.
이날 한보그룹 주력회사중 하나인 (주)한보도 자금부족으로 부도를 냄으로써 앞으로 한보그룹 22개 계열사의 연쇄부도가 예상되며, 최종적으로는 그룹이 해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제일은행 신광식(신광식)행장은 23일 밤 “한보그룹 정태수(정태수)총회장이 채권은행단의 경영권 포기 요구를 거부함에 따라 한보철강을 부도처리했다” 며 “금융기관 공동관리단을 구성, 법정관리 신청을 하겠다” 고 밝혔다.
신행장은 또 “한보철강 당진제철소가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 포항제철에 위탁해 공장을 완공시킨뒤 제3자 인수를 추진할 방침” 이라고 말했다. 정총회장은 이날 오후 은행단의 경영권 이양요구에 대해 거부의사를 밝혔다가 한보철강이 23일밤 전격 부도처리되자 경영권을 이양할 의사가 있다는 수정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제일 산업 조흥 외환 등 채권은행단은 “정회장의 의사가 분명치않다” 며 수정제안을 거부했다. 한보철강은 이날 보람은행 삼성동지점에 돌아온 15억원짜리 어음과 제일은행 섬유센터지점에 돌아온 79억원짜리 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최종부도 처리됐다.



▶1996년전두환-노태우 전대통령 등
5.18관련자 8명 기소
▶1996년아프리카 잠비아주재 북한대사관
현성일 3등서기관 망명신청
▶1991년노재봉 제22대 국무총리 취임


▶1989년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사망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1989년 1월 23일 급성폐렴에 걸려 84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피카소, 미로와 함께 스페인이 낳은 현대 회화의 3거장으로 꼽히는 달리는 ‘금세기의 천재화가’ ‘가공스러운 예술가’ ‘살아있는 패러독스’ 등으로 불릴만큼 예술과 인생에서 빛나는 업적과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9세 때부터 유화를 그리기 시작, 15세때 ‘아틀리에의 자화상’ 이라는 유명작품을 남긴 달리는 1935년까지 새로운 미술운동인 초현실주의에 참가, 대표적 작가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대표작으로 시계가 축 늘어진 ‘기억의 고집’ ‘갈라리나’ 초상 등이 있다.

그 밖에 보석 디자인에서도 독보적 영역을 개척한 달리는 ‘알달루시아의 개’ 란 루이스 브누엘 감독의 영화시나리오를 쓰고 제작을 하기도 했다.




▶1989년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경제협력논의를 위해 방북(-2월 2일)

북한을 방문한 故 정주영(오른쪽에서 네번째)
현대그룹 명예회장.

▶1982년유창순 제15대 국무총리 취임
▶1982년프랑스, 소련 천연가스 수입 계약
▶1981년낭만적 경향의 미국 작곡가 바버 사망
▶1980년한국국민당 창당(총재 김종철)
▶1975년국방부, 북한에서 대남비방방송을
재개했다고 발표


▶1974년구미공단에 대화재



▶1971년속초발 서울행 KAL기 납북 모면
▶1968년 1월 23일
미국 정보함 ‘푸에블로’호, 북한에 피랍
▶1964년미국 통신위성 텔레비B=I호에 의한
미국, 일본간 텔레비전 중계실험에 성공
▶1962년혁명재판소, 부정축재등에 관련된
백인엽에 무기징역 선고
▶1962년혁명검찰, 국사독직피고 유태하에
15년과 추징금 구형


▶1960년자크 피카르, 챌린저 해연 도달

1960년 1월 23일 오전 8시 23분, 자크 피카르가 미 해군대위 도널드 월시와 함께 트리에스테 2호를 타고 잠수하기 시작해 오후 1시 6분에 챌린저 해연을 정복하고 오후 4시 56분에 수면위로 떠올랐다.

당시에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깊은 바다를 최초로 정복한 것이다. 챌린저 해연(11˚22′N 142˚36′E 부근)은 괌섬 남쪽 350km 떨어진 마리아나 해구에 위치한 해연으로 1만 893m 였다.

자크 피카르의 아버지인 오귀스트 피카르가 발명한 잠수정 트리에스테 2호는 현대식 잠수정처럼 자체 동력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모선에 예인돼 부력 조절만으로 하강과 상승만 가능한 잠수정이었지만 바다 속에서 무려 1,100기압을 이겨내는 잠수정이었다.

벨기에 물리학자인 오귀스트 피카르는 1931년 5월 27일 기구를 타고 인류 최초로 1만 5,781m 상공 성층권을 정복한 기구 탐험가였다. 1953년 기구 탐험의 경험을 바탕으로 잠수정 트리에스테호를 만든 오귀스트 피카르는 아들 자크 피카르와 잠수 기록을 세우기 시작했으나 경쟁자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하자 아들과 함께 챌린저 해연을 정복했다.

1960년 1월 23일 오후 1시6분. 스위스 엔지니어 자크 피카드와 미국 해군 중위 돈 월시를 태운 심해 잠수정 트리에스터호가 서태평양 바닥에 닿았다. 깊이 1만990m의 지구상에서 가장 깊은 그곳, 마리아나 해구 챌린저 해연의 발견이었다. 캐나다의 한 시골마을에 살던 여섯 살 소년은 두 사람의 모험을 보며 바다와 사랑에 빠졌다. 그리고 정확히 52년 뒤 홀로 그곳에 다녀오는 기록을 세웠다. 이 소년은 바로 영화 ‘타이타닉’과 ‘아바타’의 제작자로 유명한 제임스 캐머런(58) 감독이다. 26일(현지시간) 챌린저 해연을 탐사하고 돌아온 캐머런 감독은 “이번 탐사는 내가 평생 마음에 품고 있었던 꿈의 정점”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탐사 이튿날 전화 기자회견을 통해 “말 그대로 지금 이 공간에 있다가, 어느 순간 다른 행성에 다녀온 것 같았다”고 돌아봤다. 또 “햇볕도, 온기도 전혀 없는 그곳에서 모든 인간성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되는 느낌을 받았다”며 “이 광활하고 어두운 미지의 공간에서 인간이란 너무나 작은 존재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잠수정이 바닥까지 닿는 데에는 2시간36분, 다시 물 위로 올라오는 데에는 60분이 걸렸다.

 캐머런 감독은 영화에 심해에 사는 바다괴물을 등장시키곤 했지만, 이번 탐사에서는 새우와 비슷하게 생긴 절지동물을 봤을 뿐 다른 생물체는 관찰하지 못했다. 그는 특별 제작된 1인용 잠수정에 대해 “유압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로봇팔로 시료를 채집할 수 없었던 것 말고는 나무랄 데 없었다”고 설명했다. 캐머런 감독은 또다다시 마리아나 해구에서 잠수할 계획이며, 이 자료들로 3D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했다.



▶1948년소련군, 유엔한국임시위원단 북한입경 거부

1892년에는 독일 베를린 미술협회의 초청으로 개인전을 갖고 55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그러나 베를린의 언론들은 뭉크의 그림을 혹평했고, 개인전을 지속할지를 놓고 회원 총회의 찬반 표결까지 벌어졌다. 결국 뭉크의 개인전은 8일 만에 중단되었는데 이는 후에 ‘뭉크 스캔들(Munch Affair)’이라고 불리게 된다. 뭉크는 정작 이 ‘뭉크 스캔들’ 덕분에 유명해지고, 이후 4년을 더 베를린에서 지내며 ‘생의 프리즈’와 관련된 스케치를 하게 된다. 뭉크는 베를린의 예술가 모임에서도 유명한 인물이 되어 ‘검은 돼지’라 불리는 보헤미안 모임에까지 가입해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같은 사람들과 친분을 쌓는다.

1893년에 그려진 [절규]는 소리 지르면서 절규하는 뭉크 자신의 내면적인 고통을 그린 것으로, 그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 뭉크는 인물을 S자 모양으로 비틀어 입을 크게 열고 눈을 크게 뜬 채 경악하는 자신과 현대인의 불안한 모습을 담고 있다. [절규]의 배경은 다리 위의 거리이지만 내면세계를 활보하는 자아의 모습인 것이다. 뭉크가 이 작품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애착이 있었는지는 변형시킨 작품의 수가 50종이 넘는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같은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 잠재의식에 관한 관심, 자아에 대한 발견은 뭉크가 평생에 걸쳐 심혈을 기울인 주제들이다.




▶1944년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크 뭉크 사망
▶1931년러시아 발레리나 사망
▶1928년일본, 소련 어업조약 조인
▶1917년이기동 등 동경노동동지회 결성
▶1913년청년터키당, 쿠데타 일으킴
▶1904년한국, 러일전쟁에 엄정 중립선언
▶1903년박문원 신설
▶1897년각종 잡세를 인지로 시행하게 함
▶1875년영국 작가 킹슬러 사망
▶1851년김옥균 출생1843년독일 소설가 푸케 사망
▶1837년`피아노를 위한 야상곡`을 만든 아일랜드의 피아니스트 필드 사망


▶1832년프랑스 화가 마네 출생




▶1783년프랑스 작가 스탕달 출생


▶1678년상평통보 주조

상평통보는 조선 숙종 때에 유통되기 시작하여 조선말기까지 200여 년 동안 장기간에 걸쳐 통용된 명목화폐로 조선시대 유일의 법화(法貨)이다. 숙종 4년(1678년) 영의정 허적(許積)의 제의로 호조나 상평청(常平廳) 등을 통하여 1678년 1월 23일 상평통보를 주조하였다.

상평통보.

상평통보는 구리·주석의 합금으로 크기가 다른 3종류가 있었으며, 가운데에는 정사각형의 구멍을 뚫고 앞면에는 구멍을 둘러싸고 상하좌우에 상평통보라고 찍었고, 뒷면에는 구멍을 중심으로 위에는 주조한 관청을 표시하는 약자를 새기고, 아래 또는 좌우측에는 돈의 가치를 표시하였다.

상업의 발달에 따라 17세기 말 이후 전국적으로 보급, 유통되었으며, 상품 매매, 품삯 , 세금, 소작료 등을 지불하는 데 사용되었다. 당시 화폐가치는 1문이 2돈 5푼, 100문이 1냥, 10냥이 1관이었다.

그러나 순조 때 들어서는 각 관청의 재정궁핍을 타개할 목적으로 여러 관청에 주전을 허용하게 되고 민간인에 의한 도급제까지 나타나는 등 주전행정이 문란해져 혼란을 겪게 되었다. 결국 1894년(고종 31) 발행이 중단된 후 화폐정리사업 추진과정에서 회수, 폐기됐다.



▶1604년휴정(서산대사) 입적
▶1556년중국 센시 대지진으로 85만명 사망


https://youtu.be/c9RtxDBhzhA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