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2일
검찰,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41억달러 해외 유출 발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현상수배 포스터.
대우그룹이 97년 이후 3년간 김우중 전 회장
지시로 차입금 누락 등 방식으로 처리한
분식회계 규모가 41조원 가량 되고, 이를
근거로 금융기관에서 불법대출받은 액수가
10조원 가량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2일 김 전 회장이
영국의 비밀 금융조직인 BFC
(BRITISH FINANCE CENTER)의 30여개
계좌를 통해 3년간 41억달러의 재산을
빼돌리고, 157억달러 상당의 외화를
해외에서 불법차입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날 강병호·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과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사장,
이상훈 전 (주)대우 전무 등 4명을 특경가법
(사기), 외환관리법(해외재산도피)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 영장이 청구됐던 추호석
전 대우중공업 사장에 대해선 법원이 “불구속
상태에 있는 신영균 현 대우조선 사장과의
형평성을 고려해서”라며 영장을 기각했다.
검찰은 대우 5개 계열사의 분식회계 액수
는 (주)대우 27조원, 대우자동차 4조5600
억원, 대우중공업 5조원, 대우전자 3조7
000억원, 대우통신 8300억원 등 모두41
조900억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금감원이 작년 발표한 분식회계
총액 23조원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불법대출액은 (주)대우 5조2200억원,
대우자동차 1조8500억원, 대우중공업
1조3925억원, 대우전자 9557억원, 대우
통신 5800억원등 총9조9982억원이었다.

▶2009년서유럽에 폭설 강타2007년
중국 해저 7천m 탐사 有人잠수정 세계
최초 개발
▶2003년하벨 체코대통령 퇴임, 극작가로 복귀
▶2001년한국부동산신탁, 정부투자 공기업으로 첫 최종부도처리
▶ 1997년 세계 습지의 날
국제습지협약의 내용과 습지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정한 날.
습지(濕地)는 물이 흐르다 고이는 오랜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생명체를 키움으로써 완벽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갖춘 하나의 생태계이다. 또한 습지는 많은 생명체에게 서식처를 제공하고, 습지의 생명체들은 생태계를 안정된 수준으로 유지시킨다. 습지는 각종 무척추동물·어류·조류의 서식지이고, 미생물은 유기물을 먹고 사는 곳이다. 이들은 오염원을 정화하고 홍수와 가뭄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습지는 생물적·생태적·환경적인 면은 물론 수리적·경제적으로도 그 보존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습지보존을 위해 1971년 12월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열린 국제회의에서 국제습지조약을 채택하였다. 목적은 물새서식지인 습지를 국제적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조약에 따르면 가맹국은 철새의 중계지나 번식지가 되는 물가의 습지를 보호할 의무가 있으며, 가맹할 때에는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를 1개 이상 보호지로서 지정해야 한다.
이에 국제습지조약에서는 1997년 2월 2일을 세계습지의 날로 지정하였다. 정부와 시민단체, 국제비정부기구에서는 이날을 국제습지조약의 내용 및 습지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날로 활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2002년부터 해양수산부와 환경부에서 공동으로 기념식을 개최한다. 또 습지보전에 대한 세미나, 연구발표 및 탐조대회 등을 통해 일반 국민들에 대한 습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기회로 삼는다.
▶1996년미국 영화배우 진 켈리 사망

역대 할리우드 뮤지컬 영화 중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Singin` in the Rain’ 에서의 진 켈리.
영화 ‘싱잉 인 더 레인(Singin` in the Rain )’ 등으로 잘 알려진 영화배우 진 켈리가 1996년 2월 2일 83세로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사망했다. 미국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배우 켈리는 이날 오전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부인 곁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94년 7월 이후 2차례의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후유증을 앓고 있었다.
환상적인 율동으로 팬들을 사로잡았던 켈리는 1940∼50년대 영화 ‘파리의 미국인’ ‘닻을 올려라’ 등에서 주연했으며 무용수, 안무가, 가수, 감독으로도 활동한 공로가 인정돼 지난 1951년 아카데미영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춤 속에 노동자들의 역동적인 삶을 묘사했다는 평을 들었던 켈리는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뒤 피츠버그에서 무용강사로 명성을 떨치고 1930년대 뉴욕 브로드웨이로 진출, 뮤지컬 배우 겸 안무가로 변신했다.
그는 1942년 MGM 영화사에 픽업된 후 영화배우로 나섰으며 1950년대에는 프레드 아스테어 이후 ‘춤의 제왕’ 으로 불렸다.


Singin' In The Rain / Gene Kelly /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 '52
https://youtu.be/swloMVFALXw
▶1995년이한기 전(前) 총리 별세
▶1994년국어학자 이숭녕 박사 별세
▶1991년최희용 WBA 미니멈급 세계챔피언 획득
▶1989년대학생 과외 전면 허용
▶1989년로드리게스, 파라과이 군부 쿠데타로 실권 장악 - 독재자 알프레도 스트로에스네르 35년 만에 실각
▶1985년동호대교 개통
▶1983년국민학교 4.5.6학년 교과서 개편
▶1982년미국 X선 레이저장치 개발
▶1981년한국방송공사 교육TV 첫 방영
▶1981년한미 정상회담, 주한미군 철수계획 백지화
▶1970년조선일보사 사장에 방우영 취임
▶1970년영국 철학자 러셀 사망
▶1970년영국의 철학자 겸 논리학자 버트란드 러셀 사망
▶1968년미국 북한 푸에블로호사건 비밀협상 개시
▶1964년미국 레인저6호 달 `고요의 바다`에 착륙
▶1962년미국 일본 관세인하협정 조인. 미국 쿠바와 전면금수
▶1959년미국 남부버지니아서 처음으로 흑백공학 실현
▶1959년맥밀런 영국 수상 소련방문
▶1957년한국시인협회 창립
▶1954년소련의 영화감독 베르토프 사망
▶1953년미국 대통령 일반교서 발표,
얄타협정 폐기요청, 대만중립화 해제선언
▶1953년바이올린 연주자 채동선 사망
▶1951년유엔총회, 한국전쟁개입한 중공 탄핵안 가결
▶1950년국회, 농지개혁법 수정안 통과
▶1949년초대 주미 대사에 장면 임명
▶1947년최초의 폴라로이드 사진 촬영 시연
▶1946년제1회 전국 빙상선수권대회 소양강서 개최
▶1943년무솔리니 이탈리아 수상 사임
▶1932년국제연맹주최, 제네바 군축회의 개최
▶1926년프랑스 제3대 대통령 지스카르 데스탱 출생
▶1924년그리스 공화제 선포
▶1922년‘율리시즈’ 출판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대표작 ‘율리시즈’ 완역본이 1922년 2월 2일 프랑스 파리에서 초판이 출판됐다. 이날은 그의 40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율리시즈’ 는 1918년부터 미국의 한 잡지에 연재됐으나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미국에서 한동안 연재와 출판이 금지당하는 바람에 이날 파리에서 출간됐다.
율리시즈는 오메로스의 ‘오디세이아’ 를 모델로 한 소설로 오디세우스의 19년간의 방랑을 소설 속 주인공이 하루 동안 더블린을 걷는 것으로 압축 묘사한 작품이다. 난해하기 이를 데 없었던 이 소설을 연재 당시 문화비평가들이 혹평하고 미국의 우체국이 율리시즈를 연재하던 잡지 ‘리틀 리뷰’ 의 배달을 금지시키는 등 연재 당시에는 외면받았다. ‘리틀 리뷰’ 는 1919년에 압수되고 율리시즈는 1921년 법정에서 외설판정을 받기까지 했다.
1882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난 조이스는 예수회에서 운영하는 예비학교에서 수학했으나 타고난 언어 감각으로 문학을 평생의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문학적 경력은 1900년 4월 그가 나름의 미학이론으로 입센을 해석한 ‘입센의 새로운 드라마’ 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본격화됐다. 조이스의 첫 소설인 ‘더블린 사람들(1914년)’ 은 1904년 더블린의 한 신문에 연재됐으나, 작품의 외설성과 더블린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 영국 왕을 모욕하는 듯한 내용 등으로 책을 출판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어 그는 8년동안이나 책 출간을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결국 1912년 책 출간을 포기하고 아일랜드를 등진 그는 죽을 때까지 평생 조국을 찾지 않았다.
그가 당시 세계문학의 수도였던 파리에 정착한 것은 1920년이었다. 그의 천재성을 높이 평가한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세계 문학의 큰 별로 군림하던 그가 파리를 떠난 것은 파리가 2차대전으로 독일에 함락된 1940년이었다. 가족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해 생활했으나 위궤양 수술 후유증으로 1941년 1월 숨을 거뒀다.
▶1920년한국무용가 한영숙 출생
▶1914년한국 화가 박수근 출생

▶1913년뉴욕의 호화 기차역 그랜드 센트럴 개관
▶1907년주기율의 발견자 멘델레예프 사망

멘델레예프 [Mendeleyev, Dmitry Ivanovich, 1834.2.8~1907.2.2] 러시아 화학자.
시베리아 토볼스크의 알렘장커 출생. 어릴 때부터 과학에 흥미를 가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중앙교육전문학교를 졸업, 1855년 22세의 나이로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화학과 시간강사가 되었다. 그 후 독일의 하이델베르크대학에 유학(1859~1860), 분젠과 키르히호프의 지도하에 액체의 열팽창 ·표면장력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이것은 후에 기체 ·용액의 연구로 이어지는 물리화학적 연구였다.
유학 중 1860년 카를스루에에서 개최된 세계화학자회의(원자량 ·분자량의 불일치를 바로잡기 위한 국제회의)에 참석하여 카니차로의 개혁제안에 찬성하였다. 1865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으로 돌아와 유기화학강의를 시작하였으며, 이때 500면이나 되는 대작 《유기화학 교과서》를 저술하였는데, 여기서 바른 원자량을 채용하였다.
1867년 화학 교수가 되었고, 1868년 말 무기화학 교과서 《화학의 원리》를 저술하기 위하여, 당시에 알려져 있던 63종의 원소배열순서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주기율을 발견하였다(1869). 최초의 주기율표는 1869년 러시아화학회에서 처음으로 발표되었다. 이 주기율표에는 필연적으로 빈 곳이 생기는데, 새 원소가 발견되면 그 자리에 채워진다고 예언하고 그것의 원자량 ·비중 ·빛깔까지도 나타내 보였다.
그 후 발견된 갈륨(1875) ·스칸듐(1879) ·게르마늄(1886) 등은 주기율의 자연법칙성을 입증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또, 석유에 관해서도 관심이 있어 원유채굴법 ·처리법 ·이용법 등 많은 연구를 하였다. 1890년 대학의 학생운동이 정치문제가 되어 교수직을 물러났으며, 1893년 도량형국 총재가 되었다.
▶1905년미술사학자 고유섭 출생
▶1901년미국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 출생
▶1895년독립문 건립 기공
▶1882년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 출생
▶1875년오스트리아 바이올리니스트 크라이슬러 출생
▶1848년미국-멕시코 과달루페이달고 조약 체결
▶1801년천주교 신유박해 시작

정약종이 천주교의 교리를 요약한 `주교요지`.
나이어린 순조가 즉위하자 섭정을 하게 된 정순대비가 1801년 2월 2일(음력 1월10일) 사교(邪敎)-서교(西敎)를 엄금-근절하라는 금압령을 내리면서 신유박해가 시작됐다. 신유사옥이라고도 한다. 중국에서 들어온 천주교가 당시의 성리학적 지배원리의 한계성을 깨닫고 새로운 원리를 추구한 일부 진보적 사상가와, 부패하고 무기력한 봉건 지배체제에 반발한 민중을 중심으로 퍼져나가면서, 18세기 말 교세가 크게 확장되자, 정순대비는 이같은 지시를 내린 것이다.
천주교를 버리지 않는 사람은 반역죄로 다스려 정약종 이승훈 권철신 이가환 등 남인들과 중국인 주문모 신부 등이 처형 또는 옥사했으며 정약전 정약용 등은 유배됐다. 또 가을에는 베이징의 천주교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황사영의 백서가 발견되어 관련자들이 처형되는 등 박해가 일단락되는 이듬해인 1802년 2월 4일까지 모두 100여명이 순교하고 400여명이 유배됐다.
신유박해는 급격히 확대된 천주교세에 위협을 느낀 지배세력의 종교탄압이자, 또한 이를 구실로 노론 등 집권 보수세력이 당시 정치적 반대세력인 남인을 비롯한 진보적 사상가와 정치세력을 탄압한 권력다툼의 일환이기도 했다.
▶1639년선혜청에 진휼청을 설치
▶962년신성로마제국 탄생
교황 요한12세가 동프랑크 왕 오토1세에게 황제의 관을 씌워줌으로써 962년 2월 2일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했다. 이 제국은 고대 로마제국의 부활-연장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로마제국이라 불렸고, 또 고대 로마의 전통보존자인 그리스도교회와 일체라는 뜻에서 신성이라는 말을 붙였다. 그러나 실제로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운 것은 15세기로 그 이전은 단순히 제국 또는 로마제국이라 불렸다.

오토1세가 신성로마황제로서 이탈리아 왕
베렌가리오 2세에게 칼을 수여하고 있다.
이 제국은 1806년 나폴레옹이 라인동맹을 수립해 독일을 재편성한 직후 프란츠2세가 제위에서 물러나면서 해체됐다. 유럽의 중세와 근대사에서 신성로마제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았던 국가는 고작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 정도였다. 이처럼 신성로마제국은 좁게는 독일의 역사였지만 넓게는 유럽의 역사였다. 유럽의 역사에서 황제란 곧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의미했다.
신성로마제국은 오토1세의 아버지 하인리히1세를 비조(鼻祖)로 한 작센왕조에서 시작해 잘리 왕조, 호엔슈타우펜 왕조, 대공위 시대, 가권 경쟁 시대를 거쳐 합스부르크 왕조에 이르기까지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가장 오래된 제국이었다.
https://youtu.be/4tY0YSqH-QA
출처 내이버지식백과, 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
'간추린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2년 2월 2일 수요일 HeadlineNews (0) | 2022.02.02 |
|---|---|
| <오늘의 날씨> 2022년 2월 2일 수요일 (0) | 2022.02.02 |
| 2022년 2월 1일 화요일 HeadlineNews (0) | 2022.02.01 |
| <오늘의 역사> 2월 1일 (0) | 2022.02.01 |
| <오늘의 날씨> 2022. 2. 1 화요일 (0) | 2022.02.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