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6일
노무현 대통령 청남대 개방 지시

2003년 3월 6일 노무현 대통령의 청남대
개방 지시와 함께 대통령 한 사람만을
위한 여름피서지였던 청남대(靑南臺)가
20년 만에 주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게 됐다.
충청북도와 주민들은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 빨리 실현될지는 몰랐다”며 크게
반겼다.
청남대는 충청북도 청원군 대청댐 부근
약 55만평의 면적에 전두환 전대통령이
“이런 곳에 별장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생긴 대통령 전용
별장으로 ‘남쪽에 있는 청와대’라는 의미이다.
그동안 일반인들의 출입이 전면 통제되어
‘미스터리’의 대상으로 남아있던 청남대가
개방됨으로써 이 지역 주민들은 이 일대가
전국적인 관광명소로 급부상할 것으로
기대, 이튿날 3월 7일 오후 문의파출소 앞
광장에서 주민대회를 갖기도 했다.


▶ 2011년동아출판사
창업주 김상문 전 회장 별세
▶2010년조경철 박사 별세
▶2009년요리연구가 하선정씨 별세
▶2003년‘세종대왕자태실
(世宗大王子胎室)’ 사적 444호로 지정
문화재청은 2003년 3월 6일 경북 성주군 월항면의 성주 ‘세종대왕자태실’ 을 사적 444호로 지정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조선 세종대왕의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태반을 넣어둔 독)19기가 모여있는 곳이다.

문화재청은 6일 경북 성주군 월항면의 성주(星州)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을 사적 444호로 지정했다.
문화재청은 6일 경북 성주군 월항면의 성주(星州) 세종대왕자태실(世宗大王子胎室)을 사적 444호로 지정했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조선 세종대왕의 18왕자와 단종의 태실(태반을 넣어둔 독) 19기가 모여있는 곳으로, 왕실의 번창을 기원하기 위해 명당을 골라 봉안돼 오던 곳이다. 일제 강점기에 대부분이 훼손되거나 서오릉으로 이장된 뒤 현장에 그대로 남아있는 태실은 이곳이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또 전남 장성군 필암서원(사적 242호)과 경기 연천군 신라 경순왕릉(사적 244호)의 보호구역 1만5300평을 추가지정하고, 경주 남고루(사적 17호) 등 11건에 대해서 보호구역 추가지정을 예고했다.
▶2003년알제리 여객기 추락,
102명 사망
▶1997년소설 ‘남부군’ 저자 이태씨 별세
1923년 충북 제천에서 초등학교 교장의 아들로 태어난 이씨는 국학대학을 나와 1948년부터 서울신문-합동통신 기자로 근무했다. 6·25때 인민군에 징발된 이씨는 북한의 조선중앙통신 기자가 됐으며 인민군이 북으로 밀려간 후 빨치산이 돼 지리산 등에서 활동하다 1952년 토벌대에 체포됐다.
이때의 기록을 바탕으로 소설 남부군을 썼다. 전향한 이씨는 1963년 민중당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낸 후 1970년대까지 야당 정치인 생활을 했다. 소설 ‘남부군’의 저자 이태(75ㆍ본명 이우태)씨가 1997년 3월 6일 별세했다. 이태씨는 지난 1988년 7월 소설 남부군을 출간, 우리 사회의 금기대상이었던 빨치산을 역사 평가의 대상으로 본격 거론했다. 남부군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인기를 모았다. 그러나 이씨는 책이 나온 후에도 한동안 본명을 숨겼을 정도로 이데올로기의 피해자였다.

▶1995년유럽연합(EU),
터키와 관세 동맹 결성
▶1992년아야즈 무탈리보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 사임
▶1991년국제해사위성국 개통

▶1985년전두환 대통령, 김대중.김영삼.
김종필씨등 14명에 대한 정치해금 단행
▶1985년미국의 교향곡 작곡가 세션슨 사망
▶1983년서독 녹색당 의회 진출
▶1983년콜 서독수상 재집권
▶1983년한국 해적출판 세계1위
▶1981년가정의례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
▶1980년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으로
사형 확정된 박흥주 총살형 집행
▶1980년엘살바도르 전국에 계엄령 선포
▶1979년한국-멕시코, 일반사증면제협정 체결
▶1977년프랑스 역사의 현장인 클래리지 호텔 문 닫음
▶1973년미국 소설가 펄 벅 사망

벅 [Buck, Pearl (Sydenstricker), 1892.6.26~1973.3.6]
`대지`의 작가로 유명한 미국 소설가 펄벅이 1973년 3월 6일 세상을 떠났다. 생후 수개월 만에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상하이에서 학교를 다닌 뒤, 1914년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의 랜돌프메이컨여자대학을 졸업했다. 그 뒤 중국에 돌아와 난징에서 대학교수가 됐다. 1917년 후에 중국 농업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존 로싱 벅 박사와 결혼, 두 딸을 두었지만 큰딸은 극도의 정신박약아였다. `자라지 않는 아이`에서 펄 벅 자신이 술회하듯이, 이 사실이 그녀를 작가로 만든 주요한 동기의 하나가 되었다.
1923년 중국 생활에 대해 쓴 논설과 단편소설들을 미국 잡지에 처음 기고했고, 1930년 중국에 있어서의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처녀작 ‘동풍.서풍’을 발표했다. 이어 1931년 ‘대지’ 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한 중국인 농부와 노비 출신의 아내가 땅과 지위를 얻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것으로 속편으로 발표된 ‘아들들’ ‘분열된 집안’과 함께 1935년 3부작 ‘대지’로 출판됐다.
1938년에는 미국의 여류작가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이 `대지` 3부작에 수여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에도 미국의 양심으로서 평화를 위한 집필을 계속하면서, 펄 벅 재단을 설립하여 전쟁 중 미군으로 인해 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태어난 사생아 입양 알선사업을 벌였다. 1967년에는 이 사업에 700만 달러를 희사했으며, 6 ·25전쟁 후에는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와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소설 `새해`를 썼다.



▶1971년케냐, 최악의 가뭄
▶1970년체코 자유화 기수 두브체크, 공산당서 축출
▶1967년헝가리 민속음악의 권위자인
대표적작곡가 졸탄 코다이 사망
▶1965년미국 해병대 2개부대, 파월 결정
▶1963년4대의혹사건 관련자 유원식,
천병규 등 15명 구속
▶1958년아랍연맹과 예멘 정식합병 조인
▶1958년납북 KNA기 승객 32명 귀환

▶1957년김종원 치안국장, 판사를 향해 법정모욕
▶1957년가나공화국 영국연방으로부터 독립
▶1953년소련 수상 후임에 말렌코프, 외상에 몰로토프
▶1950년프랑스 제3공화정의
마지막 대통령(1932~40) 르브룅 사망
▶1945년유고, 티토 임시정부 성립
▶1937년거룩함에 대한 인간의 체험을
연구·발표 한 독일의 신학자 오토 사망
▶1936년조선일보 여성지 월간`여성` 창간
▶1935년독일 재군비 선언
▶1926년제8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 출생
▶1921년발렌티노 첫 주연 영화,
'묵시록의 네 기사' 개봉
▶1918년러시아 사회민주당, 러시아 공산당으로 개칭
▶1905년멕시코 이민 1천33명 인천항 출발
▶ 1887년 오늘,
경복궁 건청궁에 최초의 전깃불. 경복국 향원정의 연못을 이용하여 작은 수력 발전기를 설치해 전력을 생산했지만, 고장이 잦고 고치는 데 드는 비용이 커 '건달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어. 본격적인 전기는 11년 뒤인 1898년 말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해 동대문에 75KW 직류발전기를 설치하면서 시작.


▶1883년고종황제,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

고종황제가 미국인 외교고문 데니에게
하사한 태극기. 1981년 기증받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기에 대한 논의가 본격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개항 후 서구 열강과의 교섭이 빈번해지면서였다. 국기제정에 대해 청(淸)의 의견을 물었으나, 청은 조선이 청의 속국임을 강조하기 위해 국기 도안에 중국기를 본뜬 용(龍)을 넣을 것을 요구했다. 태극문양이 절충안으로 채택됐다. 1882년 5월 미국과의 통상조약 체결로 국기 제정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자, 김홍집 등이 태극 문양을 안(案)으로 제시하면서 국기 제정에 대한 논의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듬해 조선은 태극기를 널리 알리기 위해 태극기 도안을 넣은 우표 5종 280만장을 일본에 제작의뢰했으나 일본은 우리의 요청과 달리 4괘를 삭제하고 태극문양도 중국의 태극도형으로 바꿔 우표를 보내왔다. 우리가 중국의 속국임을 나타내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었다. 현재의 국기가 대한민국 국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49년 10월 15일부터였다.
1882년 8월, 수신사로 파견된 박영효가 일본행 배 위에서 태극기를 만들어 사용했고, 이 사실을 보고받은 고종은 1883년 3월 6일, 태극을 중심으로 건곤감리 4괘를 사각형 네 귀퉁이에 배치한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선포했다.

박영효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태극기. 태극기 도안은 고종이 직접 하였다. [경향신문]
▶1853년베르디 오페라 `라트라비아타`
베네치아에서 초연

파리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와 그녀를 흠모해온 청년 알프레도의 첫 만남
▶1834년영국 풍자만화가 뒤 모리에 출생
▶1806년영국의 여류 시인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출생
▶1779년프랑스 장군 조미니 출생
▶1672년영국이 네덜란드에 선전포고
▶1475년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 출생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반가운의hi스토리, 솦트리종려나무
편집 달콤쵸콜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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