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0월 13일 노태우 대통령, 범죄와의 전쟁 선포
[ 사진1.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 사진2.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90년 10월13일 대한민국 노태우대통령이
특별선언을 했습니다. 바로 범죄와의 전쟁을 치뤄 근절하겠다는 특별
선언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민생치안을 강화하려는 치밀한 계획을
기반으로 두고 나온 정책이라기보다는 집권 4년차를 앞두고 어지러운
정국과 사회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벤트성 정책
이었다는 평가가 많았었죠. 대통령이자 집권여당인 민자당 총재였던
노태우는 조기 레임덕 조짐을 보이면서 김영삼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
으로부터 노골적으로 탈당 등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사진3.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동기의 진정성을 불문하고 민생치안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이 정책은 단기적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전쟁’ 선포 이후 공보처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2%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선포 후 일년 동안 조직폭력배
1,923명을 검거했다고 되어 있으니 대통령이 팔 걷어 부치고 나선 전쟁이
효과를 보긴 본 셈입니다. 하지만 거물급 조직폭력배는 대부분 잠적하고
검거 실적용으로 조직원들을 잡아들이기 일쑤였고 이 마저도 집행유예,
벌금형 등으로 1년 안에 50%가 풀려났습니다.
[ 사진4.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전체적인 치안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2년 1월 경찰청이 내놓은 ‘10.13범죄와의 전쟁 2주년 평가서’를 보면
‘2년간의 대범죄전쟁으로 강.절도 등 주요 5대 범죄는 감소추세에 있으나,
신형범죄와 충동적인 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오히려 ‘전쟁’ 운운하며 살벌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며 시민불안을
가중시켰고, 실적 맞추기용 영장발부 및 인권침해 사례가 속출함에 따라
비판이 고조되었죠.
[ 사진5.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결국 ‘범죄와의 전쟁’ 정책은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1992년 10월 ‘범죄와의 전쟁’ 2주년 즈음에 노태우는 결국 민자당을 탈당했죠.
정확히 말하면 탈당 강요에 백기투항 했고, 이벤트성 정책으로 본인의 레임덕을
조금 더 연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1992년 12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 정책을 승계하지 않았을 뿐더러 1995년 11월 노태우대통령을 구속시키며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실제로는 이 범죄와의 전쟁에서 노태우는 최고의 ‘대어’가 잡힌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 사진6.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 2010년 대한민국 국적 생존자 중 5000만 번째 주민등록자 탄생
▶ 2010년 69일간 매몰됐던 칠레 광부 33인 구조
33인의 광부 중 첫 번째로 구조된 플로렌시오 아발로스가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2010년 10월 13일 69일간 지하 700m에 매몰되어있던 칠레 광부 33인(칠레인 32명, 볼리비아인 1명)이 생환하였다.
33인의 광부는 8월 5일 칠레 북부 코피아포의 산호세 광산에서 터널 붕괴로 지하 700m에 매몰되어, 매몰 17일만인 22일 생존이 확인되었고, 69일 만인 10월 13일 구조되었다.
생존 확인 이후 지상과 연결된 지름 15㎝의 드릴 구멍을 통해 음식과 약품을 공급하고, 동영상 카메라도 내려보내 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초 구조까지 3~4개월이 소요되어 2010년 크리스마스 쯤에야 구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구조용 터널을 뚫기위해 공기압을 사용한 최신기계를 사용하고 특수강철로 만든 구조용 캡슐을 통해 구조일자를 2개월 이상 단축하였다.
2010년 10월 12일 오후 11시 15분 구조가 시작되어, 피녜라 대통령의 구조 개시 선포 이후 1시간이 안된 매몰 69일 만인 13일 새벽 0시 11분, 플로렌시오 아발로스(31. 매몰 당시 부조장)의 첫 생환을 시작으로 오후 9시 56분(현지시각) 루이스 우르수아(매몰 당시 작업조장)이 구조되면서 0시 35분 구조작전이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번 칠레 광부 33인의 매몰 및 구조 소식을 통해, 절망 속에서 광부들이 보여준 의지와 지혜, 리더십, 칠레 정부의 신속
하고 단호하며 효율적인 대응 능력은 칠레가 그동안 축적해온 국가적 역량을 국제사회에 입증하여, 국가적 위기를 이미지 상승의 기회로 바꾸었다. 이번 구조가 남북으로 길게 걸쳐 있는 지리적 특성에서 생겨난 경제적 분열과 계급적 갈등 봉합의 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33인의 광부 중 첫 번째로 구조된 플로렌시오 아발로스가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과 포옹하고 있다.
https://youtu.be/NVKs_ftztAU
▶ 2009년 중국 최후의 '건국 장성' 뤼정차오 사망
▶ 2002년 전파연구소 `형식승인 처리방법`을 제정, 고시
▶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의 군나르 베르게 위원장은 2000년 10월 13일 오슬로 소재 노르웨이 노벨연구소에서 가진 수상자 발표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한국과 동아시아의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 특히 북한과의 평화와 화해에 기여한 공로로 200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됐다"고 발표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가 됐으며, 1901년 처음으로 앙리 뒤낭과 프레데리크파시가 노벨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이래 81번째의 수상자이자 아시아인으로는 일곱 번째로 노벨평화상을 타게 됐다. 김 대통령에 대한 노벨평화상 시상은 12월10일 오슬로에서 열렸으며, 김 대통령은 90만 스웨덴크로나(약 96만달러·약 10억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번 노벨평화상 후보에는 개인과 단체를 합쳐 모두 150명이 올랐으며,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등도 강력한 수상 후보로 거론됐다.
김대중 대통령은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발표된 뒤, "오늘의 영광은 지난 40년 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남북간의 화해와 협력을 일관되게 지지해 준 국민들의 성원 덕분"이라면서, "이 영광을 우리 국민 모두에게 돌리고자 한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 1999년 미국 프로농구 선수 윌트 체임벌린 사망
▶ 1999년 탤런트 서갑숙 자전 에세이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출간
▶ 1999년 유엔, 탈북자 `난민`으로 인정
▶ 1999년 로버트 먼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
▶ 1997년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 북아일랜드 분규발생후 76년 만에 회동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 북아일랜드 분규 발생 후 76년 만에 회동.
영국계 신교도 와 아일랜드계 구교도 사이의 갈등으로 68년 이래 3,200여명의 희생자를 낸 북아일랜드분쟁은 토니 블레어총리가 이끄는 영국정부와 아일랜드정부의 평화의지. 북아일랜드의 신구교세력의 양보와 미국의 적극적인 중재 등 3박자가 어우러지면서
4월 초 극적인 평화안 마련에 성공했다.
신구교간 권력분할과 협력을 뼈대로하는
평화안는 5월 말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동시 실시된 찬반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고 6월 25일 실시된 북아일랜드 총선에서도 평화안 지지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한마디로 협력을 뼈대로하는
평화안은 5월 말 아일랜드 와 북아일랜드에서 동시에 찬반투표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통과되고, 6월25일 실시된 북아일랜드 총선 에서도 평화안 지지파의 압승으로 끝났다.
한 마디로 북아일랜드 평화노력이 탄탄대로 에 들어가는 듯 하지만 아직도 불안함을 보여 주고 있다.
▶ 1996년 독일 `슈테른`지 창설자 헨리 나넨 사망
▶ 1995년 영국 반핵 운동가 롯블라트 199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 1994년 북아일앤드 신교도 무장조직들, 구교도와 아일랜드 공화군에 대한 휴전선언 성명 발표
▶ 1993년 미국 러셀 헐스-조제프 테일러, 세계 최초로 쌍성 펄사 발견 공로로 노벨물리학상 수상
▶ 1992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게리 베커 교수, 노벨경제학상 수상
▶ 1992년 북한탈출 귀순자 안혁, 강철환, 북한 연변 등 12곳의 정치범수용소에 20여만명이 수용돼 있다고 밝혀
▶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범죄와의 전쟁 선포
더도말고 덜도말고 전두환따라쟁이.
▶ 1986년 유성환 의원, 국회 대정부질문중 국시(國是)발언
유성환의원은 '국시'발언이 빌미가 되 국회의원 면책특권까지 박탈당한 채 9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 나라의 국시는 '반공'보다'통일'이어야 한다.°
신민당 유성환의원,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해서 '국시 발언'을 한 것을 문제삼아
회기중 임에도 불구하고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을 감행.
유성환의원은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음.
▶ 1982년 원전 9-10호기 공사 기공(경북 울진)
▶ 1981년 문교부, 국민학교 영어교육 결정
▶ 1980년 전두환 국보위 '삼청교육대' 순화교육 발표!
박정희 최초의 지시사항! 깡패소탕! > 국민에게 정적들에게 공포분위기 조성 > 전두환의 박정희코스프레!
[박정희의 최초 지시 "깡패 소탕"]
http://naver.me/GBDdUh50
'삼청교육'은 5.17. 신군부 쿠데타의 수단으로 악용될 5공의 대표적 인권유린사건이다! 6만여명의 시민이 포고령위반이란 죄목으로 군부대 끌려가 혹독한 훈련을 받다가 폭행과 고문등으로 54명이 숨지고 그 후유증으로 인한 사망자가 400명에 달했다.
5공정권이 끝난 88년11월 노태우 당시 대통령이 특별담화를 통해 피해 배상을 약속했고 피해를 신고하라는 국방부장관의 공고에따라 전국에서 3,200여명이 신고를 마쳤다. 사회악 일소를 명분으로 7월29일 수립된 국보위의 '삼청계획'과 8월4일 계엄사 사회악 일소 특별조치인 포고령 13호에 따라 사회악사범으로 검거된 후 순화교육 대상자로 분류된 사람들이었다.
계엄사의 사회악특별 조치는 일제검거령을 통해 영장도없이 검거되고 재판없이 사회악 사범으로 지목되 검사, 경찰서장, 보안사, 중앙정보부, 헌병대요원, 지역정화위원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에서 A급은 군법회의에 회부되고 B,C급은 4주 순화교육 후 근로 봉사 B급은 훈방조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보위와 계엄사에서 발표한 것처럼 순화교육대상자는 사회악사범이기보다는 단순한 경범사범이 대부분이었으며
난폭한 운전을 한 택시기사가 지능적 폭력 배로 간주되 순화교육 대상자로 찍히기도 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유신정권 붕괴 이후 등장한 신군부가 통치권을 확립하기위하여 설치한 기관!
약칭 '국보위'라고 한다.
▶ 1979년 신민-통일당 의원 69명, 의원직 사퇴서 제출(11.15 반려)
▶ 1978년 중국, 모스크바 겨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설치 발표
▶ 1977년 루프트한자 여객기 서독 적군파에 피랍
▶ 1970년 캐나다-중국, 국교 수립
▶ 1969년 인왕산 청운(淸雲)스카이웨이(現-인왕스카이웨이) 개통
▶ 1967년 NATO본부 파리 철수. 16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서 개소
▶ 1965년 맹호부대 인천항 출발
▶ 1964년 공화당 이만섭의원 판문점에 남북한면회소 설치 제의
▶ 1964년 뇌염환자 2957명. 사망 953명 발표
▶ 1962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초연
1962년 10월 13일, 미국의 극작가,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1928~ )의 대표작인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는 뉴욕 타임스로부터 "최근 10년간 상영된 연극 중 최고"라는 호평을 받으며, 토니상과 뉴욕평론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미 <동물원 이야기>, <아메리카의 꿈> 등으로 미국의 연극계에서 일정한 지위를 구축하고 있던 올비는, 이 작품으로 대중성까지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에드워드 올비는 퓰리처상을 3차례나 수상, 세계적인 명성을 떨친 작가였지만, 이상하리만큼 브로드웨이로부터는 외면을 받았습니다.
출세작인 <동물원 이야기>도 미국 평론가와 연출가들의 냉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아, 멀리 독일의 서베를린에서 상연되어야 했습니다.
<동물원 이야기>는 서베를린에서 성공을 거둔 후, 브로드웨이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오랜 기간에 걸친 방탕한 생활과 알코올 중독 등으로 얼룩진 올비 개인의 삶을 냉대의 이유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는 1966년,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1932~ )가 주연을 맡은 영화로도 제작되어, 여우주연상 등 5개의 아카데미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 1962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창립
▶ 1960년 북한, 중국에 대한 4억 2000만루블 차관에 조인
▶ 1958년 미국, 핵실험 정지 17개국 결의안 유엔총회 정치위원회에 제출
▶ 1958년 말라가시, 공화국 선포
▶ 1957년 이집트군, 시리아 침입
▶ 1952년 미국-영국-프랑스, 대(對)유고 원조협정 조인
▶ 1948년 사범학교 제외한 중고교 남녀공학제 폐지
▶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 발족(단장 이범석)
▶ 1945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발족
▶ 1943년 총독부, 전시교육비상조치방책 발표
▶ 1943년 이탈리아, 독일에 선전포고
▶ 1925년 마거릿 대처 출생
▶ 1924년 '멍텅구리 헛물켜기' 연재
▶ 1921년 프랑스의 샹송가수, 영화배우 이브 몽탕(Montand, Yves) 출생
몽탕 [Montand, Yves, 1921.10.13~1991.11.9]
몽탕은 매력 있는 프랑스인의 전형으로 널리 간주되던 프랑스의 배우이며 대중가수이다. 이탈리아 태생의 유대계 출신으로, 청년기 힘겨운 밤무대 가수생활 끝에 유명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의 후원 아래 1945년 영화 <어두운 별 Etoile sans lumiere>로 비로소 본격 데뷔했다. 1951년 여배우 시몬 시뇨레와 결혼했으며 부부가 함께 미국 민간인 최초의 간첩 혐의 사형수 로젠버그 부부의 처형과 베트남 전쟁, 프랑스의 알제리 독립운동 탄압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주요 작품으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제트 Z>(1968)·<계엄령 Etat de siege>(1973)과 <마농의 샘 Manon des Sources>(1987)이 있으며, 그가 부른 대표적인 샹송 <고엽 Les Feuilles Mortes>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991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프랑스 언론은 엄청난 애도와 경의를 표했다. 프랑스의 모든 방송사에서는 몽탕의 추모 특집 방송을 1주일 이상 방영했다.
▶ 1919년 경성악우회, 종로 청년회관에서 제1회 음악연주회 개최
▶ 1909년 스위스의 법률가 겸 철학자 카를 힐티 사망
▶ 1909년 제1회 사법시험 실시
▶ 1908년 의병장 이강년 순국
▶ 1908년 월북 시인 임화 출생
▶ 1905년 헨리 어빙 사망
▶ 1866년 병인양요
1866년(고종 3) 대원군이 일으킨 천주교도 및 외국선교사에 대한 박해사건에 대항하여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침범한 사건. 서구열강이 무력으로 조선을 침입한 최초의 사건이다.
▶ 1822년 이탈리아의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 사망
▶ 서기552년 백제, 일본에 불교 전수(백제 성왕 30년)
백제 승려 도장, 경전과 불상을 갖고
왜로 건너가 성실종의 시조가 되었다.
왜의 고대국가 정비에 정신적 이념을 제공한 것도 물론 백제이다.
위덕왕 24년 577년에는 경논과 율사,선사 등을 파견했다.
이어서 588년에는 불사리와 사문과 화공등이 건너 갔는가 하면 595년에 도일한 혜총은 쇼토쿠태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600년에 왜로 간 관릉은 최초의 승정이 되기도 했다.
삼국의 불교 전래와 일본 전파
http://naver.me/FWeEKWld
▶ 54년 제4대 로마제국 황제 클라디우스 사망
▶ 서기52년 제5대 로마제국 황제 네로 즉위
클라우디우스황제가 아내에게 독살되고 17살에 네로가 로마황제로 등극하다.
어린나이에 권좌에 오른 네로는 세네카와 브루스의 보좌를 받아 얼마간 선정을 베풀었으나 섭정인 어머니(양모)와 충돌을 거듭하다 그녀를 살해하면서 본 궤도에서 멀어진다. 가족을 중시하는 로마인에게 어머니살해는 인간도리의 반하는 대죄로 받아들여졌다. 로마올림픽개최등 실정이 되풀이 되고,
로마시마져 대화재로 소실되자
인기가 급속도로 추락한 그는 결국 시민의 버림을받고 자살한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 ,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코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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