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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11월 8일

♧1923년 11월 8일 히틀러 뮌헨에서 무장봉기 실패, 이틀 후 체포

아돌프 히틀러

히틀러가 1923년 11월 8일 나치스당 소속 SA 대원 300여명을 동원, 뮌헨교외의 맥주홀 뷔르거브로이켈러에 난입, 천장을 향해 총을 쏘며 카를 바이에른주 통감을 납치했다. 카를이 바이에른 분리주의자로 전국지배를 지향하는 히틀러와 입장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당시 맥주홀에서는 뮌헨경제단체 초청으로 카를이 대중연설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카를은 감시소홀을 틈타 도주했고 히틀러는 이틀후 카를의 반격으로 체포돼 법정에 넘겨졌지만, 재판기간을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확대하는 연설기회로 활용했다.

이른바 `뮌헨폭동` `맥주홀 폭동`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체포된 히틀러는 옥중에서 자신의 궤변을 담은 `나의 투쟁`을 집필했다 .1924년 4월 반역죄로 5년형을 선고받았으나 그해 12월 20일 석방됐다. 석방되자마자 히틀러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2009년친일인명사전 발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2008년러시아 핵잠수함, 동해상에서 사고
▶2005년최준희씨 에디슨市서 한인최초 美 직선시장 당선
▶2002년유엔 안보리, 이라크 무기사찰 결의안 만장일치로 채택
▶2001년김대중 대통령, 민주당 총재직 사퇴 선언
▶2000년일본 적군파 최고 간부 시게노부 후사코 체포



▶1998년이광모 감독 `아름다운 시절` 도쿄영화제서 금상


  필름으로 그린 유년의 수채화, 아름다운 시절
미군 장교와 사귀는 성민의 큰누나 영숙(명순미 분)의 주선으로 성민의 아버지 최씨(안성기 분)가 미군부대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성민네 형편은 나날이 나아져 간다. 반면 성민(이인 분)네 아래채 방에 세들어 살고 있는 창희(김정우 분)의 어머니 안성댁(배유정 분)은 의용군으로 끌려간 채 소식 없는 남편을 2년째 기다리며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힘겹게 살림을 꾸려간다.

  생계를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에 찌든 안성댁을 보다 못한 최씨는 그녀에게 미군의 팬티와 러닝 셔츠들을 빨래해주는 세탁 일을 알선해준다. 그러나 강변에 널어놓은 미군 속옷빨래들을 모조리 도둑맞는 안성댁, 잃어버린 빨래를 변상할 방법을 찾지 못해 애태우던 안성댁은 미군 하사로부터 동구밖 버려진 방앗간에서 한 차례 정사를 갖기를 요구받는다.

  한편, 각박한 현실에 찌든 채 어른들이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때에도 아이들은 천진난만하기만 하다. 새로운 놀이거리를 찾아 온 동네를 들쑤시고 다니던 성민과 창희는 같은 반 아이들과 함께 동구 밖 방앗간이 미군과 양공주들의 정사 장소임을 알게 된다. 그후 아이들과 함께 방앗간 뒤에서 정사장면을 훔쳐보기도 하던 성민과 창희가 미군짚차에서 망원경을 훔쳐내기 위해 방앗간에 몰래 숨어 들어간 어느 날, 둘은 안성댁과 미군 하사가 정사를 나누고 있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성민의 아버지 최씨가 망을 보고 있는 것도.

  다음날, 여느 때처럼 미군과 동네 처녀가 정사를 벌이던 방앗간에는 화재가 발생하여 미군이 사망하고 창희는 성민에게 한 마디 말도 남기지 않은 채 사라져버린다. 창희를 찾아다니던 성민은 둘만의 비밀 장소인 고목나무 구멍 안에서 창희가 두고간 미제 라이터를 발견한다. 이듬해 여름, 모두의 기억에서 방앗간 화재 사건이 희미해질 무렵, 방앗간 근처의 늪에서 미군 밧줄에 묶인 채 심하게 부패된 아이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 시신이 창희의 것일 거라는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의 추측을 부인하던 성민은 창희가 두고간 라이터로 창희의 생존 가능성을 점쳐본다. 아무리 시도해도 라이터가 켜지지 않자 창희의 죽음을 인정하게 된 성민은 아이들과 함께 창희의 장례식을 치러주어 고목나무가 있는 동산위에 창희의 무덤도 만들어준다. 창희의 죽음을 부정하던 창희 어머니 안성댁도 아이들이 만들어놓은 창희의 모의 무덤 앞에서 북받치는 설움을 참지못하는데.

  [스포일러] 휴전 협정이 맺어진 후 이 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생긴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창희 아버지 송씨(고동업 분)는 실종된 아들의 가출 이유와 방앗간 화재의 원인을 밝혀내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탐문하며 돌아다니고 미군 장교와 사귀던 성민의 누나 영숙은 미군의 아이를 임신한 채 버림받는다. 언제 해고당할지 모를 상황에 처한 성민의 아버지 최씨는 앞으로 살아갈 돈을 장만하고 자신과 안성댁의 비밀을 알아내기 전에 창희네를 떠나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군부대창고에서 물건을 빼돌리다가 붙잡힌다. 이제까지 아버지의 비겁함을 경멸하고 증오해오던 성민은 붉은 페인트칠을 당한 채 비참한 꼴로 미군부대에서 쫓겨난 아버지 최씨에 대해 다시금 연민과 동정을 갖게 된다. 미군의 추가적인 보복조치를 피하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기 위해 성민네가 곧바로 마을을 떠나기로 결정한 그 날밤, 성민의 꿈결을 타고 창희가 잠자고 있던 성민을 방을 다녀간다. 비몽사몽간에 일어나 켜본 창희의 라이터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신비롭게 바라보면서 성민은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창희가 아직도 살아 있을 거라고.
  {"고난과 절망의 시대에도 늘 희망의 불씨를 간직하고 사셨던 할아버님과 어머님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 이광모"}




▶1997년세계최대 중국 삼협댐 물막이공사 완성




▶1995년한국,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 이사국에 피선
▶1991년노태우 대통령, 비핵화선언 발표
▶1990년1만여명의 안면도 주민, 핵폐기물 저장시설 설치 반대시위
▶1990년새민방 명칭 `서울방송`으로 결정
▶1984년미국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제14차 우주여행 시작
▶1981년프렘 태국수상 내한
▶1980년정부, 경제활성화대책 발표. 금리인하
▶1972년동서독 기본조약 가조인


▶ 1968년 오늘, 서울시 '69년 6개월 12일 만에 전차' 퇴역.




▶1965년미국의 작곡가 에드가 바레즈 사망
▶1965년영국, 사형제 폐지
▶1961년서독수상에 아데나워 당선


▶ 1960년 오늘,'케네디' 미국의 제35대 대통령
으로당선!
<1961년~1963년 재임>  
1917년 5월 29일 미국 매사추세츠 브루클린에서 출생.
1963년 11월 22일  미국 텍사스 댈러스에서 암살당함.




▶1950년세계 첫 제트전투기 교전

한국전이 한창이던 1950년 오늘, 압록강변 신의주 상공에서 역사상 최초로 제트 전투기끼리 전투가 벌어진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유엔군과 국군은 파죽지세로 북진 했지만, 11월 초 중공군의 개입으로 큰 곤경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중국군의 개입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공산군에 '후퇴익' 제트전투기는 이때까지 압도적인 전력으로 제공권을 지켜오던 UN 군에게 큰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사실 전쟁발발 3일째인 6월 27일 미공군의 f82 전투기가 김포 상공에서 소련제 야크 전투기를 격추시킨 이래 한반도의 제공권은 미군이 쥐고 있었습니다. 그러던차에, 소련제 미그15 전투기의 출연은 가히 '미그 쇼크'라고 불릴만한 충격적인 사건이 었다.
최초의 제트전투기 간 공중전은 미군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날 미 공군은 폭격에 나선 b-29 폭격기 엄호를 위해 4대의 f80기를 출격시켰고,
이를 막기위해 6대 미그15기가 요격에
나섰던 것이다.
세계 최초로 벌어진 제트전투기 간의
대결이었고, 미.소 양 강대국이 자랑하는 최신병기 간의 격돌이였다.
역사적인 첫 번째 대결의 승리는 미공군에 돌아갔다. '러셀 브라운' 중위가 조종하는
f80기가 미그기 한대를 격추시킨 것이었다. 나머지 다섯대 미그기들은 도주하였다. 홀연히 등장한 미그15기는 미 공군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런데 이 승리는 f80d의 성능이 우수해서가 아니고, 오히려 대부분이 신참이었던 중국 조종사들과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베테랑들로 구성된 미군 파일럿들간에 기량차이 때문이었다. 항공기술자들의 분석에 의하면 제트기성능 자체로는 미그15기의 성능이 한 수 위였다.
영국제 롤스로이스엔진을 카피(copy)한 우수한 엔진에다, 37mm 기관포 1문,
23mm 기관포의 2문 등 강력한 무장까지 갖춘 미그15기는 당시 미 공군과 해군의 주력 전투기인 f80과 f9f 성능을 상회하고 있었다. 한국전 당시 미그15기의 조종은 중국군과 비밀리에 참전한 소련군 그리고 소수의 북한군 파일럿들이 맡고 있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중국군 조종사들의 능력이 향상되고, 노련한 소련군 조종사들이 비밀리에 참전해 미그기를 몰게 되자,
미 공군의 손실도 커져만갔다.
1951년 4월 12일은 미공군역사에서 '암흑의날'로 기록되었다.
압록강철교를 폭격하기 위해 미군은 72대에 달하는 b-29폭격기 와 호위임무를 맡은 f80 전투기 32대를 출격시켰고, 소련공군도 이에 맞서 60대의 전투기를 발진시켰다.
이날 공중전에서 소련공군은 단 한대 손실도 없이 20여대의 미군기를 격추하는 전과를 올렸다.


미국은 '미그 쇼크'를 상쇄하기 위해 당시 최신예기였던 'f-86 세이버' 전투기를 긴급 배치했다.

다급해진 미군은 본토로부터 최신예 f86 세이브 전투기를 급히 들여와 미그기와의 대결에 투입했고, 또 미국으로서는, 다행스럽게도 중국군은 이 우수한 전투기를 중국국경지역에서만 작전에 투입했고,
그보다 남쪽으로는 진출시키지 않았다.

후일 미군은 미그기가 자주 출몰하는 압록강 바로 남쪽지역을 '미그기 통로'< mig alley> 라고 불렀다.
미공군은 공식적으로 한국전쟁기간 중 미군과 중국간에 '교환비율' <아군의 전투기1대가 격추될때 격추된 적 항공기의 수 결과치>을 1-10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최근 밝혀진 중국측의 자료를 보면 이런 미국측의 자료는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사에서 발행되는 '환구시보'의 보도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격추된 미국기는 모두 1,106대로 소련공군의 손실335 대비 3배이상 많았다고 소개하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했던 소련조종사의 회고록을 인용한이 보도를 보면, 소련공군이 한국전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50년 7월 8일로 최초의 제트전투기끼리 교전이 있었던 날이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 전면전으로 비화할 경우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것을 우려해 자국 조종사들에게
중국 군복을 입혀 위장을 시키고,
조종사간 교신도 중국어와 한국어로만 하도록 지시하였다.
작전범위도 압록강과 청천강사이로 엄격히 제한했다고 '환구시보'는 전하고 있다.
또이 신문은 미그 15기가 한국전쟁기간 동안 모두 651대의 b-29 폭격기를 격추 시켰으며,이 때문에 미 극동공군의 전략폭격 능력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고 밝혔다. 이때문에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소련, 중국 ,북한 등에 원폭을 투하하겠다는 구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이 신문에 결론이다.
출처 블로거 영원 속으로


▶1944년독일, 신무기 V-2호 발명
▶1942년미-영 연합군 북아프리카 상륙작전
▶1936년프랑코, 스페인 총통 취임
▶1932년미국 대통령선거. 루스벨트 제32대 대통령에 당선 확정(10일)
▶1915년원산 상수도 준공
▶1912년대한인국민회, 샌프란시스코에 중앙총회 설립
▶1905년변호사법 반포(최초의 변호사제도)
▶1900년미국 여류소설가 마거릿 미첼 출생



▶1895년뢴트겐, X-선 발견

1895년 오늘 음극선의 효과를 실험하던 '빌헬름 콘라드 뢴트겐'은 새로운 형광빛을 발견한다. 암실에서 진공관을 두꺼운 검은 종이로 감싼 다음 시안화 바륨을 바른 판에 고압전류를 연결하는 순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빛'이 나왔던 것이다.
뢴트겐이 관찰하려던 음극선은 아니었다. 뢴트겐은 이수상한 빛의 정체를 밝혀려 애를 썼으나 실패했다. 그는 '불가사의'한 이 빛에
'x 선'이란 이름을 붙였다.
실험을 거듭한 그는 한 달쯤 뒤 아내를 설득해 엑스선이 통과하는 길에 손을 내밀게 한 다음 엑스선을 쏘았다.
사진 겉 판에 '손가락뼈'가 나타났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사람의 뼈를 찍은' 역사적 순간이었다. 왼쪽에는 그간의 실험을 정리한 논문을
그해말 학회에 보냈다.
'x선' 발견 1보에 대한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물리학자는 물론, 의사와 발명가등도 '엑스선' 열풍에 가세했다. 1896년 한 해 동안 발표된 엑스선 관련 논문 만도 1천 이상이었다.
가히 폭발적이었다. 과학적 발견이 이처럼 즉각적으로 세계적인 큰 뉴스가 되기는 처음이었다. 1897년에는 '뢴트겐 협회'가 결성되었다. 'X 선'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사람들은 의사들이었다.
엑스선이 발견된지 2~3년도 되지 않아 엑스선으로 부러진 뼈를 촬영하고 몸 속에 박힌 탄환이나 금속을 찾아냈다.
엑스선으로 인해 소리로 듣거나 눈으로만 봐야했던 의술이 인체의 내부구조를 직접 볼 수 있는 새로운 시대로 전환했다.
'x 선' 발견은 물리학계에서 발견의 시대를 여는 기폭제가 됐다. 앙리 베크렐의 방사능, 1896년 퀴리 부부의 라듐, 1898년 톰슨의 '전자' 1897년, 발견은 모두 'x 선' 발견에서 고무된 발견이었다. 과학사가들은 엑스선을 발견한 해를 20세기 과학 원년으로 삼고있다. 뢴트겐이 1901년 '제1회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던 자연의 모습을 해명해 보인 엑스선의 등장으로, 의학은 지난 1세기 동안 엄청나게 발전했다. 각종 진단용 검사의 7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엑스선은 생명과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데에도 커다란 공헌을 하고 있다.




▶ 1884년  국내 최초 우표 발행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는 개화파 홍영식과 생사를 같이 했다. 홍영식은 첫 우정총감에 올라 첫 우표를 발행하는 공을 세웠지만 갑신정변 실패로 그가 참살되면서 우정총국도 폐지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가 발행된 것은 1884년 11월 18일. 아직 우표란 용어가 없었는지 우표에는 한글로 ‘대조선국 우초’, 영문으로 ‘COREAN POST’라고 쓰여있었다.

  우표가격은 당시 통용화폐단위인 문(文)으로 표시된 5문·10문이었다. 원래는 25문·50문·100문까지 5종을 일본 대장성에 제조를 의뢰했으나 우정총국이 폐지된 이후 나머지 3종이 도착하는 바람에 미발행 우표가 됐다. 발행우표도 실제로 사용됐다는 뚜렷한 증거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ㆍ구한말 우정국 개국기념 ‘문위 우표’ 첫선

  1881년 조선이 일본에 신사유람단을 파견할 때 주요 시찰 대상은 군사제도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구한말 개화파인 홍영식의 관심은 유독 우표로 쏠렸다. 그는 일본의 역체국(현 우체국)에 찾아가서 우편업무를 적극적으로 조사했다. 직접 비싼 돈을 내고 사람을 고용하지 않아도 주소를 적은 봉투에 일정한 값의 우표만 붙이면 전국 방방곡곡으로 배달되는 시스템에 크게 매료됐던 것이다. ‘일본 우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마에지마 히소카는 자서전 <우편창업담>에서 당시 그와의 만남을 회상하면서 조선에도 빨리 우편을 개설하라고 권고했다고 적었다.

  홍영식은 귀국 후 고종황제에게 우편제도가 국가의 발전에 꼭 필요하다고 상소문을 올렸다. 정보의 흐름이 많아지고 빨라지는 것, 또 모두가 공평하게 그 정보의 연결망을 이용하는 것은 오늘날의 인터넷 혁명과도 같은 커다란 변혁일 터였다. 홍영식은 1883년에는 미국 뉴욕의 우체국과 전신국을 돌아본 뒤 귀국해 고종에게 또다시 국가 차원의 우편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렇게 해서 1884년 음력 3월27일(양력 4월22일), 옛 체신부(현 정보통신부)의 전신인 우정총국이 만들어졌고, 홍영식이 장관격인 초대 우정총판에 임명됐다. 건물은 당시 궁중의 약방인 전의감 건물을 고쳐 썼는데, 현재 체신기념관인 이곳을 요람으로 우편 제도의 골격이 형성됐다.

  그리고 최초의 우표가 만들어졌다. 당시 인쇄시설이 없던 조선은 태극을 주요 모티브로 한 다섯 종의 우표를 일본에 찍어 달라고 의뢰했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인쇄됐다고 한다. 그래서 가로 23㎜, 세로 26㎜인 우표는 음양태극장에 둘레가 당초 문양으로 꾸민 모양이 됐다. 우표의 단위는 1푼을 뜻하는 ‘문’을 붙여서 5문, 10문, 25문, 50문, 100문 등 다섯가지로 ‘문위 우표’라고도 불렸다. 총 280만장의 우표가 인쇄돼 우정국 개국일인 음력 10월1일(11월18일)에 2만장이 도착했다. 서비스 지역은 일단 서울과 인천이었다.

  하지만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이 3일 만에 끝나는 혼란 속에 우편제도도 19일 만에 중단되고 말았다. 홍영식은 그해 12월6일 참살당했다. 일본이 인쇄한 우표의 나머지 분량은 정변 다섯 달 뒤인 이듬해에 도착했다. 당시 황실은 인쇄대금을 지불하기 어려워 우리나라에 주재하던 독일 상사에 문위우표를 매각해 대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진다.



▶1847년산부인과 의사 제임스 심프슨의 세계최초의 무통분만 시행
▶1674년영국 시인 존 밀턴 사망
▶1656년영국의 천문학자 핼리 출생
▶1226년카페 왕조 출신 프랑스의 왕 루이8세 사망


https://youtu.be/oCr1FBo7Zlk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