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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11월 9일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 붕괴

동서 분단과 냉전체제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 9일 붕괴됐다.

동독내의 개혁열기가 비등하고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대규모 이주가 계속되자 동독 스스로 분단의 벽을 허문 것이다.

베를린 장벽은 지난 1961년 8월 에리히 호네커의 감독 아래 설치돼 동베를린 시민들의 서베를린으로의 탈출을 막았다. 장벽은 폭 50m의 완충지대가 있는 66㎞의 이중철망과 55㎞의 단선철망, 25㎞의 콘크리트벽 등으로 구성됐다. 이 장벽과 구조물들을 제거하는데 4백명의 전문가가 달라붙어 3년이 소요됐으며 1억마르크의 돈이 들었다. 제거된 흙과 시멘트는 무려 75만t이나 됐다.


동서독의 화해분위기는 이미 지난 196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장벽을 일시 개방,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간 인적교류 즉, 주민왕래를 실현시키면서 시작됐다. 이것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은 분단국 최초의 자유왕래였다. 이를 계기로 양측간에 설치된 ‘철의 장막’은 차근차근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동서독은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해나갔다.

첫 인적교류가 이루어진지 1년도 채 안돼 동서독은 1964년 부활절을 계기로 자유왕래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1964년 서독은 서독국민이 제한없이 동독내 어느지역도 방문할 수 있다고 선포했고 동독은 60세이상 연금수혜자에게 서독방문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양독간의 꾸준한 교류가 계속되는 가운데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고 동구권에 민주화 개방화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동서독 통일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개방하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몰려들면서 동독의 체제 붕괴는 시간문제가 됐다. 여기에 피난민을 10만 명으로 예상한다는 서독 콜 총리의 발언이 알려지자 동독에서의 탈출은 현대판 엑소더스로 발전했다.

동독의 각 도시에서도 연일 반정부 데모가 이어졌다.
10월 2일 1만 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민주화 시위에 유화적인 에곤 크렌트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면서 더욱
거세졌다. 시위세력은 10월 30일에는 50만, 11월 4일에는 100만 명으로 불어났다.

마침내 11월 9일 , 소련은 동독에 비공산 정권이 들어서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날 저녁 7시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을 포함해 모든 경계를 전면개방한다고 발표했다. 동베를린 시민들은 밤10시부터 검문소를 넘기 시작했다. 이후 통일 협상을 시작해 1990년 8월 31일 45개 조항으로 이뤄진 통일조약에 서명했고 5주 뒤인
10월 3일 협정이 발효됐다.

▶2005년제5차 북핵 6자회담 개막(베이징)
▶2005년무형문화재 제31호
탱화장 고재석(81)옹 별세
▶2001년일본 자위대,
아프간에 2차대전후 첫 전쟁지역 함대 파견

▶2000년국학자 이가원 교수 별세
▶2000년중국 고대 3왕조
(夏왕조-商왕조-周왕조)에 대한 구체적
연표 공식 발표. 하왕조 개국은 기원전 2070년
▶1999년한평생 국내 오페라 개척한
성악대모 김자경 여사 별세
▶1996년한국불교연 이사장 이기영 박사 별세
▶1996년금호미술관 개관



▶1991년이브 몽탕 사망

몽탕 [Montand, Yves, 1921.10.13~1991.11.9]

  낙엽이 흩어지는 이맘때. 가수이자 배우인 이브 몽탕의 노래 '고엽'이 세계의 전파를 탄다. 가을 서정을 전하는 듯한 낭만적인 선율과 따스하고 그윽한 음성을 남기고 1991년 11월 9일 타계했다.

​Les Feuilles Mortes (고엽) / Yves Montand (이브 몽탕)
https://youtu.be/VE6Nrz13-TE

이브 몽탕은 1921년 10월 13일 이탈리아 밀라노 근교 몽스마노에서 빈농의 3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보 거비. 세 살이 되던 해 공산당원이던 아버지가 파시스트를 피해 프랑스 마르세유로 이주하면서 프랑스인이 된다. 11세에 학업을 그만둘 정도로 가난은 여전했다. 빵 공장과 제철소 등에서 일하며 집안을 도왔다. 17세에 우연히 무대에 서며 이름을 이브 몽탕으로 바꾼다. 가수로 차츰 명성을 날리던 무렵 만난 운명의 여인이 에디트 피아프다. 샹송의 여왕으로 불린 그녀는 사랑과 노래를 일깨워 주었다. 이후 부인인 시몬 시뇨레 외에도 매릴린 먼로,셜리 머클레인,카트린 드뇌브,이자벨 아자니 등과 염문을 뿌려 세기의 연인으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이브 몽탕은 공산주의자였다. 소련과 동구를 방문해 환대를 받았으나 소련의 헝가리 침공은 그에게 공산주의에 대한 환멸을 안겨 주었다. 하지만 평생 그 길을 걸었다고 말년에 고백했다. 또한 피카소,사르트르,흐루시초프 등과 교유하며 사회운동에도 힘썼다. 반핵과 반전 운동에 동참했다. 약자와 정의의 편이었고 인권과 평화를 위해 예술을 결합시켰다. 프랑스 대통령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누렸으나 이브 몽탕은 죽는 날도 배우였다. 70세 되던 해 영화 'IP 5' 촬영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연인 에디트 피아프와 부인 시몬 시뇨레가 잠든 파리의 페르라세즈 묘지에 묻혔다.



▶1990년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
▶1989년베를린 장벽 붕괴



▶1989년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
국가주석직 사임




▶1989년장쩌민(江澤民), 중국 군사위 주석에 선출




▶1989년한국-멕시코, 경제과학 및 기술협정 체결


▶1988년조지 부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

조지 부시.

▶1987년민주당, 임시전당대회서
김영삼 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
▶1983년레이건 미국 대통령 일본 방문,
나카소네 수상과 회담
▶1981년노태우 정무장관
유럽-아프리카 13개국 순방 등정
▶1970년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사망
▶1966년경북선 철도 개통


▶1965년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 당선

12월 30일, 8만명의 시민들 앞에서
제6대 대통령 취임 선언을 하는 마르코스.

▶1964년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일본 수상에 선출
▶1963년일본, 우우타에서 탄광폭발 458명 사망
▶1961년에쿠아도르 부통령 아르세메뇨,
대통령으로 승격 선서


▶1960년케네디, 미국 대통령 당선

존 F. 케네디.





▶1957년캄보디아 중립법 공포
▶1957년소련-인도 경제협력협정 조인
▶1954년크메르 독립
▶1953년캄보디아, 프랑스로부터 독립
▶1949년미국,영국,프랑스
3국 외무장관, 독일문제 회담


▶1947년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 경향신문에 발표





▶1945년파리서 2차대전 배상회의 개최
▶1945년중국 국공내전 시작
▶1942년미국, 프랑스와 단교
▶1938년일제, 경제경찰제도 실시



▶ [1938년]나치, 유태인학살 시작
강제수용소의 유태인들. 사진은 이곳을 해방시킨 미군이 1945년 5월에 촬영한 것이다.


나치의 선전상 괴벨스에 의해 주도된 유태인 학살이 1938년 11월 9일부터 독일 전국토에서 자행됐다. 한 유태인 청년이 7일밤 파리 소재 독일대사관원을 사살했고 유태인 전체가 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반쯤 미쳐 날뛰던 나치정권은 이날 밤 전독일의 유태인 교회와 상점, 주택에 불을 지르고 수만명의 유태인을 체포했다. 4백여명은 현장에서 무자비하게 살해됐다. 경찰집계에 의하면 814채의 상점, 171채의 주택이 파괴됐고 191채의 유태교 교회가 방화됐다.
이같은 일련의 유태인 박해는 주로 SA대원에 의해 자행됐는데 그들은 이날 밤에만 3만5000여명의 유태인을 체포,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아기를 안고있는 엄마를...




▶ 1938년 오늘,독일에서 '수정의 밤'사건일어남.
<독일전국에 유대교회당과 유대상점,주택을 파괴하여
그 부서진 유리파편이 온 거리에 뒤엎어진 모습을 묘사한 것>


1938년 11월 9일부터, 나치의 국민계몽 선전부장 '괴벨스', <1897년 10월 29일~ 1945년 5월 1일>에 의해 주도된 '유대인학살'이 독일 전국토에서 자행됐다.
한 유대인청년이 7일밤 파리소재
독일대사관원을 사살했고, 유대인 전체가
이 범죄에 가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를 유대인 '대박해'라고 한다.
이미 반쯤 미쳐날뛰던 나치정권은 이날 밤
전 독일의 유대인교회와 상점주택에 불을 지르고, 수만명의 유대인을 체포했다. 400여명은 현장에서 무자비하게 살해되었다. 경찰집계에 의하면, 814채의상점, 171채의 주택이 파괴됐고, 191채의 유대교 교회당이 방화됐다.
이 같은 일련의 유대인박해는 주로 sa대원에의해 자행됐는데,
그들은 이날 밤에만 3만 5천여명에 유대인들을 체포,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은 2차 세계대전중 유대인뿐만 아니라, 슬라브족, 집시,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 등 약1,200만명의 민간인과 전쟁포로를 '학살'하였고,
이를 후세는 '홀로코스트'라 명명했다. 사망자중 유대인은 약 600만명으로 당시 유럽의 거주한 유대인의 3분의2에 해당하는 수였다.
유대인에 대한 살해는 어린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토'에 수용한 후 화물열차에 실어 '집단수용소'로 이동하였다.
강제노역에 동원되어 과로사하는 경우도 있었고 총살로 처형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을 '총살'했지만, 한계도 분명했다. 우선, 처형속도가 문제였으며, 이와 더불어 탄약문제도 심각했다. 둘째 처형부대원들에게서 심리적인 부작용 현상이 발견되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독가스'를 이용한 '대량학살'이었다.

<1945년 5월1일, 자살한 괴벨스부부와 독약을 먹여
죽인 자녀들.>자식이 여섯명인가...



▶1937년일본, 상해점령


▶1925년히틀러 `친위대(SS)` 탄생




▶1920년보통학교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
▶1920년단찌히 자유시 선언
▶1919년김원봉 의열단 조직
▶1918년독일 노동자 혁명, 빌헬름 2세 퇴위
▶1918년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사망
▶1905년13도 유생들, 일본공사의 횡포 통박 성명



▶1899년소파 방정환 출생
작은 물결을 큰 물결로 만든 어린이날의 창시자, 방정환




▶1878년도산 안창호 출생  - 민주주의적 민족국가 수립 위해 헌신한 뛰어난 지도자이자 실천가, 안창호

안창호 출옥 후 기념촬영한 것으로 왼쪽부터 여운형, 안창호, 조만식 (1935)


▶1874년전두엽절제술을 개발한
포루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 출생
▶1872년미국 보스톤에 대화재. 850명 사망
▶1841년영국의 왕 에드워드7세 출생
▶1818년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 출생
▶1799년나폴레옹, 쿠데타에 성공


https://youtu.be/uBK_UZHhAvA






출처 네이버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