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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11월 19일

✿2002년 11월 19일
7만7000여t 중유 실은
유조선, 스페인 해안 침몰

7만 7000여t의 중유를 싣고 스페인 북
서부 갈리시아 근처를 항해하던 중 많은 양의 기름을 흘러내리며 가라앉기 시작했던 4만 2000t급 유조선 프레스티지호(號)가 19일(현지시각) 조난 5일 만에
완전 두 동강난 채 깊이 3500m의 바다로 침몰했다.

유조선이 싣고 있던 연료용 중유는 지난 1989년
알래스카 근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스호 침몰
사건으로 유출된 기름(원유)
의 약 2배에 이르는 데다 중유는 원유보다 정화 작업이
훨씬 어려워 최악의 해양 오염이 우려됐다.

유조선은 지난 14일 태풍으로 침몰하면
서 기름을 뿜어냈다. 흘러나온 기름은 갈리시아의 바위투성이 해안 200㎞를 오염시켜 갈매기를 비롯한 바닷새들과 게 등 수많은 해양 동물들이 죽고 해조류 등
해양 식물이 오염됐다.

환경운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은 해변
에서 시커멓게 물든 바닷새들을 구조
하고, 해변의 기름 찌꺼기를 제거했다.

스페인 정부는 유럽 국가들을 향해
중유 제거 설비와 선박 지원을 요청했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기름 제거 선박이 전문가들과 함께 현지에 도착하는 등, 12개국이 피해 복구 지원 의사를 밝혔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의 환경 전문가 그룹은 “문제는 스페인 연안을 적시고 있는 기름뿐만 아니라 해저에 가라앉은 기름이 어류와 패류, 그리고 다른 생물들
에게 매우 해롭다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유럽 언론들은 건조된 지 26년이나 된 낡은 유조선이
선체 이상 검사도 받지 않은 채 운항을 할 수 있었는가에 가장 큰 의문을 표시하면서, 유럽 국가들의 공동 대처를 촉구했다.

EU는 부랴부랴 회원국들에 대해 프레스티지호와 같은 단일선체 선박의 항해를 금지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해상안전 강화책의 시행을 앞당기기로 했다.



▶ 매년 11월 19일은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고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UN에서 지정한 ‘세계 화장실의 날’입니다.

2020년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은 위생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사람들에게 다시금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최소한의 개인위생을 유지하고 건강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화장실은 가장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것 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 세계 학교의 31%는 안전한 식수가 부족하고, 37%는 위생시설이 부족합니다. 수많은 어린이와 소녀들이 이용하는 학교에 깨끗하고 안전한 위생 시설 및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지 않아 야외 배변을 하거나 비위생적인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 2009년 첫 EU 대통령 선출

왼쪽부터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와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

2009년 11월 19일 유럽연합(EU) 특별 정상회의에서 EU 개혁조약인 리스본조약에 따라 신설된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 헤르만 반 롬푸이(62) 벨기에 총리가 선출됐다.
이날 특별 정상회의에서 초대 외교ㆍ안보정책 고위대표(이하 외교대표)로는 영국의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지명됐다.
롬푸이는 2008년 12월 벨기에 총리가 됐으며 당시 이브 르테름(Leterme) 총리가 권력 남용 스캔들로 사퇴하자 하원의장이었던 롬푸이를 벨기에 국왕이 후임 총리로 지명했다. 당시까지 벨기에 정계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으나 벨기에의 지역 갈등을 완화시키고 글로벌 경제위기를 잘 견디어내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숨을 쉴 때만 입을 연다' 는 표현처럼 조용한 성품으로 27개 회원국의 갈등을 조율하고 융화시켜야 하는 EU의 지도자로서 화합과 조화의 리더십을 기대받고 있다.
롬푸이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면서 중도 우파 정치인으로 현재 EU의 정체성을 잘 대표한다. 그는 네덜란드어·프랑스어·영어에 능통하고, 1990년대 벨기에 예산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재정 적자를 큰 폭으로 줄인 경제통으로도 알려져 있다.
속칭 'EU 대통령' 이라고도 불리는 정상회의 상임의장과 'EU 외교장관' 격이라 할 수 있는 외교안보 고위대표 까지 무난히 선출함으로써 EU는 정치적 통합이 한층 강화되고 대외적 영향력도 확대된 리스본조약 체제를 내달 1일 출범시킬 수 있게 됐다.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년 6개월의 임기를 수행하게 된다. EU 대통령으로도 불리지만 실권은 거의 없으며 EU 집행위원회는 별로도 선출된 집행위원장이 지휘하고, EU 각료 이사회도 6개월 주기로 순번 의장국의 각료가 의장을 맡는다. 그러나 EU를 대표한다는 상징성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는다. 연봉은 30만~35만 유로(약 5억2000만~6억원)로 미국 대통령 연봉(약 4억6000만원)보다 많으며 22명의 개인 참모와 10명의 경호원, 상임의장 전용 리무진 승용차를 운전할 운전기사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을 수행한다.



▶2009년 패션모델 김다울 프랑스
자택에서 사망
▶2008년 행남자기 김준형 창업주 별세



▶2004년 광주, 수능 ‘휴대전화 부정’ 사건

광주 '수능 휴대전화 부정사건'
22일 수능시험 부정사건의 진원지로 지목된 광주지역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학교 복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2004년 11월7일 치러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휴대전화를 이용한 '부정행위'와
'대리시험'으로 얼룩졌다.
광주에서 시작된 부정파문은 곧 전국으로 확대됐으며. 수험생 등 374명이 입건되고, 314명의 성적이 '무효처리'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학원장이 낀 조직', '대물림 커넥션'까지 밝혀지면서 사회에 만연한 '학벌지상주의'와 '도덕불감증'을 여실히 드러냈다.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 부정행위 소문은 수능 이틀 전인 15일 광주시교육청 홈페이지에 자신을 한 수험생으로 밝힌 네티즌의 글이 떠돌면서 구체화됐다.
이 네티즌은 후배가 여관에서 답을 받으면 그것을 종합해 다른 학생들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1년 전부터 준비해왔으며
답을 보내는 학생은 바지속에 휴대전화를 넣고 진동으로 한 뒤 두꺼운 코트로 가리고 문자메시지를 보낸다고 썼다.
이 글에 '컨닝조직'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로 구성되어 다른 학생에게 과목당 30만원에서 50만원을 받고 휴대전화에 문자메시지로 답을 전송하는 방법으로 부정행위를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등 그 내용이 상세했다. 부정행위는 학생들이 사전에 '여행연습'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지역 이미지 훼손을 심각하게 우려하는 가운데 부정행위 수사는 전국차원으로 확대되었다. 결국 조사결과 전국적으로 부정행위가 이루어진 것으로 밝혀졌고, 광주가 유달리 심했다는 점에서 충격을 던져 주었다.




▶1999년 중국, 러-미에 이어
세 번째로 무인우주선 발사

중국 무인 우주선 션저우(神舟)호가 발사되고 있다.

▶1995년 크바스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에 당선



▶1987년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회장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에서 폐암으로 사망.
1910년 2월 12일 경남 의령군 정곡면 중교리에서 출생.
1938년에 삼성상회를 세웠으며
이후 무역업에도 종사하였다.
1951년에는 삼성물산을 1953년에는 제일제당과 제일모직을 설립했고,
수출을 통해 제조업을 확장하여 삼성중공업, 삼성물산, 삼성석유화학 등 삼성그룹의 기반을 닦았다.
1964년 5월에 방송국 TBC를
다음해 9월, 중앙일보를 창설하여 방송과 언론에도 진출하였다. 이건희 부회장 승계.





▶1984년 중단되었던
남북적십자회담 예비접촉 열려
▶1984년 멕시코시티 가스공장서 대규모
폭발사고 544명 사망. 주민35만명 대피
▶1982년 미국, 퍼싱II 미사일 발사 성공
▶1981년 여-야,
야간통금해제를 정부에 건의



▶1980년 KAL기 김포공항서 착륙중 화재 15명 사망, 15명 부상


▶1979년 계엄 당국의 휴교 조처 해제로 대학교 전면 개교




▶1979년 이란, 미국 인질중
여자등 13명 석방
▶1978년 북경에 모택동비판 대자보 등장
▶1977년 인도에 해일 발생. 2만여명
실종
▶1977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
▶1975년 유엔총회, 한국문제의 서방-
공산측 두 결의안 동시채택
▶1975년 한-이란 각료공동회의.
한국의 대(對)이란 기술자 파견,
건설참여 등 10개항 조인
▶1968년 한국-스와질란드 국교 수립
▶1965년 바티칸 공의회,
신앙의 자유 선언안을 승인
▶1963년 몬트리올서 캐나다
여객기 추락 117명 사망
▶1961년네 루-나세르-티토,
나세르에서 중립국 수뇌회의
▶1960년북한, 남북연방제



▶ 1954년 오늘, 일본정부 '독도 도안 우표'가 부착된 한국우편물을 '반송'하기로 의결




▶ 1863년 오늘, 링컨, '게티스버그' 연설.
"인민에,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는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이때 남긴 말이 유명하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그는 남북전쟁에서 북군을 지휘하여 점진적인 '노예해방'을 이루었다.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이듬 해 '암살'당했다. <1809년 2월 12일 미국 켄터키주 하젠 빌에서 출생 1865년 4월 15일 미국 워싱턴 D.C 포드 극장에서 사망>

남북의 분열을 막아 미국이 세계최강대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중요한 발판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게티즈버그 전투가 끝나고 4개월이 지난 뒤, 1863년 11월 19일 링컨 대통령이 게티즈버그를 찾았다.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는 국립묘지 개관식 자리였다.

   링컨이 연단에 서자, 사람들은 당대의 웅변가 에드워드 에버렛이 장장 2시간에 걸쳐 이미 1만5000명의 청중들을 울리고 웃긴 뒤라 링컨의 연설이 주목을 받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87년전 우리의 선조들은... 새로운 나라를 세웠고...”로 시작된 간결하고도 감동적인 어조의 연설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는 이 세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다짐해야 합니다.”로 끝을 맺은 이날의 연설은 훗날 명연설의 고전이 됐다.

                
   게티즈버그

   1863년 11월19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대통령 링컨이 민주주의역사에 남을 만한 연설을 했다.
   이 연설이 유명하게 된 것은 민주주의의 정의로 자주 인용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라는 구절이 거기서 언급되기 때문이다.
   링컨은 이날남북 전쟁의 격전지인 게티즈버그의 전몰 장병들을 추모하는식전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건국 이념을 강조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은 병사들이 자신들의 목숨과 맞바꾼 목적에 더 헌신할 것을 다짐해야한다고 말하고, 그 목적이란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정부를 지상에서소멸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마무리했다.
   이것은 흔히 ‘링컨의 5분 연설’이라고 불린다.
   게티즈버그에서는 그 해 7월1일부터 사흘간 북군과 남군 사이에 대격전이 벌어진바 있다.
   그 얼마 전 챈슬러즈빌에서 북부 연합군을 격파한 남군의 리 장군은 북부침입 작전을 세우고 전군을 펜실베이니아로 몰아 게티즈버그를 공격했으나,미드 장군이 이끄는 북군 제3군단의 수비를 깨지 못하고 많은 희생을 치른 채 7월4일 버지니아로 후퇴했다. 이 게티즈버그 전투를 계기로 내전에서북군의 승리는 결정적이 되었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치’가 동시적으로구현될 때에만 가능하다. ‘인민에의한’만이 강조될 때, 정치는 대중의변덕과 이기주의에 이끌리는 포퓰리즘으로 타락할 수 있다. 그것보다더 위험한 것은 ‘인민을 위한’만 강조될 때다.


   1863년 11월 19일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은 남북전쟁 격전지인 펜실베이니아 게티즈버그에서 전사 장병을 위로하는 연설을 했다. 300개도 채 안 되는 단어로 이뤄진 이 연설은 시적 간결성과 심오한 철학으로 미국 최고의 연설이라는 평가를 받아 왔다. 미국 역사 교과서에 전문이 실릴 정도로 유명한 연설이다. 하지만 게티즈버그 연설에 대해 정확히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다. 워싱턴포스트는 17일 게티즈버그 연설 150주년을 맞아 연설에 얽힌 재미있는 사실 5가지를 선정했다.

   첫째, 연설의 정확한 단어 수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5개 버전의 연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링컨 대통령이 친구 5명에게 선물한 연설문의 단어 수는 265, 268, 270, 272, 273개로 조금씩 다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알렉산더 블리스 장군에게 선물한 272단어 버전이다. 블리스 장군이 소장했던 연설본은 백악관 링컨룸에 걸려 있다.

   둘째, 링컨 대통령은 이날 연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주인공은 매사추세츠 주지사, 주영 대사 등을 지낸 유명 연설가 에드워드 에버렛이었다. 에버렛의 기조연설이 끝난 후 링컨 대통령은 찬조 연설자로 나왔다. 에버렛의 연설은 두 시간 동안 계속된 반면에 링컨 대통령은 2분 만에 끝냈다.

   셋째, 연설 후 박수가 터지지 않아 링컨 대통령은 잠시 당황했다. 연설이 너무 짧아 참석자들은 연설이 계속될 것으로 생각해 박수를 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연설 사진도 없다. 사진사가 카메라를 조절하는 사이 연설이 벌써 끝났기 때문이다.

   넷째, 일각에서는 링컨 대통령이 기차로 현지에 가는 동안 연설 내용을 급조했다고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링컨 대통령은 4개월 전 백악관에서 게티즈버그 연설 내용과 매우 비슷한 내용의 연설을 했다. 백악관 연설을 4개월 동안 다듬어 게티즈버그에서 한 것이다.

   다섯째, 후임 대통령들은 게티즈버그 연설과 비교되는 것이 두려워 ‘게티즈버그 기념 연설’은 피했다.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1963년 연설 100주년을 맞아 게티즈버그를 방문했지만 기념 연설은 사양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 150주년 기념행사에 아예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우드로 윌슨 전 대통령은 50주년 기념 연설을 했지만 혹평에 시달렸다.




▶ 1828년 오늘,
오스트리아 작곡가 'F.P. 슈베르트'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사망.(1797년
1월 31일 비엔나 에서 출생) 초기 독일 낭만파의 대표적 작곡가의 한 사람으로 '가곡의 왕'으로 불리고 있다.
600여 곡의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장티푸스에 걸려, 아내도 가정도 없이 31세 짧은 나이로 생을 마쳤다.
유언에 따라 '엔링크묘지'에 있는 '베토벤'의 무덤 가까이 묻혔는데, 1988년 두묘 모두
빈의 '지멜링크' 중앙묘지로 옮겨졌다.
작품 가곡 , 가곡집 , 겨울 나그네, 교향곡  등




▶ 1598년 오늘, 이순신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정유재란때, 1598년(선조 31년)
11월 18일부터 19일, 이틀사이에
이순신장군과 진린이 이끄는
조,명 연합함대가 노량 앞바다에서 왜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
(경상남도 남해도와 하동사이에 해협)
1597년 재침한 왜군은 그해 9월 '명량해전'에서 패배한데 뒤이어 육전에서도 계속 고전하였다.
다음해, 8월 도요토미가 병사하자 왜군은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철수작전'을 서둘렀다.
이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과 함께 1598년 9월, 고금도 수군진영을 떠나 노량 근해에 이르렀다. 명나라 육군장 유정과 수륙합동작전을 펴서 왜교에 주둔하고 있는 왜군 고니시 유키나가에 부대를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그때 고니시는 수륙 양면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명나라 진린에게 '뇌물'을 바치고 퇴로를 열어 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진린은 고니시가 마지막으로 요청한 통신선 1척을 빠져나가게 하고, 이순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고니시는 통신선으로 사천 등지의 '시마즈'와 연락해 남해, 부산등지에 있는 왜군 수군의 구원을 받아 조,명 연합수군을 협공하면서 퇴각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런 고니시의 전략을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은 진린을 꾸짖고 함께 진영을 재정비해 왜군을 맞아
격멸하기로 하였다.
11월 18일 밤 이순신의 예견대로 노량 수로와 왜교 등지에는 500여척의 왜선이 집결해 협공할 위세를 보였다.
200여척의 조,명 연합수군을 거느린
이순신은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고, 하늘에 빌고,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19일 새벽싸움은 막바지에 이르고, 이순신과 진린은 서로 위급함을 구하면서 전투를
독려하자, 왜의 수군 선박 200여 척이 불에 타 침몰하거나 파손되고, 100여척은
이순신 함대에 나포되었으며 나머지
패잔선들이 관음포 쪽으로 겨우 달아났다. 이순신은 같은 날 오전 관음포로 도주하는 마지막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탄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세계 전쟁사상 길이 빛나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이 해전에서 명나라 장수 등자룡과 가리포첨사 이영남, 낙안군수 방덕룡등이 전사하였다. 한편 순천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의 군사들은 남해도 남쪽을지나 퇴각해 시마즈 군과 함께 부산의 집결, 철수했다.
노량해전을 끝으로 정유재란은 막을 내렸다.




https://youtu.be/ZkbjhsZi2Rk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