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16일
유조선 좌초로 갈라파고스
제도 오염 피해 극심

2001년 오늘, 남미 에콰도르에서 서쪽
으로 960km 떨어진 갈라파고스 해역
에서 유조선이 좌초됐다. 이 사고로 원유 600여 톤이 유출됐다. 기름띠가 퍼진 면
적이 1,200㎢에 이르렀다. 생태계의 보고
(寶庫)로 알려진 갈라파고스제도의 여러 희귀 동식물이 큰 피해를 입었다.

▶2009년부부 강간죄 첫 인정 판결

부부(夫婦)간 성행위에도 강간죄가 성립한다는 판결이 처음으로 나왔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는 2009년 1월 16일 아내의 의사에 반해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임모(42)씨에 대해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임씨는 2006년 8월 결혼정보회사를 통해 만난 필리핀 출신 아내(24)가 지난해 8월 생리 중이라며 성관계를 거부하자 흉기로 협박해 강제로 성관계를 가진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형법상 강간죄의 대상인 ‘부녀’ 에 ‘혼인 중의 부녀’ 가 제외된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법이 강간죄로 보호하려는 대상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 결정권이며, 아내 또한 이런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또 “폭행과 협박에 따른 강제적 성관계는 부부 사이라도 일반적인 강간죄와 다를 것이 없다” 면서 “이같이 가정 내에서 은밀히 발생하는 부부 사이의 성폭행은 아내를 성의 도구나 노예로 전락시켜 아내의 행복추구권과 자유로운 인격 실현, 존엄성을 해치기 때문에 법률로 규제하지 않으면 반복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고 밝혔다.
한편 국내에서 처음으로 부부(夫婦) 사이의 강제적 성 행위에 대해 강간죄가 성립한다고 인정한 이번 판결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부산지법 판결처럼 성적(性的) 자기결정권이 부부 사이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찬성론이 있는 반면, 반대론도 팽팽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 강간죄를 반대하는 측은 민법상의 동거의무에 부부가 성 생활을 함께할 의무가 내포돼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또 부부강간죄를 인정하면 전통적인 부부간의 신뢰 관계가 깨지고 실제로 이혼하게 될 때 재산분배에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남용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앞서 1970년 3월 대법원은 “남편이 폭력으로써 강제로 처(妻)를 간음했다 하더라도 강간죄는 성립되지 아니한다” 고 부부 강간죄를 부정한 바 있다. 당시 대법원은 법적인 부부관계가 유지되고 있는 한 강간죄는 성립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미국 뉴욕주 항소법원에서는 1984년 “혼인증명서가 아내를 강간하는 자격증이 될 수는 없다, 기혼 여성도 미혼여성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신체를 통제할 권리를 지닌다” 고 판시, 부부 강간을 인정했다. 영국과 독일은 각각 1991년과 1997년 부부강간죄 면책과 부정의 근거가 됐던 법을 폐기했고 프랑스도 1981년부터 부부 사이의 강간죄를 인정하고 있다.
▶2000년칠레 대통령에 리카르도 라고스 당선
▶1998년영화 촬영감독 유영길씨 별세
▶1992년엘살바도르 정부와 반군,
12년 만에 평화협정 체결

알프레도 크리스티아니 엘살바도르 대통령이
12년 내전을 종식시키는 평화협정에 서명하고 있다.
▶1987년호요방 중국공산당 총서기 사임
▶1983년터키 여객기 추락. 46명 사망
▶1982년한국-쿠웨이트 항공협정 발효
▶1982년국전을 대한민국미술대전으로 개편
▶1982년폴란드 군정, 언론 대수술(42개 일간지를 22개사로 통폐합)
▶1981년미국, 대륙간탄도미사일요격용 레이저광선무기실험 성공
▶1979년팔레비 이란 국왕 이집트로 망명
팔레비 이란 국왕이 1979년 1월 16일 오후 1시 이란의 수도 테헤란 공군기지로부터 출국함으로써 팔레비 왕조는 54년 만에 붕괴됐다. 팔레비는 전용기 보잉 727기를 자신이 직접 조종하며 이집트로 향했다. 오후 2시 국영방송이 팔레비 망명을 보도하자 시민들은 환호했고 차들은 경적을 울려댔다.

팔레비 이란 국왕.
1941년 아버지의 퇴위로 이란 팔레비왕조 제2대 국왕에 오른 팔레비는 영국, 소련의 잇따른 이란 점령과 왕제 반대세력의 등장 등으로 초기 기반은 취약했으나, 1957년 사바크(비밀경찰) 설치와 미국과의 군사협정 체결로 왕권을 강화시켜 나갔다. 1963년에는 석유수출을 배경으로 농지개혁, 여성참정권을 골자로 하는 근대화정책 `백색혁명`을 단행했고, 1973년에는 제5개년계획을 실시했으나 1975년부터 석유-중공업 편중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해 1978년부터 반정부 데모가 본격화됐다.
부패한 정부에 대한 비난과 함께 국가발전 과정에서 소외된 종교지도자들과 하층민, 시장 상인 등의 불만 폭발로 이집트로 망명하게 된 팔레비는 이후 복권의 기회를 노리면서 모로코, 마하마, 멕시코, 미국, 파나마를 전전하다 이집트의 카이로에서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1976년한-영-캐나다 3국, 원자력 3호기 건설차관협정 체결
▶1971년일본 재일동포 영주권 신청 마감
▶1969년소련 소유즈 4호와 5호간에 첫 우주 도킹 성공
1969년 러시아(구 소련)의 유인우주선인 소유즈(SOUZ) 4호와 5호가 세계 처음으로 우주 공간에서 도킹하는 데 성공한다. 소유즈 우주선은 러시아의 우주 비행사들을 우주로 데려가고 다시 데려오는데 이용하기 위한 것으로 우주체류 실현의 꿈을 실현하자는 의미로 시작된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1967년 소유즈 1호가 폭발돼 2호(발사 못함)와의 도킹에 실패한 지 약 2년만이다.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2년 후인 1971년 세계최초의 우주 정거장인 살루트 1호를 쏘아올렸다. 이후 2호를 제외한 7호까지 쏘아올린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 비행사들이 길게는 6개월 이상 체류했다.
▶1968년소설가 전영택 사망
▶1967년한국, 베트남 민간항공협정 체결
▶1964년아시아태평양이사회(ASPAC) 가입
▶1962년혁명재판소, 부정축재조사단 사건의 양인현에 사형, 정태영에 무기, 기타 5명에 최고 20년 언도
▶1962년도미니카에 쿠데타
▶1962년제6차 한일회담 재개
▶1957년이탈리아 지휘자 토스카니니 사망
러시아는 이를 계기로 2년 후인 1971년 세계최초의 우주 정거장인 살루트 1호를 쏘아올렸다. 이후 2호를 제외한 7호까지 쏘아올린 우주 정거장에서 우주 비행사들이 길게는 6개월 이상 체류했다.

토스카니니가 추구한 음악세계는 ‘음의 객관화’. 연주자 개인 감정의 군더더기,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하에 이뤄지는 음·템포·리듬에 대한 자의(恣意)적인 해석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오직 작곡가의 의도에만 충실하려 한 그의 지휘는 음악을 객관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런 지휘를 빗대 ‘군악대장’ 이라며 꼬집었다.
19세에 대타(代打)로 지휘대에 올라 악보를 보지 않고 성공리에 지휘해 스타덤에 오른 토스카니니는 31세 때 꿈에 그리던 그의 고향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 상임지휘자로 발탁됐다. 그는 리허설때 단원들의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휘봉을 꺾거나 단원의 악보를 찢어버리는 괴팍한 성격으로도 유명했다. 지휘봉이 부러지지 않으면 애꿎은 손수건이나 웃옷이 찢어졌다. 삐끗하거나 틀린 음이 발견되면 지체없이 ‘노!노!’ 불호령을 토해내 단원들은 그를 ‘토스카노노’ 라고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늘 쉬어있었다고 한다.

공연을 보러온 무솔리니가 파시스트 찬가(讚歌)를 요청하자 그 자리를 뛰쳐나가 결국 무솔리니가 고집을 굽혔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1929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필과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그리고 NBC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1951년중국, 유엔의 한국전 정전안 거부
▶1948년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 공연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椿姬)’ 가 1948년 1월16일 명동 시공관에서 초연됐다. 의사이자 성악가였던 이인선이 제작·번역·남자주인공의 1인3역을 소화했고, ‘한국 오페라의 대모’ 김자경이 마금희와 함께 여자주인공 ‘비올레타’ 역을 맡아 한국최초의 ‘프리마 돈나(prima donna)’ 가 됐다. 연출은 서항석, 지휘와 연주는 임원식과 고려교향악단이 맡았다.

5일동안 전회(10회) 매진을 기록하며 무성한 화제를 불러일으켰지만 제작자가 ‘숫자’ 에 밝지 않다보니 집과 피아노를 처분해야 했다.
한번 ‘춘희’ 는 ‘영원한 춘희’ 였다. 김자경이 오페라에 눈을 뜬 것도 ‘춘희’ 였고, 그가 1968년 창단한 ‘김자경오페라단’ 이 첫 작품으로 올리고, 김자경이 세상을 뜨기 석달 전 마지막으로 공연한 것도 ‘춘희’ 였다. 김자경은 자서전에서 “‘춘희’ 가 이어준 오페라와의 인연으로 오페라에 살고 죽는 ‘오생(生) 오사(死)’ 인생을 살았고, ‘오씨 성에 이름이 페라’ 인 오서방과 결혼했다” 고 말했다.
알렉산더 뒤마의 소설을 원작으로 베르디가 오페라로 만든 ‘라 트라비아타’ 는 이탈리아어로 ‘엇나간 여자’ 라는 뜻. 일본인이 ‘춘희’ 라 의역한 것을 우리가 그대로 따르면서 이땅에도 ‘춘희’ 란 이름이 정착됐다. ‘라 트라비아타’ 가 초연된 것은 1853년 3월6일 베네치아에서였다. 초연에서는 주연 배우가 극중 인물과 어울리지 않아 실패했으나 이듬해 5월 6일 재공연에서는 대성공을 거두며 비제의 '카르멘' 과 함께 공연 횟수가 가장 많은 오페라로 기록됐다.

한국 최초의 오페라 ‘춘희’ 공연
▶1946년미소공동위원회 예비회담
▶1944년시인·독립운동가 이육사 사망
- 강철로 된 무지개를 그렸던 민족시인, 이육사
- 30여 편의 시를 발표하여 민족의식을 일깨우다, 이육사
‘내고장 칠월은 /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 이 마을 전설이 주절이 주절이 열리고 /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 하늘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이육사의 시 ‘청포도’ 에 보여지는 칠월이면 청포도가 익어 가는 마을, 안동이 이육사의 고향이다. 안동군 도산면 원천동에서 퇴계 이황의 14대 손으로 태어난 육사는 일제강점기 광복의 염원을 담은 ‘광야’ 를 쓴 대표적 저항시인인 동시에 일생을 독립투쟁에 바친 독립운동가였다.

저항시인 이육사.
본명이 원록인 육사(陸史)는 21세 때인 1925년 대구에서 형 원기, 아우 원유와 함께 의열단에 가입해 항일투쟁을 했다.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1927년)과 광주학생운동(1929년), 대구 격문사건(1930년)에 연루돼 17차례나 옥고를 치렀고 1943년 중국에서 귀국 후 일본 경찰에 붙잡혀 북경으로 압송, 1944년 1월 16일 40세의 나이로 북경감옥에서 순국했다. 육사라는 그의 아호는 그가 스물네 살 되던 해인 1927년 처음으로 감옥에 갇혔을 때의 그의 죄수번호가 264번이어서 그것을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인으로서의 육사의 활동은 조선일보 대구지사에 근무하던 1930년 조선일보에 시 ‘말’ 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그후 1935년 ‘신조선’ 에 ‘춘수삼제’ ‘황혼’ 등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대표작 ‘황혼’ ‘청포도’ ‘절정’ ‘광야’ ‘꽃’ 을 비롯해 30여편의 시를 남겼다. 그의 시는 식민지하의 민족적 비운을 소재로 삼아 강렬한 저항 의지와 민족 정신을 노래한 것이 특징이다.
▶1929년의성단장 편강렬 순국
▶1924년소작쟁의로 농민 500여명 광주경찰서 습격
▶1923년아동문학가 방기환 출생
▶1922년조각가 문신 출생
▶1916년서정시인 박목월 출생


▶1913년영국, 의원법 적용에 의해 아일랜드 자치법안 의결
▶ 1909년 오스트레일리아의 남극탐험가 모슨 남극점에 도달


모슨(Mawson, Douglas, 1882~1985)은 남극탐험으로 전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모슨은 1902년 시드니대학교에서 광산공학학사학위를 받았으며, 1909년 뉴사우스웨일스 서부 중앙에 있는 브로컨힐 광산의 야외답사 연구로 과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07년에는 어니스트 헨리 섀클턴 경의 남극탐험대에 과학연구원으로 참가해, 1909년 1월 16일 T. W. E. 데이비드와 함께 빅토리아랜드 빙하고원의 남자기극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이 획기적인 여행을 썰매를 타고 해냈다. 모슨는 그뒤 1911~14년 오스트레일리아 남극탐험대를 지휘했으며 1929~31년에는 영국·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의 연합탐험대를 이끌고 남극탐사를 실시했다. 그의 탐험으로 오스트레일리아는 남극대륙 가운데 약 647만㎢에 달하는 면적을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 탐험가이자 과학자로 많은 업적을 세운 모슨는 1914년 기사작위를 받았다. 또한 다른 많은 활동 이외에도 22권의 〈오스트랄라시아의 남극탐험 보고서 Reports of Australasian Antarctic Expeditions〉를 편집·집필했다. 이 책과 더불어 또 하나의 유명한 저서로 〈눈보라의 본원 The Home of the Blizzard〉(1915)이 있다.
▶1903년시인 김영랑 출생

▶1893년하와이에 쿠데타. 미국 해병대 투입
▶1853년영국의 배우 포브스 로버트슨 출생
▶1836년마지막 나폴리 왕 프란체스코2세 출생
▶1584년이율곡 사망
▶1545년독일의 다작(多作) 작가 조지 슈팔라틴 사망
▶1422년조선, 월식 발생1
▶1413년경상도 거창, 20여 차례 지진 발생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편집 달콤쵸콜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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