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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2월 3일

✿1995년 2월 3일

디스커버리호
우주왕복선 1995년 첫 발사!!


미국의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19
55년 2월 3일 오전 4시 50분 플로리다
주에 있는 케이프카내베랄 공군기지에서
발사됐다. 이번 비행은 극비군사임무를
띠고 있는 관계로 보안상 정확한 발사
시각은 9분 후에야 알려졌다고 한다. 

지구귀환일시도 이같은 이유로 귀환 16
시간전에 밝혀졌다고 한다. 당시 전문가
들은 디스커버리호 우주왕복선의 비행
시간이 5일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또한 비행목적에 대해 일체 공식적인
발표가 아직도 나오지 않고있다. 하지만
당시 신문보도와 미국정부의 소식통에
따르면 비행에서 소련측무선전신,
전화및 위성통신내용을 포착하는
고성능첩보 위성이 궤도상에 쏘아올려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방항공우주국 나사는 당시디스
커버리호 우주왕복선의 임무중 하나가
위성보다 높은 궤도상으로 끌어 올리는
로키트시스템을 실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임무수행의 진전상황에 대한
발표도 8시간마다 나오는 간단한
성명으로 제한돼 있다.​​디스커버리호
우주왕복선 비행에 나선 우주인은
선장인 토머스 매팅글리해군대령,
조종사인 로렌 슈라이버 공군중령,
엘리슨 오니주카 공군소령, 제임스
버클리해병중령, 게리페이튼 공군
소령이다


.

▶2010년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 타살 판결

  2010년 2월 3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6부(재판장 김흥준)는 허원근일병 의문사 사건에 대해 타살 판단을 내리고 "국가는 허 일병 유족에게 9억 2,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허 일병 유족이 2007년에 낸 소송에 대해 2년 9개월만에 내려진 법원의 1차 결론이다.

  사건 판결 26년전인 1984년 4월 2일 강원도 최전방 부대인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복무 중이던 중대장 전령 허 일병(당시 21세)은 폐유류창고 뒤편에서 머리에 한발, 가슴에 두발 총상을 입은 채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현장에서 수거된 M16소총 탄피는 2발. 당시 국방부 특별조사단(특조단)은 자살로 결론내렸다. 하지만 이 사건은 군(軍)의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으로 남았다.

  이후 의문사위는 진상 규명활동을 벌여 2002년 ‘허씨가 타살됐고 군 간부들이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특조단은 자체 조사를 벌여 ‘허 일병이 중대장 전령 업무에 대한 심적 부담 등으로 자살했으며 의문사위의 조사 결과는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양측이 공방을 벌여왔다.

이날 재판부는 허 일병의 시신에 대한 법의학적 소견과 의문사 진상 규명 위원회의 증거 자료, 국방부 특조단의 수사 자료 등을 토대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결과 소속 부대 군인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우선 시신에 난 3개의 총상 중 두부 총상이 치명상이고 양쪽 가슴부위의 총상은 서로 근접한 시간 내에 발생했으며 왼손의 상처는 허 일병이 총구를 잡은 상태에서 총이 발사됐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판단되는 점을 고려했을때 사체가 사후 옮겨졌다고 생각되며, 사건 당일 허 일병 부대 중대장 김모씨는 자신의 전령이던 허 일병이 아닌 다른 부하와 전방철책 순찰에 나섰는데 이러한 중대장의 행보는 알리바이 확보를 위한 것으로 판단했다. 또한 중대본부 요원들은 중대장이 철책 순찰을 하는 사이 막사 물청소를 실시했는데 헌병대 조사가 나오기 전에 증거를 인멸하려는 시도였다는 것이 재판부의 시각이다.

  하지만 허 일병에게 총을 쏜 사람이 밝혀지지 않았고, 국방부도 항소하겠다고 밝혀 사건을 둘러싼 진실공방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09년'해비타트' 창설 풀러 타계
▶2007년바그다드市場 자폭테러 130여명 사망,
300여명 부상
▶2003년이승엽 국내 최고 연봉 6억 3천만원에 책정
▶1999년생물학 발전에 공헌한 강영선 사망
▶1998년다보스 세계경제 포럼(1.29~2.03)
▶1997년`뿌리깊은 나무` 한창기 대표 별세


▶1997년아리랑 TV(케이블 TV 채널 50) 개국

국제방송교류재단(이사장 이찬용)은 1997년 1월 3일 오후 서초동 사옥에서 국내 최초의 영어전문 TV방송인 ‘아리랑’(케이블TV 채널 50) 개국식을 가졌다. 참석자중 왼쪽부터 이세기 국회문화체육공보위 위원장(신한국당의원), 이찬용 이사장, 이수성 국무총리, 오인환 공보처 장관.

국제방송교류재단(이사장 이찬용·이찬용)은 3일 오후 서초동 사옥에서 국내 최초의 영어 전문 tv방송인 「아리랑」(케이블tv 채널 50) 개국식을 가졌다.
행사장에는 이수성 국무총리를 비롯, 유종하 외무, 김영수 문화체육, 오인환 공보, 신경식 정무1 장관, 이세기 이경재 강용식 박종웅 신영균 이웅희 임진출 정영훈 권정달 의원, 홍두표 kbs 사장, 이득렬 mbc 사장, 윤세영 sbs 회장, 손주환 서울신문 사장, 안신배 경향신문 사장, 유혁인 종합유선방송위원회 위원장, 조경목 케이블tv협회 회장, 김석준 쌍용그룹 회장,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등 정-관계, 언론계, 재계 인사 3백여명이 함께 자리해 아리랑 채널의 탄생을 축하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오인환 장관이 대독한 메시지를 통해 “우리나라 방송 70년을 맞는 올해에 국내 외국인과 세계에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는 외국어 방송을 시작하게 된 것을 뜻깊게 생각한다” 고 축하했다.


▶1995년버스전용전일차로제 실시




▶1995년삼성전자, 2세대 64메가 D램 생산 발표
▶1995년미국,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 발사
▶1994년클린턴 미 대통령,
베트남 무역 금지조치 해제 합의
▶1989년파라과이에 쿠데타 발생
▶1989년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 불구속 기소
▶1981년전두환, 레이건 한미정상회담을 갖고 주한미군철수 백지화 등 14개항의 공동성명 발표
▶1981년브룬트란드, 노르웨이 첫 여수상 등장
▶1973년맹호부대 1진 월남서 개선


▶1972년제11회 동계올림픽 개막(일본 삿포로)

https://olympics.com/ioc



▶1969년아라파트 PLO 의장 취임

1969년 2월 3일 야세르 아라파트가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 의장에 선출됐다. 이날 카이로에서 개최된 '파타(팔레스타인 민족해방운동)' 민족평의회에서 아라파트를 PLO 집행위 의장에 선출한 것이다.

야세르 아라파트

아라파트는 1968년 3월에 벌어진 카라메전투 때부터 유명해졌다. 당시 아라파트가 결성한 게릴라 조직 '파타'가 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자 이스라엘은 전차부대를 앞세우고 파타가 점령한 요르단의 국경도시 카라메에 공격을 전개했는데 아라파트는 파타 대원 450명으로 이스라엘군 1만 5,000명을 대파했다. 아랍세계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래 아랍이 거둔 최초의 승리에 환호했다.
  
  PLO의장이 된 아라파트는 이후 요르단 암만에서 쫓겨나 레바논으로 본거지를 옮기는 등 계속된 좌절로 무장투쟁 노선을 변경하게 됐다. 1974년 PLO가 아랍 정상회담에서 유일한 합법기구로 승인받고 유엔의 옵서버 자격을 얻게 되자 아라파트는 무장투쟁을 자제하고 국제무대에서 대 이스라엘 외교전을 강화해 나갔다.
  
  그러나 1979년 이스라엘과 이집트가 '캠프데이비드협정'에서 이집트에는 시나이 반도를 반환하고 팔레스타인에는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를 반환하지 않는 것으로 합의하자 이스라엘에 맹공격을 퍼부었다. 덕분에 1982년 8월 이스라엘이 PLO의 근거지였던 레바논을 공격했고 아라파트는 베이루트에서 튀니지로 피신해야 했다. 아라파트는 당시 지도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릴 정도의 타격을 입었다.

  이후 지도력을 회복한 아라파트는 1988년 11월에 알제리에서 독립국 선포를 하고 초대 대통령에 추대됐다. 이후 1993년 9월 13일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에 서명하면서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가져오는 듯 했지만 그것은 잠시 뿐이었다. 아라파트는 2004년 11월 11일 75세의 나이로 숨졌다.



▶1966년소련 `루나9호` 달표면 연착륙에 성공

소련의 달 탐사기 `루나9호`가 1966년 2월 3일, 달의 `고요한 바다` 연착륙에 성공했다. 이것은 소련이 연착륙을 위한 역추진 로케트 분화점 기술을 극복했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달표면이 딱딱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는 점에서 대단한 성과였다.

타스통신은 4일 루나9호가 달표면을 탐색하기 시작했고 4일 오후 11시50분 기지로 달사진을 보내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루나9호가 보내온 달표면 사진에 의하면 달표면에 먼지가 보이지 않고 요철이 심했으며 직경 10cm에서 2-3m에 이르는 돌모양의 물체가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이것은 달의 `고요한 바다`는 거의 평원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수정해 주었다. 이번 루나9호의 달 탐사로 인간의 달상륙에 꼭 필요한 자료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


▶1966년조선조 마지막 왕비 순종효황후 사망
▶1962년울산공업단지 기공
▶1961년민의원, 대일정책 결의안 채택(선국교 후경제, 평화선수호)
▶1956년한-미 원자력 협정 조인
▶1955년중국, 유엔안보이사회 출석 거부
▶1954년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남쪽 5
~10km에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설정

민통선이 설정되자 민간인들의 비무장지대
부근 출입이 통제됐다.

▶1947년국대안(국립대학안) 반대에 따른
동맹휴학 가속화
▶1946년조선어학회, 한글학회로 개편
▶1938년미국 프로복싱 선수 그리피스 출생
▶1930년호지명 홍콩에서 베트남공산당 결성
▶1924년우드로 윌슨 미국 제28대 대통령 사망
▶1921년독일 극작가 하우프트만 사망
▶1919년최초의 광도성표인 하버드 광도
측정법을 확립한 미국의 물리학자 피커링 사망
▶1917년미국 독일과 단교
▶1915년오스만투르크, 수에즈운하 공격


▶1908년의병장 기삼연 순국

구한말의 의병장 성재 기삼연 선생이 일본군에 체포돼 광주로 호송중이던 1908년 2월 3일 광주 서천교 백사장에서 순국했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선생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전국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1896년 3월 ‘토적복수’ 를 내걸고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켜 광주의 기우만, 고광순과 합세, 의병항쟁의 기세를 크게 떨쳤으나 기우만의 의병부대 해산을 반대하다 관군에게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기삼연 선생

정미7조약의 체결 등으로 국운이 크게 기울자 그는 1907년 호남지역 의병부대를 규합해 ‘호남창의회맹소’ 를 설립, 고창 문수산전투, 영광 법성포전투 등을 벌여 큰 전과를 세웠다. 이후 그는 장성 담양 나주 함평 광주 등지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계속하다 1908년 담양 금성에서 일본군의 기습을 받고 대패해 친척집에 은신하던 중 일본군에 체포됐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한편 국가보훈처는 기삼연 선생을 ‘1월의 독립운동가’ 로 선정했다.


▶1902년항일투사 박열 출생
▶1901년메이지(明治)시대의 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 사망
▶1874년미국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 출생
▶1830년영국 보수당 정치지도자 솔즈베리 출생
▶1809년독일 작곡가 멘델스존 출생


▶1468년독일, 인쇄술발명자 구텐베르크 사망

활판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가 1468년 2월 3일 사망했다. 태어난 해는 확실치 않으나 1397년경 독일 마인츠에서 출생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구텐베르크.

그는 1434년에서 1444년까지 스트라스부르에서 문자의 기계적 재생에 대한 고안을 되풀이하다가 인쇄기를 발명했다. 그리고 양질의 인쇄잉크와 양피지 같은 종이를 사용하여, 1455년에 42행 성서인 라틴어 성서를 인쇄하여 완성시켰다.
  
  이후 인쇄술은 전 유럽에 보급되어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에도 공헌했다. 그러나 그의 사업은 결국 파산해 출자자인 푸스트에게 부채의 보상으로 인쇄공장을 양도한 후 빚더미 속에서 죽어갔다. 구텐베르크는 현재 무덤조차 소재가 묘연한 상태다.


▶1277년삼별초난을 평정한 김방경, 백령도로 유배
▶479년신라, 자비마립간 사망, 소지마립간 즉위
▶451년가야, 취희왕 사망, 질지왕 즉위


https://youtu.be/KQ51yVyHSFQ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