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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3월 27일

✿1982년 프로야구 출범

1982년에 열린 프로야구 원년 시즌.
팀당 80경기씩 240경기가 열렸다.전두
환당시 대통령의 시구와 함께 시작된 프로
야구 개막전에서 첫 선발은 이길환,첫 타자
는 천보성이었으며, 제1구를 친 것이 내야
플라이로 아웃된 것이 역사적인 첫 개막전
의 첫 승부였다. 첫 안타와 타점은 삼성의 
이만수가, 첫 홈런도 이만수가 기록했다.
이 경기에서 MBC의 이종도가 만루홈런
을 기록하며 MBC가 첫 승을 기록했고 첫 승리투수는 유종겸이었다. 

원년답게 풍성한 기록들이 쏟아졌는데
OB의 박철순이 22연승을 거두고, MBC
의 백인천이 4할 타율을 기록했으며, 해태
의 김성한은 투타를 겸업하며 3할 타율에
13홈런, 10승을 기록[2]하는 등의 진기록
이 세워졌다

▶2012년'꼬방동네' 실제 모델이었던
'빈민의 벗' 허병섭 목사 별세
▶2009년인도네시아 수도 외곽 댐 붕괴
▶2002년한국의 국가신용등급 A등급 회복


▶ 2002년  영화감독 빌리와일더 별세

와일더 [Wilder, Billy, 1906.6.22~2002.3.27]  美 대표감독 빌리 와일더 별세

   마릴린 먼로가 지하철 환풍구 위에서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움켜쥐는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 ‘7년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을 감독한 미국의 빌리 와일더가 27일 로스앤젤레스 베벌리 힐스 자택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향년 95세.

   와일더는 할리우드 영화의 황금기였던 1950~60년대 먼로, 오드리 헵번, 험프리 보가트, 개리 쿠퍼 등을 키우며 ‘선셋대로’(Sunset Boulevard),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 ‘잃어버린 주말’(The Lost Weekend), ‘제17포로수용소’(Stalag 17),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The Apartment)를 만들었다.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제작자였던 그는 1960년작 ‘아파트…’로 각본·감독·제작 부문에서 아카데미상을 타는 진기록을 세웠다. 한 작품으로 오스카상 3개를 거머쥔 사람은 감독과 배우를 통틀어 아직까지 와일더밖에 없다. 그는 모두 6개의 오스카와 평생업적상을 받았다. 현대 많은 감독들의 모델이 된 와일더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베를린에서 공격적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다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민했다.

   그의 이름은 원래 새뮤얼이었지만 어머니가 서부영화의 영웅 ‘버팔로 빌’에서 딴 ‘빌리’를 애칭으로 지어 주었다. 그는 주로 시사풍자적인 코미디 영화를 연출했으나 스릴러, 멜로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으며 냉소주의를 깐 재치있는 대사가 특징이었다. 타임의 영화전문기자 리처드 시켈은 “한 퇴물 여배우의 광기어린 집착을 소재로 한 ‘선셋대로’만큼 할리우드의 삶을 빼어나게 묘사한 작품은 없다”고 말했다.

   마릴린 먼로와 친했던 와일더는 이 세기의 배우에 대해 “가슴은 화강암 같고 머리는 스위스 치즈 같은 지진아”라는 식으로 함께 작업하는 데 따른 어려움을 호소하면서도 “하지만 제 시간에 오는 다른 배우들보다는 지각하는 먼로가 더 낫다”며 누구보다 그를 아꼈다. 배우 윌리엄 홀든은 “와일더는 레이저 날로 가득찬 머리를 가진 사나이였다”고 회고했다.




▶2000년전 국립극장장 허규씨 별세
▶1999년닛산·르노, 자본제휴 원칙 최종 합의


▶1999년서울대 황우석 교수, 한우 송아지 복제 성공

황우석 서울대 교수가 1999년 4월 2일 
체세포 복제 기술로 태어난 지 6일째 된 
토종 한우 송아지 ‘진이’ 를 안아주고 있다. 

젖소(영롱이) 복제에 성공한 서울대 수의과 황우석 교수가 토종 한우 송아지 복제에 성공했다.
황 교수는 “지난달 27일 오전 2시30분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임 모씨의 목장에서 영롱이처럼 암-수교배 없이 체세포를 복제해 대리모에 수정란을 이식시키는 방법으로 암컷 한우 송아지를 출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고 밝혔다. 이 송아지는 체중이 27㎏으로, 현재 질병없이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고 황 교수는 전했다.
황 교수는 지난 1일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국가기술자문위원회에서 이같은 사실을 보고했으며, 김 대통령은 이 송아지에게 “역사를 앞서가는 삶을 살면서 시대를 초월해 칭송을 받을 작품을 남긴 황진이처럼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소가 되어달라” 는 뜻으로 ‘진이’ 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진이’ 의 모체 소는 몸무게가 국내평균 한우(550㎏)의 1.8배인 980㎏짜리 수퍼(SUPER)소다. 황 교수는 “‘진이’ 는 모체 소의 귀에서 세포를 떼어내 복제를 했다” 며 ‘모체와 똑같은 수퍼소로 성장할 것’ 라고 말했다. 이번 한우 복제의 기술과 과정 등은 영롱이 복제와 같았다.
황 교수는 “그러나 한우의 경우, 세포 크기가 젖소의 3분의 2에 불과, 세포융합 성공률이 젖소보다 낮았다” 며 "이 때문에 한우 복제는 젖소 복제보다 훨씬 어렵다” 고 설명했다.



▶1998년증권관리위원회 해체


▶ 1998년 오늘,
FDA가 남성 발기 부전 치료제로 비아그라를 최초로 승인하다.





▶1990년KAL 858기 폭파범 김현희 2심에서 사형선고

kal858기 폭파범 김현희피고인에게 사형이 확정됐다. 대법원형사2부 (주심김주한대법관)는 27일오후 이사건 상고심선고공판을 열고 김피고인의 상고를 기각,원심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김피고인은 국가보안법상 목적수행 살인,잠입 탈출죄,항공법상 항공기추락,추락치사,항공기운항 안전법상 항공기에 위험물건휴대,폭발물탑재죄등 6개조항이 적용돼1,2심에서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상고했었다.

   이로써 kal기 폭파사건은 발생(87년11월29일) 2년3개월여만에,기소(89년2월3일)된지 1년1개월여만에 사법적 절차를 모두 마쳤다. 그러나 정부는 김씨가 범행을 뉘우치고 있으며,역사적 사건의 유일한 증인이라는 점등을 참작,특별사면형식으로 구명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이사건은 많은 승객승무원들이 탑승운항중인 국제민간항공기를 이른바 남조선해방과 조국통일 이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폭파. 희생시킨 극단의 비윤리적인 행위로서 국제협약에서도 엄중한 형벌로 다스리도록 돼있다"고 말하고 이사건으로 인해 귀국중이었던 해외근로자와 항공기 승무원등 1백15명이 살해되었을뿐 아니라 이사건범행이 결국 대한민국의 존립발전,또는 기능을 침해하기위한 것이었으므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 고 상고기각이유를 밝혔다.

   이날 상고심공판은 사실심이 아니고 법률심이므로 김피고인은 관례대로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김피고인의 변호인 안동일 변호사는 사형 확정에도 불구,재심을 청구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1987년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
민족정기구현회 회장 권중희씨에게 피습


▶1982년프로야구 출범

MBC 청룡의 이종도선수(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이종도선수가 만루홈런을 치고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 로고. 지금과는 사뭇 다르다 [ivdesign]
대한민국 프로스포츠 중에서 압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하게 되는데 1982년 출범시 143만명이고 2018년 현재 800만명 관중을 기록하였다. 프로축구는 출범시 40만명, 2018년 현재 123만명이다. 농구, 배구 등은 비교할 수가 없다.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던 고교야구 [에펨코리아]

1960년대 후반부터 전국적으로 휘몰아친 고교야구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1970년대 당시 고교야구는 준준결승부터 이미 매진이 되는 등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고교야구의 인기와는 별개로 1970년대 중반 야구의 프로화 논의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1975년 재미교포 사업가 홍윤희이 방한하여 야구협회 관계자, 감독들을 규합하여 프로야구 창설에 대한 의견을 타진했고,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얻자 미국에서 약 20만 달러의 프로화 비용을 마련하여 재입국, 프로야구 창설 준비위원회를 발족하며 리그 운영계획서 등을 작성하는 등 상당히 구체적인 단계까지 진행되었다. 당시 경제개발에 올인하면서 국민들을 옥죄던 유신 정권도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프로화 움직임은 좌초되고 홍윤희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신군부의 제5공화국이 출범한 직후인 1981년 5월,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국민들을 정치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의도로 프로 스포츠 창설의 논의가 이루어졌고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명분은 국민정서와 여가선용을 위한 것이지만 사실상 3S정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여가선용이란 말이 꼭 명분용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별 다른 여가가 없던 당시 국민들의 가장 큰 여흥거리가 바로 정치얘기였기 때문에 정권 차원에서도 건전한 여가거리를 제공할 필요성은 있었다.
그리하여 이상주 교육문화비서관이 대한야구협회와 대한축구협회에 프로화 검토를 의뢰하게 되었다. 이 당시에 축구협회에서는 139억의 막대한 정부 도움이 필요하다고 정부에게 보고를 올린 반면 야구협회는 정부의 지원금 한푼 없이도 프로화가 가능하다고 보고하여 우선 프로야구 부터출범시키기로 낙착을 지었다.
정부 보조가 없는 방법 이라는 것은 바로 대기업 들이 야구단을 하나씩 맡도록 한 것이다. 지금 KBO 팬들 입장에서는 기업이 구단 맡는 게 당연한 소리 아니냐고 하겠지만 당시 구기종목 최초의 프로구단인 할렐루야 독수리만 해도 기업구단이 아니었다. 스스로 프로에 참여한 기업도 있었고 반 강제적으로 시작한 기업도 있었다. 물론 정착을 위해 야구단을 만든 기업들에게 운영 및 세무 면에서 혜택을 주기는 했다.
당시 기업별 연고지 분배는 다음과 같았다.
롯데 : 서울 / 실업야구 최강팀인 롯데가 서울로 오는 것이 흥행에 도움이 된다고 보았다.
럭키금성 : 부산 / 창업주 고향이 경남 진주여서 부산과 경남 일대를 맡도록 하였다.
삼성 : 대구 / 창업주와 이건희의 고향이 경남 의령인데다가 제일제당이 부산에 있어서 부산으로 배정되었으나 이미 대신할 그룹이 있었기에 삼성상회가 설립되었던 대구로 연고지를 배정하였다.
현대 : 인천,경기,강원 / 정주영 고향이 강원도 통천이라 연고지 배정을 주었다.
삼양사 : 전라도 / 삼양사는 삼양라면을 만드는 그룹이 아니다. 인촌 김성수의 동생 김연수가 만든 회사로 우리가 그나마 들어본 듯한 제품으로는 설탕 큐원이 있다. 호남은 개발정책에서 철저하게 배제되어 있어서 대기업이 없었다.
동아건설 : 충청도 / 창업주의 고향이 대전이어서 연고지를 배정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기업은 롯데와 삼성이고 그나마 연고지가 일치하는 곳은 삼성뿐이다. 어떻게 바뀐 것일까?
일단 현대가 올림픽 전념을 위해서 야구단 창단을 포기한다. 이때 현대 사장이 이명박이었다. 현대가 포기를 하자 현대의 연고지를 받겠다고 나선 기업이 OB다. 그러나, 충청권을 배정받은 동아건설이 야구창단에 난색을 표하였고 당시 2순위 충청권 기업이었던 한국화약에게 제안을 했으나 창업주가 사망하고 후계자 분쟁으로 정신이 없어지자 충청권 연고지 기업이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에 경기 말고 OB에게 충청권을 배정하였다. OB는 이후 수도권 이전을 약속받고 충청권을 연고지로 삼으니 OB 베어스이다. 충청권이 배정되고 나자 인천,경기권이 비어버렸는데 이때 참여하겠다고 직접 나선 기업이 바로 삼미다.
충청권과 함께 골치 아픈 곳이 전라권이었다. 일단 대기업이 아니었던 삼양사는 프로야구단을 운영할 재정적 어려움이 컸기에 배정권을 동아일보사로 넘긴다. 그러나, 동아일보 역시도 운영에 난색을 표하며 프로야구단 포기를 한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2순위로 금호그룹에 배정하는데 당시 금호는 노조분쟁으로 정신이 없어 창단 여력이 없다고 하고 이에 다시 대한교육보험(교보)에 제안을 하는데 교보 역시 이를 거절한다. 전라권의 모든 기업들이 다 거절을 하자 이 소식을 들은 해태 박건배 회장이 직접 창단하겠다고 제안을 하여 참여가 결정되었다.
이처럼 삼미와 해태는 정치권의 압박이 아닌 자발적 참여였다는 점에서 타 구단과는 성격이 다르다. 물론 정치권에서는 이 두 기업을 초반에 참여시킬 의도가 없었지만...
그런데, 이렇게 되면서 몇 가지가 꼬여버린다. 프로야구는 기업홍보효과를 위해서 동종업계의 중복참여를 지양하였는데 해태의 참여는 같은 동종 제과업계인 롯데와 중복되었다. 그렇게되면서 롯데가 강력하게 해태의 참여를 거부하였고, 동시에 OB가 이면계약으로 서울로 오게되는 것을 알면서 서울을 연고지로 배정받은 롯데가 또다시 거절하였다.
이때 롯데가 강짜를 부렸는데 해태 참여 불가와 서울 연고지 확정을 해주지 않으면 참여를 안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런데, 앞서 기획안을 보면 알겠지만 부산을 연고지로 배정받은 럭키금성이었다. 럭키금성은 현 LG이며, 당시 LG는 지금처럼 GS, LG, LIG, LS로 그룹 분산되기 전이라 재계서열 4위였다. 반면 롯데는 10위권을 들락거리던 수준이었다. 그런 롯데가 아니면 말고로 나오자 정치계는 럭키금성 카드를 들고 나온 것이다. 여기에 롯데는 찌그러졌고 그러면서 힘겨루기를 하려던 롯데가 밉보였던 정치계는 롯데와 럭키금성의 연고지를 맞바꾸어 버린다. 그렇게 본래 서울 연고지였던 롯데가 부산으로 내려가버린 것이다.
당시 럭키금성은 회장이 외유중이어서 확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롯데의 강짜와 연고지 교환 등 서울연고지 확정이 급한데 럭키금성은 회장 부재로 계속 답을 못하자 청와대에서는 국가홍보를 목적으로 언론사로서 MBC를 배정해두었는데 MBC 사장은 구단보다는 KBO총재르르 원하고 있었다. 이에 청와대, 비서실, 비서관, 민정수석등이 MBC를 강제 압박하여 구단 참여를 하게 한 것이다. 그것도 3년 후 OB와 공동연고지라는 안까지 받아들여야 했다.

프로야구 원년 참여 구단 엠블렘 [sportnest]

그렇게 프로야구구단 창단이 확정되고 1982년 3월 27일 최초로 프로야구가 전두환의 시구로 첫 출발점을 알리게 되었다.



▶1980년팔레스타인 자치협상 재개
▶1979년토지개발공사 발족


▶1977년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에서
여객기 충돌로 582명 사망


카나리아제도의 테네리페 섬에서
두 대의 보잉747항공기가 활주로상에서 충돌,
583명이 사망하는 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1977년 3월 27일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섬의 로스 로데오 공항에서 네덜란드 KLM 항공기와 미국 팬암 항공기가 충돌하면서 58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참사를 말한다.

1977년 3월 27일 13시 15분경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 라스 팔마스 공항에는 분리독립파 소행으로 작은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이에 추가 폭발이 우려되면서  공항은 임시 폐쇄됐고, 그곳에 이착륙하려던 비행기들은 근처의 테네리페섬의 로스 로데오 공항으로 회항하게 됐다. 그리고 약 2시간 후 라스 팔마스 공항의 폐쇄가 해제되자 이날 17시 6분(현지시각) 암스테르담발 KLM 4805편과 로스앤젤레스발 팬암 1736편도 이륙에 나섰다.

하지만 관제탑과의 통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다 KLM기의 경우 반 잔텐 기장의 위압적이고 무리한 결정으로 이륙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팬암 항공기와 활주로상에서 충돌하게 됐다. 이 사고로 탑승객 614명(KLM 234명, 팬암 380명)과 승무원 30명(KLM 14명, 팬암 16명) 중 총 583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당해 항공 사고 사상 최악의 인명 사고를 기록하게 됐다. 당시 기상 상황은 안개로 앞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데다가, 로스 로데오 공항에 머무르는 동안 KLM기는 암스테르담 스키폴 국제공항까지 갈 수 있는 연료 5만 5000리터를 급유받았는데, 이것이 사고 당시 대폭발로 이어지는 비극을 초래했다.

이처럼 자연재해와 인재 등 여러 상황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일어난 테네리페 공항 참사 이후 국제 항공에 관련된 조직은 표준화된 용어를 사용할 것이 권장되었다. 또 항공업계는 기장과 부기장 간의 경우와 같이 상하관계에 있어서 상호간 합의에 의한 의사결정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1971년주한미군 7사단, 23년 10개월 만에 철수
▶1969년베트남, 제10회 파리회담에서 평화5원칙 제시


▶1968년최초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 사망

가가린 [Gagarin, Yurii Alekseevich, 1934.3.9~1968.3.27]

   인류 최초로 우주여행을 하고 돌아온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1968년 3월 27일 사망했다. 스몰렌스크주에서 출생한 가가린은 콜호즈 구성원의 집안에서 태어나 사라토프의 공업중등기술학교 재학중에 항공 클럽에서 비행 기술을 익혔고, 오렌부르크의 항공학교를 졸업한 뒤 공군에 입대했다.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1호를 타고 1시간 48분 만에 지구의 상공을 일주함으로써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에 성공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본 감상을,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우주비행에 성공한 뒤 중위에서 소령으로 특진하여 우주비행사대 대장 등을 지내고 대령으로 진급했다. 1968년 3월 27일 비행 훈련 중 타고 있던 제트 훈련기가 모스크바 근교 블라디미르주의 한 마을에 추락하여 사망했다.


▶1964년알래스카에 대지진(진도 9.2)
과 해일, 128명 사망
▶1963년내각, 시국수습협의회 개최
▶1958년니키타 흐루시초프, 소련 수상에 선임
▶1954년이승만 대통령 ‘한글 간소화’ 특별담화
▶1951년6-3-3-4학제실시
▶1950년남로당 무장 총책임자 이주하 검거
▶1933년일본, 국제연맹 탈퇴


▶1932년수영스타 뮬러, 6대 타잔으로 출연

6대 타잔으로 활약한 세계적인 수영선수 와이즈 뮬러.

<타잔 - Tarzan Escapes, 1936>에서 조니 와이즈뮬러(Johnny Weismuller)가 치타, 존 쉐필드(John Sheffield, 소년) 그리고 모린 오설리반(Maureen O'Sullivan, 제인)과 함께 한 모습입니다. 타잔역을 맡은 배우중에 가장 잘 어울렸고 유명했던 조니 와이즈뮬러는 올림픽 수영에서 금메달 5개와 동메달 1개를 따냈고 67번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운 당대 최고의 수영선수 였습니다.



▶1922년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YWCA)발기회 개최
▶1912년조선공립소학교관제 공포


▶ 1905년 10월14일, 러일전쟁 종결!
러일전쟁은 동북아(조선과만주)를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국제질서를 새로 짜게 만들었다.
제정 러시아는 이 전쟁 때문에 뿌리부터 흔들렸다. 반면,일본은 아시아 주변국을 본격적으로 침탈하는 야욕을 드러냈다!

중국과 함께 자기 영토를 싸움터로 내준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러시아 ㆍ일본전쟁의 싸움터! 우리나라.

러시아의 발틱함대는(블라디보스톡,극동함대
초기에는 극동에 영향력이 극히 적어서 전력이 미미했다)
북유럽 발틱해에서 출진하여 영국이 지키고있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아프리카의 끝 '희망봉'을 거쳐 극동의 뤼순(황해쪽)과 조선의 남해에서 해전을벌였으니 당시 러시아의 전쟁 전략전술은 거의 없었다고 평가한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승리를바랄수는
없는것 아닌가?
(위 지도 파란색이 발틱함대 항해도이다)


▶ 1898년 오늘, 러ㆍ일전쟁의 시작.
러시아, 여순항 과 대련만 조차.





▶ 1845년 3월 27일.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 출생.
1923년 2월 10일 사망.


오늘날 "X선" 또는 "뢴트겐선"으로 불리는 파장이 짧은 전자기파를 발견했으며, 왼쪽 사진은 최초의 의학적 목적으로 사용된 뢴트겐의 부인 손 사진으로 알려져 있다.
190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https://youtu.be/DdqCd3AcGJ0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솦트리종려나무,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