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영화 ‘서편제’로 임권택-오정해, 상하이국제영화제서 감독상-여우주연상 수상
영화 ‘서편제’의 임권택 감독(왼쪽)과 오정해씨.
소리꾼의 삶을 그린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1993년 10월 14일 폐막된 제1회 상해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과 여우주연상(오정해)등 2개 부문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세계 31개국에서 1백60편의 영화가
출품, 19편이 본선에 오른 이 영화제에서 대상인
작품상은 대만이 출품한 왕통 감독의 ‘침묵의 산’이 차지했다.
상해 중심가 대광명극장에서 치러진 이날 시상식에서
임권택 감독은 중국의 장이모우 감독으로부터 감독상 트로피를 받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동안 임 감독은 ‘씨받이’ ‘아다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베니스 몬트리올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잇달아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지만
임 감독 자신이 국제무대에서 직접 상을 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어 단 한편의 영화로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따내 ‘월드스타’의 영예를 안은 오정해도 중국의
공리로부터 트로피와 축하인사를 받고 감격에 겨워
어쩔줄 몰라했다. 중국이 처음 개최한 상해영화제는
동양적 정서의 공감대를 다시 한번 확인하면서 이날의 폐회식을 끝으로 8일간의 행사를 마쳤다.
▶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폐막, 한국 2연속 종합 2위
https://youtu.be/uYF0oLRX-_I
▶ 2006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공식 선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이 14일 새벽(뉴욕 현지시각 13일 오후 3시) 유엔 총회에서 2007년부터 2011까지 5년 임기의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임명됐다. 반 장관은 총회의 임명 직후 이를 받아들이는 연설을 했다. 아시아에서 유엔 사무총장이 나온 건 버마(현 미얀마) 출신인 우탄트 3대 사무총장(1961∼71년) 이후 35년 만이다.
반 장관은 수락연설에서 △아시아 출신 사무총장 선임의 의미 △새 세기 유엔의 임무 △유엔 개혁 △사무총장으로서 약속 등으로 나눠 자신의 구상을 밝혔다.
그는 “역대 사무총장들의 유엔 개혁 의지를 계승할 것”이라며, “조용히 일을 추진하는 결단력인 겸손의 미덕을 바탕으로 조화의 리더십을 발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겸손의 미덕’은 리더십의 부재를 뜻하는 게 아니라, “소란스럽지 않게 일을 추진하는 조용한 결단력을 뜻한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제기된 ‘카리스마 결여’에 대한 반론이자, 유엔이 요구하는 개혁에 대한 의지를 강조한 것이다. 반 장관은 또 “과거 유엔의 핵심적 활동이 국가간 분쟁을 막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세기 유엔의 임무는 국가간 시스템을 강화해 새로운 도전을 받고 있는 인류의 복리를 증진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화·개발·인권이라는 유엔의 3대 축이 공히 진전되지 않는다면 인류의 복지는 증진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혁에 대한 철학도 밝혔다. “개혁은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유엔이 대표하는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고, 그 미래를 믿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유엔과의 인연을 강조하기도 했다. “1956년 냉전이 한창일 때 12살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당시 함마르셸드 유엔 사무총장한테 전달될 메시지를 낭독하도록 학생 대표로 선발됐다”며 “유엔이 청소년들을 위해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이 자라면서 깨닫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이후 뉴욕에 머물고 있는 반 弱活?18일(현지시각)까지 뉴욕에 머물며 코피 아난 사무총장 및 칼리파 총회 의장을 면담하고, 지역그룹 의장단과 만나 유엔 개혁과 활성화 방안을 협의한다. 반 장관은 곧 귀국해 노무현 대통령한테 외교장관직 사퇴 의사를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반 장관은 앞으로 ‘유엔 사무총장 임명자’ 자격으로 김원수 장관 특보 등 3명의 외교부 직원 및 유엔 사무국의 도움을 받아 12월31일까지 업무 인수인계 작업을 벌이게 된다. 반 장관은 내년 1월1일부터 유엔 사무총장으로 활동한다.
▶ 2001년 '시안(西安)사변' 주역 장쉐량 하와이서 별세
▶ 1998년 노벨경제학상에 인도 아마르티아 센 선정
▶ 1994년 PLO 아라파트 의장-이스라엘 라빈 수상, 노벨평화상 수상
▶ 1993년 영화 '서편제'로 임권택-오정해, 상하이국제영화제서 감독상-여우주연상 수상
▶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예능보유자 김재원씨 별세
▶ 1991년 한국-리투아니아, 국교 수립
▶ 1991년 아웅산 수치 여사, 노벨평화상 수상
▶ 1990년 레너드 번스타인 사망
▶ 1985년 41세의 배우 미셸 콜뤼시
`사랑의 식당(Restos du coeur)` 출범
▶ 1981년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 취임
▶ 1976년 영산강 유역 농업개발공사 1단계 준공
▶ 1975년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영동-동해고속도로 개통! 수도권과 태백을 1일생활권으로 묶는
영동-동해고속도로가 1976년 10월14일
오늘 개통되었다.
새말~강릉 간 97km 잇는 영동고속도로와 강원~묵호~간성 32km 잇는 동해고속도로는 모두 209억 3,200만원의 공사비를 들여 착공한지 1년 6개월만에 완공되었다. 고속도로는 길 폭10.7m에 2차선 포장도로 영동~동해고속도로가 개통됨으로써 지금까지 8시간30분이나 걸리던 서울~강원 간의 주행시간이 3시간 30분으로 단축되었다. 서울~묵호 간 주행시간 종전에 10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 1973년 태국, 반정부 학생데모로 4백여명 사상, 타놈내각 총사직
▶ 1972년 미국-소련, 해운(海運)협정 조인
▶ 1970년 수학여행버스 열차 충돌로 46명 학생 사망
▶ 1968년 대입입시 예비고사 실시 발표
▶ 1967년 삼일고가도로(청계고가도로) 기공
▶ 1966년 세계 最古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발견
1966년 불국사 석가탑 안에서 발견돼‘세계 최고(最古) 목판 인쇄술’로 국사 교과서에 실린 무구정광대다라니경. 최근 학계의 연구결과 제작 연대를 서기 751년에서 740~742년으로 더 올려 잡을 수 있게 됐다.
http://playculture.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4/20/2009042000595.html
▶ 1964년 노벨평화상, 미국 흑인운동지도자
마틴 루터킹 목사로 결정
▶ 1963년 모로코-알제리, 국경분쟁으로 교전
▶ 1962년 미국 U2 정찰기,
쿠바에 건설중인 소련 핵미사일 기지 촬영
U2 정찰기가 촬영한 쿠바 미사일 기지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시작되다! 미국 첩보기 U-2에 의해 소련이 쿠바의 건설 중이던 중거리 탄도 미사일 (MRBM) 기지 사진이 촬영되면서 미국과 소련이 일촉즉발의 핵전쟁 대립을 벌였던 사건이다.
양측의 팽팽한 대립이 지속되는 가운데
막후협상을 통해 결국 소련이 기지건설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은 터키에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지를 철수하는 조건으로 사태가 종결된다.
세계3차대전의 공포를 불러 일으켰던 냉전의 상징과도 같았던 사건이다.
▶ 1961년 유엔군 카탕카군(콩고), 휴전협정 조인
▶ 1948년 지방행정조직법 국회 통과
▶ 1947년 미국 벨X1호, 세계최초 초음속비행 성공
미국의 공군 장교 찰스 예거가 최초로 음속돌파 비행에 성공했다.
1947년 10월 14일 미국의 공군장교 찰스 E. 이거(Yeager, Charles E., 1923~ )(별칭은 Chuck Yeager)가 최초로 음속 돌파 비행에 성공했다. 이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64회나 출격한 노련한 조종사였다. 그는 음속 비행중 조종사의 능력과 고정익(固定翼) 항공기에 작용하는 공기역학적 응력을 시험하기 위해 벨항공기회사에서 제작한 연구용 비행기 벨X-1의 시험 조종사로 선발되었다. 1947년 10월 14일 이거는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로저드라이 호수 7,600m 상공에서 모선인 B-29에 부착된 X-1기에 탑승했다. X-1기는 1만 2,000m 상공에서 로켓으로 분리되어 쏘아 올려졌고, 이때 그는 이 고도에서 최초로 약 1,066㎞/h인 음속장벽을 돌파했다. 이 비행은 1948년 6월 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시험 비행을 계속한 그는 1953년 X-1A 로켓 비행기로 2,660㎞/h라는 당시 세계 최고속도 기록을 세웠다. /브리태니커
ㆍ꿈의 ‘마하의 벽’ 깨고 무한 속도 경쟁
미국의 윌버 라이트와 오빌 라이트 형제는 1903년 비행기를 공중에 띄우는 데에 처음으로 성공했고, 찰스 린드버그는 1927년 ‘스피릿 오브 세인트루이스호’를 타고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 간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했다. 옛소련의 유리 가가린은 61년 최초로 우주선을 타고 지구 궤도를 돌았지만 7년 뒤 비행기 사고로 숨을 거뒀다.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가가린이 죽은 이듬해 아폴로11호를 타고 달에 착륙, 외계 천체에 첫발을 디딘 외국인이 됐다. 하지만 우주항공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한 명 있다. 47년 ‘마하(음속)의 벽’을 깬 찰스 엘우드 예거다.
‘척 예거’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예거는 그 해 10월14일 오전 10시29분 벨사가 제작한 X1 비행기를 타고 미 서부 모하비 사막의 에드워드 공군기지를 출발했다. 2차 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이 당시에 미국과 소련은 이미 항공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제트엔진은 속도경쟁에 나선 항공·군수산업계의 꿈의 기반이자 시험대였다. 전쟁 중 개발된 제트엔진으로 속도가 올라갔지만 공기저항이 커져 비행기 폭발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하의 벽을 깰 수 있느냐 없느냐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예거의 X1은 그 자체로는 음속을 돌파할 추진력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B29 폭격기에 매달려 이륙한 뒤 지상 3.7㎞ 상공에서 분리했다. 마침내 14.7㎞까지 상승한 순간 X1의 속도는 마하 1.05를 기록했다. 예거는 당시 24세에 불과했지만 이미 2차 대전 때 무스탕 전투기로 유럽전선을 날았던 베테랑이었다. 53년 스캇 크로스필드가 마하 2.0을 돌파했고, 그 며칠 뒤 예거는 다시 2.4를 기록하는 등 속도경쟁의 첨병에 섰다. 그는 시력이 유독 좋아 성인 정상시력의 두 배였고 550m 전방의 사슴까지 쏘아맞힐 정도였다고 한다. 베트남전에도 지휘관으로 참전했으며 군 내에서 승승장구했다. 70년대에는 파키스탄에 머물며 지금은 탈레반 근거지가 된 스와트밸리와 K2 상공을 날았다. 97년 초음속비행 50주년 기념일에는 74세의 나이로 F15D 이글을 직접 몰고 초음속 시범을 보여주기도 했다. 음속 돌파 뒤 사람들은 대서양을 두어시간 만에 오갈 수 있게 됐다며 기뻐했지만 정작 초음속 항공기는 민항기로서는 인기가 없었다. 영국·프랑스 합작 콩코드 초음속 여객기가 2003년 사고 뒤 운항을 중단한 뒤로 초음속기는 전투기의 영역으로만 남게 됐다.
예거는 "나의 마지막 비행이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했다.
▶ 1945년 김일성 귀국 환영 군중대회 평양서 개최
▶ 1943년 일제점령하 필리핀, 공화국 독립선언
▶ 1933년 독일, 제네바군축회의 국제연맹 탈퇴 성명
독일 국제연맹에서 탈퇴!
독일에서는 국내정치의 혼란 가운데에서 33년 베르사이유체제 타파를 외치던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하고 같은해 10월 제네바군축회의 결과에 불만으로 국제연맹을 탈퇴하였다. 히틀러의 국제연맹 탈퇴결정은 이후에 독일 총선에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게 된다. 그리고이어서
독일의 재군비확장으로 서서히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감돌게 된다.
▶ 1930년 하마구치 일본수상 피격
▶ 1914년 일본, 독일령 남양제도(諸島) 점령
▶ 1907년 뉴욕, 금융공황 발생
▶ 1905년 러일전쟁 종결
러일전쟁은 동북아(조선과만주)를 포함한 유라시아 대륙의 국제질서를 새로 짜게 만들었다.
제정 러시아는 이 전쟁 때문에 뿌리부터 흔들렸다. 반면,일본은 아시아 주변국을 본격적으로 침탈하는 야욕을 드러냈다!
중국과 함께 자기 영토를 싸움터로 내준 우리는 나라를 잃었다!
러시아 ㆍ일본전쟁의 싸움터! 우리나라.
러시아의 발틱함대는(블라디보스톡,극동함대
초기에는 극동에 영향력이 극히 적어서 전력이 미미했다)
북유럽 발틱해에서 출진하여 영국이 지키고있는 '수에즈운하'를 통과하지 못하고 아프리카의 끝 '희망봉'을 거쳐 극동의 뤼순(황해쪽)과 조선의 남해에서 해전을벌였으니 당시 러시아의 전쟁 전략전술은 거의 없었다고 평가한다.
지칠대로 지쳐버린 상태에서 승리를바랄수는
없는것 아닌가?
(위 지도 파란색이 발틱함대 항해도이다)
▶ 1900년 시인 주요한 출생
▶ 정신분석의 혁명!지그문트 프로이드<꿈의 해석> 출간! 프로이드가 최초로 인간의 내면을 탐색함으로써 서구사상의 새로운시대가 시작되었다. 프로이드는 '꿈의 해석'을 통해 인간의 꿈을 문자처럼 다루었고, 수수께끼를 풀듯이 코드화된 부호를 풀듯 코드화된 언어로 해석했다. 그는 이것으로 꿈의 해체와 분석을 통해서 꿈의 진실에 접근해 갔다. 프로이드가 위대한 것은 단지 그가 이루어낸 업적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학문에서 추구해왔던 자세에서 찾을 수 있다. 꿈의 해석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아버지, 친구와 스승의 죽음을 한꺼번에 맞아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그는 꿈의 해석을 완성하였다. 죽음 앞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그는 이렇게 외쳤다, 인간의 정신은 외면적인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살아남는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드는 1856년 5월6일 지금의 체코슬로바키아의 지역에 속하는 모라비아의 프라이부르크라는 곳에서 유태인인 부모의 슬하에서 7남매중 맏이로 태어났다. 그는 4세되던 해에 비엔나로 이사해서 1938년까지 거의 80년 가까이 살았다. 1873년 비엔나대학교에 입학하여 1881년 MD(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로이드는 의학자체보다는 신경학 연구에 깊은 관심을 갖고 1876년부터 15년간 신경학자로서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는 병원의 임상에서 환자들과의 접촉을 통해서 신경 질환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자극을 받았다. 당시 프랑스 소르본느대학에서 유명한 신경학자인 샤르코와 함께 연구하는 기회를 통해서 그의 관심은 신경학자에서부터 정리정신병리학자로 전환하게 되었다. 샤르코를 통해 최면요법에 의한 히스테리 치료효과를 알게 되었고 부르워를 통해 환자가 자신의 증세에 관해서 이야기함으로써 히스테리증세가 치료된다는 정화법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프로이드는 최면요법과 정화법과 다른'자유연상법'을 개발하여 치료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20세기는 프로이트의 '꿈의해석'과 함께 꿈처럼 열렸다! 이 책 초판 본이 오스트리아에서 나왔지만 발행연도를 1900년도로 한 것도 출판사가 획기적인 새로움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영역본 출간은 1900년 10월14일, 오늘날 20세기를 움직인 현대의 고전으로 추앙받지만 독일어로 쓴 초판본 6천부가 다 팔리는 데 무려 8년이나 걸렸다. 유아시절 이미 성욕을 갖고 있는 아이들이 어머니사랑을 차지하기위해 아버지와 경쟁한다는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 프로이드 이론들은 인간행동동기를 이성에서만 찾고자 했던 '19세기적 지성'의 입장에선 혁명이면서 동시에 반역이였고 이단이었다!
▶ 1890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출생
▶ 1885년 한-러시아 수호통상조약 비준교환
▶ 1872년 일본 최초의 철도인
요코하마-시나가와 구간 개통
▶ 1841년 일본의 정치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출생
▶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
https://youtu.be/HRHwqfpAJ5Q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블로거 안젤라 ,솦트리종려나무
편집 달콤쵸콜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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