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1월 16일 나치스, 바르샤바에 '게토' 설치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40년 11월16일 폴란드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격리하기 위한 `게토'(Ghetto)가 1940년 11월 16일 바르샤바에 설치됐다.
게토는 소수 인종이나 민족 또는 종교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내의 한 구역을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1179년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교의 교류를 금지한 제3회 라테라노공의회에서 발단하여 1280년 모로코에서 회교도들이 유대교도를 강제로 분리이주 시키면서 형성되었다. 바르샤바에 설치된 게토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기 위해 수용소로 보내기 전 강제 이주시킨 유대인 집단촌이다. 원래는 프라하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학살 계획이 임박해오자 급히 바르샤바 시내에 설치했다.
둘레에는 3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설치된 4㎢의 공간에 50만 명의 유대인들은 열악한 위생상태 하에서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식사량도 독일인 평균(2,400㎉)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쳐 결국 1942년 7월까지 기아와 질병 등으로 12만명이 이곳에서 죽어나갔다. 나치에 의해 설치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죽음의 도살장이었다면, 게토는 사실상 죽음으로
가는 대기실이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비명과 시체만이 난무했다.
게토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에게 학살 수용소로 이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진것은 1942년 7월 22일이었다. 그해 9월 12일까지 약 30만명의 유대인이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대부분에게 사형판결이 내려지자
히틀러는 "바르샤바의 게토를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1943년 1월18일 두 번째 강제 이주가 시도되자 최초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비밀리에 무기를 확보하며 결사항전을 다짐했던 유대인들은 SS대원을 20명이나 살해했지만 그 댓가로
1,000여명의 유대인을 잃어야 했다.
1943년 4월 19일,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SS대원들이 다시 들이닥쳤다.
권총, 수류탄, 화염병 등으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유대인들에게 돌아온것은 죽음뿐이었다. 그 사이 죽어간 유대인은 1만 3,000명을 헤아렸다.
5월 16일 현장 지휘관인 슈트로프는 상부에 이렇게 보고했다. "체포되거나 학살된 유대인은 5만 6,065명. 바르샤바 게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저녁 8시 15분에 모두 상황은 종료됐다."
▶ 2010년 전통가곡.대목장.매사냥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
▶ 2009년 미셜 위, LPGA 프로데뷔 첫 우승
▶ 2008년 캘리포니아 곳곳서 큰 산불..LA 비상사태 선포
▶ 2004년 콘돌리자 라이스 흑인여성 최초 미국 국무장관에 선출
▶ 2002년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 첫 발병
감기와 비슷… 위력은 ‘죽음의 전염병’
20세기 들어 가장 큰 인명피해를 낸 전염병은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다. 최대 5000만명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한국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돼 14만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후 59년 아시아 독감, 68년 홍콩 독감, 77년 러시아 독감이 세계를 덮쳤다.
2002년 11월 중국 광둥성, 원인 모를 병으로 사람들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21세기 최초의 전염병 사스의 시작이었다. 발병 초기에는 정확한 병명과 감염 원인을 몰라 괴질로 불렸다. 두 달 후 전염병 전문가였던 카를로 우르바니 박사가 사스라는 질병의 존재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한 달 후 그는 사스로 세상을 떠났다. 발병 5개월 만인 2003년 4월 세계보건기구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사스의 원인균이라고 발표했다.
사스는 호흡기 계통 전염병으로 증세가 감기와 비슷하다. 원인 바이러스에 노출된 후 2~7일 정도의 잠복기가 지나면 발열, 무력감, 두통, 근육통의 증상이 나타난다. 이후 기침과 호흡 곤란 증상이 생기고 25%의 환자에게서 설사가 동반된다. 침·콧물·가래 등 이미 감염된 환자의 분비물을 통해서 전파되며 아직까지는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사스는 2002년 11월16일 첫 발병 이후 급속도로 확산, 2003년 7월까지 8096명이 감염되고 774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내에서도 추정환자가 발생했으나 다행히 사망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한국과 일본이 사스로부터 비켜나자 세계 언론은 그 이유로 김치를 꼽기도 했다.
사스가 세계로 무섭게 퍼져나가자 우리나라도 분주하게 움직였다. 유학생들은 짐을 싸서 속속 귀국했고 당국은 2003년 3월부터 114일간 비상 방역을 실시했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중단을 통보하기도 했다.
사스 환자들이 발병 후 3년이 지나서까지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었다는 연구결과가 2009년 발표됐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우울증, 강박신경증 등 다양한 증상이 나타났다. 이에 사스가 조작된 질병이라는 의혹도 일었다. 중국이 바이러스를 조작해서 만든 생물무기다, 의료단체가 재정난을 벗어나기 위해 퍼뜨린 것이다(실제로 중국 의료단체는 연구 지원비가 늘어 경제적 이익을 봤다고 한다) 등…. 사스는 잠잠해졌지만 설들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2000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 25년 만에 베트남 방문
▶ 1995년 노태우 전대통령 구속
노태우 전대통령이 검찰 수사관들과 함께 승용차로 대검청사를 나서 수감 장소인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5년 11월 16일 밤 뇌물수수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구속수감됐다. 노씨는 이날 오후 7시30분 수사관 2명의 호위하에 대검 청사를 나와 검은색 프린스 승용차에 올라 오후 7시56분쯤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도착, 입감절차를 밟고 독방에 수용됐다.
노씨는 승용차에 오르기 직전 4백여명의 보도진 앞에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하며 나 때문에 곤욕을 치른 기업인들을 보살펴 달라" 며 "모든 책임을 치고 처벌을 달게 받겠다" 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에 앞서 대검 중수부는 이날 오후 노씨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뇌물수수)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 오후 6시51분 서울지법 항소6부 김정호판사로부터 발부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노씨는 재임기간인 1988년 3월부터 1992년 12월까지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동아그룹 최원석회장 등 30개 재벌기업체 대표로부터 기업경영에 대한 선처명목으로 모두 2천3백58억9천6백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결성
▶ 1989년 제4차 남북체육회담, 남북단일팀 명칭 `코리아`로 결정
▶ 1988년 삼성전자, 세계2번째로 1MS램 개발
▶ 1988년 북한 연형묵 총리, 부총리급을 단장으로 하는 남북정치군사회담 제의
▶ 1987년 낙동강하구둑 준공
▶ 1984년 동양 최장 대호방조제 준공
▶ 1983년 PLO반군, 아라파트 최후거점 점령
▶ 1983년 소련 `특무부대` 창설
▶ 1983년 소련, 미국기술 훔쳐 순항미사일 개발
▶ 1982년 국내 처음 근대2종경기(수상,육상) 개막. 우승 강석인
▶ 1982년 아시아경기연맹(AGF), AGF를 해체하고 새로운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창설키로
▶ 1981년 연합통신, 제1회 전국신문-방송발행인 및 편집-보도국장회의 개최
▶ 1981년 미국-중공 공동경제협의회 개막(북경)
▶ 1977년 장성탄광 갱도에 화재, 46명 사상
▶ 1976년 세계 희귀조인 황새, 제주 성산포서 발견
▶ 1975년 스페인령 사하라를 모로코와 모리타니아가 분할키로 합의
▶ 1970년 파키스탄 태풍과 해일로 150만명 사망
▶ 1965년 소련, 금성탐사를 위한 `금성3호` 발사
▶ 1962년 콜롬보계획 14차 자문위 한국가입 가결
▶ 1962년 프랑스 총선, 드골체제 확립
▶ 1960년 미국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 사망
▶ 1959년 대구 국제백화점에서 화재 300여 점포 소실
▶ 1957년 64개국 공산당-노동당 회의. 모스크바에서 개최
▶ 1949년 외자구매청 신설
▶ 1945년 44개국의 교육문화회의에서 유네스코 헌장 채택
▶ 1945년 유네스코 창립총회
유네스코라는 명칭은 약자이며 공식명은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이다. 1945년 11월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주체로 런던에서 열린 유네스코창설준비위원회에서 44개국 정부대표에 의해 유네스코헌장이 채택되었으며, 1946년 11월 20개 서명국가들이 헌장비준서를 영국 정부에 기탁함으로써 최초의 국제연합전문기구로 발족했다.
모든 이를 위한 평생교육, 인류에 기여하는 과학, 세계유산보호와 창의성을 바탕으로 하는 문화발전, 정보와 정보학의 기반구축에 활동목표를 두고 있으며, 각 분야별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
① 교육분야:문맹퇴치, 초등의무교육의 보급, 난민교육 등,
② 과학분야:생물학·해양학·환경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연구, 정보교환 등 사회과학 분야에서는 인권문제에 관한 연구·분석, 개발도상국의 통신설비·정보시설 지원, 언론인을 육성 지원 등,
③ 문화분야:세계문화유산 지정, 가치있는 문화유적의 보존 및 보수 지원, 세계 각국의 독자성있는 전통문화 보존지원, 세계 각국의 문학 및 사상에 관한 문헌의 번역소개 등이다.
이밖에 라디오·텔레비전·영화의 개발 보급, 출판기술의 향상, 우주통신의 개발과 평화적 이용,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교육의 보급에도 많은 기여를 하고 있으며, 교육·과학용 자재의 구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유네스코 쿠폰제도'를 운영한다. 또한 인재 양성을 위한 연구보조금의 지급 등도 이루어지고 있다.
기구로는 총회·집행위원회 및 사무국이 있다. 총회는 회원국 전체의 대표로 구성되는 최고의사결정기관이며, 2년에 1회씩 약 1개월에 걸쳐 개최된다. 주요 임무는 집행위원회위원의 선거, 사무국장의 임명, 가입의 승인, 유네스코의 정책·사업계획·예산의 심의와 의결, 국제조약 및 권고의 채택 등이다. 집행위원회는 총회에서 선출한 58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4년이다. 매년 2회 이상 소집되며. 주요 임무는 총회 의사일정의 준비, 총회에서 채택한 사업의 실행 및 예산의 집행을 감독하는 외에 사무총장을 추천하여 총회에서 임명하게 한다.
사무국은 임기 6년의 사무총장 지휘 아래 총회와 집행위원회의 의결사항들을 집행한다. 사무국은 파리 본부와 세계 각지에 설치된 지역사무처 및 각종 부속기관으로 구성된다. 본부의 직원은 세계 각국에서 모집된 전문가를 포함하여 2,200명에 달하며, 60개국의 지역사무처에는 500여 명이 일하고 있다. 주요 임무는 총회와 집행위원회에 제출할 사업계획과 예산안을 준비하며, 전반적인 활동에 관해 보고하고 총회에서 결정된 사업계획과 예산에 따라 각종 사업을 추진한다.
2011년 기준 회원국은 195개국이며, 8개의 준회원국이 있다. 준회원국은 총회의 투표권이 없고 이사회의 직책을 맡을 수 없는 점 외에 회원국과 같은 권한을 갖는다. 한국은 1950년에 가입했고, 1987년 제24회 총회에서 집행위원국에 선출된 바 있다. 본부는 프랑스 파리에 있다.
▶ 1940년 나치스, 바르샤바에 '게토' 설치
▶ 1938년 영국,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 병합 승인
▶ 1933년 미-소 외교관계 수립
▶ 1919년 일본 낭인들, 항일중국학생들을 폭행(복주사건)
▶ 1918년 헝가리 공화제 선언
▶ 1908년 동양애국부인회, 부인병원 설립
▶ 1908년 보이스카우트 창설
▶ 1907년 오클라호마, 미합중국에 편입
▶ 1906년 토지-건물전당(典當)집행규칙 발표
▶ 1904년 제중원(세브란스병원) 낙성식
▶ 1900년 세계최초로 시민이 창설한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제1회 콘서트 개막
▶ 1899년 청-프랑스, 광주만 조차조약 조인
▶ 1831년 '전쟁론'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사망
클라우제비츠 [Clausewitz, Carl Philipp Gottlieb von, 1780.6.1~1831.11.16]
"전쟁은 수단을 달리해 계속되는 정치일 뿐이다." 20세기 들어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많이 인용됐던 `전쟁론`의 한 구절이다. 이 `전쟁론`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가 집필을 모두 끝내지 못한 1831년 11월 16일 콜레라로 사망했다.
`전쟁론`은 흔히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 비교된다. `군주론`이 정치가들의 필독서라면, `전쟁론`은 군인, 외교관, 기업인들의 가이드북이다. `전쟁론`은 미완성의 고전이다. "전쟁에 관심 있는 사람이 보고 후회하지 않을 책을 쓰겠다"는 결의하에 클라우제비츠는 12년 동안 원고를 썼다. "살아있을 때는 결코 출판하지 않겠다"고 했던 부끄러움 많던 천재의 말대로 이 책은 그가 죽은 다음해 부인에 의해 출간됐다. `전쟁론`은 흔히 동양의 `손자`와 `병법`서의 고전으로 꼽힌다. 손자가 정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클라우제비츠는 지휘관의 신념에 비중을 두었다.
1780년 프로이센에서 출생한 그는 12세때부터 군대 생활을 시작해, 21세 때에는 사관학교에서 병학을 배웠다. 프랑스와의 전쟁에 참전했으나 프로이센이 패해 프랑스와 동맹을 맺자, 조국을 등지고 러시아군과 함께 반나폴레옹 전쟁에 참가했다. 이처럼 생애 대부분이 나폴레옹 1세의 군사적 전성기와 맞물려 있어 군인으로서 클라우제비츠의 생애는 불우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이름을 후세에 길이 남길 `전쟁론`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가 한직인 육군대학 교장으로 재직했기 때문이다. /조선
나폴레옹 ‘적’으로 만났지만 책에선 ‘전쟁천재’ 추어올려
‘전쟁론’ 쓴 클라우제비츠는
‘프로이센 장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와 숙명적 인연으로 얽힌 사람이다. 장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클라우제비츠는 12살에 사관학교에 들어가, 13살 때 사관생도로서 프랑스군을 라인란트에서 몰아내는 전투에 참가했다. 첫 전투 경험이었다. 15살에 소위로 임관한 그는 1801년 다시 베를린 전쟁학교에 입학해 3년 동안 전쟁수업을 받고 1804년 이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전쟁학교 시절 그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로 등극하는 과정을 비상한 관심을 품고 지켜보았다.
클라우제비츠는 일찍이 전쟁이론가로서 자질을 드러냈는데, 1805년에 쓴 논문에서 전략과 전술을 새롭게 정의했다. 그는 전술을 ‘전투에서 전투력의 운용에 관한 지침’으로, 전략을 ‘전쟁의 목적을 위해 전투를 운용하는 지침’으로 규정했다. 뒷날 <전쟁론>에서 그는 전략과 전술을 면밀하게 탐색한다.
청년 장교로서 막 발돋움을 하던 이 시기에 클라우제비츠는 처음으로 나폴레옹 군대와 대면했다. 첫 대면은 치욕이었다. 1806년 프로이센이 나폴레옹 군대에 패배할 때 포로로 잡혀 열 달 동안 프랑스에 억류된 것이다. 그는 프로이센이 패전하게 된 원인을 “프로이센 정부가 전쟁을 대외정치의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고 동맹을 결성할 수 있는 국가들과도 거리를 두는 고립정책을 고수했으며, 실행할 수 없는 임무를 군대에 부여한 데 있었다”고 분석했다.
1812년은 클라우제비츠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그해 나폴레옹은 프로이센과 동맹을 체결하고 러시아 원정에 나선다. 클라우제비츠는 동맹에 반발해 프로이센을 떠나 러시아군에서 복무한다. 그는 러시아군 대령이자 참모로서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으며, 나폴레옹의 대담한 진군과 처절한 퇴각을 목격하는 역사적 증인이 된다.
1815년 나폴레옹이 엘바섬에서 탈출하면서 상황이 급변하자 클라우제비츠는 프로이센 제3군단 참모장으로 임명된다. 나폴레옹 군대는 워털루 전투 직전에 벌어진 다른 전투에서 프로이센 군대에 패배하는데, 이 운명의 전투에서 클라우제비츠는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그는 1838년 소장으로 진급하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보수반동세력이 득세하자 개혁파였던 클라우제비츠는 베를린 전쟁학교 교장으로 밀려난다. 바로 그 시기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론> 집필을 시작해 이후 12년 동안 이 책의 완성에 매달리다가 1831년 콜레라의 급습을 받고 펜을 놓고 만다.
<전쟁론>은 부인 마리 폰 클라우제비츠가 초고 그대로 수습해 사후에 발간했다. <전쟁론>에서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본질을 파고들었을 뿐, ‘정당한 전쟁’ ‘부당한 전쟁’ 같은 전쟁의 윤리적 측면은 철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었는데, 이후 <전쟁론>의 이 공백은 정치철학자들의 중요한 탐구 대상이 됐다.
▶ 1643년 상중 혼인 금지
▶ 1532년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 잉카제국 침략
▶ 1308년 동성동본의 결혼금지
https://youtu.be/uZtcCk6idAo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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