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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추린뉴스

<오늘의 역사> 5월 20일

✿ 2002년 동티모르 독립 선포

▲동티모르 주민들이 수도 딜리에서 독립을
자축하는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동안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동티모르(East Timor)가 2002년 5월 20일
0시(한국과 동일 표준시) 수도 딜리 인근
타시톨로 광장에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
장 등 전세계 80여개국 지도자와 주민 20
여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독립을 선포, 신생
국으로 탄생했다.
아난 총장은 이에 앞서 19일 밤 11시50분
쯤 동티모르의 모든 통치권을 신생 정부에
공식 이양, 유엔기가 내려지고 동티모르
국기가 게양됐다.
유엔은 1999년 동티모르 독립투표 가결에
반발한 친(親)인도네시아계 민병대가 유혈
폭동을 일으킨 후 과도행정기구(UNTAET)
를 통해 동티모르 건국 준비 작업을 주도해
왔다.
4월 14일 대선에서 승리한 사나나 구스마
오 대통령 당선자는 국회의장 앞에서 취임
선서문을 낭독, 1524년 포르투갈 식민지
편입 후 약 500년 동안의 외세 점령과 동족
상잔의 비극적 역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유엔은 평화유지군(PKF) 소속 군병력
5000여명과 경찰 1250명을 주둔시켜 동티
모르의 국경 수비와 치안유지가 정착되도록
도와주었다.
앞서 미국 등 27개국과 15개 국제기구
대표들은 5월 14일 딜리에서 회담을 갖고,
동티모르 해저원유·가스가 본격 생산되는
2005년까지 4억4000만달러를 지원키로
합의했다.
동티모르는 1975년 포르투갈 식민지배
에서 벗어나 자치정부를 수립했으나, 1주일
만에 인도네시아군 침략을 받아 27번째주
(州)로 편입됐다.
이후 1999년 8월 주민투표에서 독립을
가결, 유엔의 도움을 받아 신생국 건설을
준비해왔다.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에 위치한 동티모르
의 면적은 남한의 6분의 1이며, 인구는 약
84만명. 언어는 공용어 포르투갈어와
테툼어를 포함해 15개이며, 주민은 말라이
인과 파푸아인 등 36개 종족으로 구성돼
있다.
주민 대다수(91.4%)가 가톨릭을 믿고
있으며, 2001년 8월부터 미국 달러화를
공식 통화로 사용하고 있다.




▶2015년 심야 토크쇼 33년, 6028회…
레터먼 마지막 방송

미국 최장수인 33년간 심야 토크쇼를 진행해온 데이비드 레터먼(68·사진)의 고별 방송이 시작된 20일(현지 시각) 밤 11시 35분. “오랫동안 이어진 국가적 악몽이 끝났습니다.” 워터게이트로 사퇴한 리처드 닉슨을 이은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취임할 때 했던 말이 영상으로 흘러나왔다. 이 말을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전 대통령이 차례로 되풀이한 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덧붙였다. “레터먼이 은퇴한대요.”


미국 최고령 토크쇼 진행자 레터먼이 6028회째인 이날 방송을 끝으로 은퇴했다. 지방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자에서 1982년 NBC 방송의 ‘레이트 나이트’로 중앙 무대에 오른 레터먼은 1993년 CBS로 옮겨 ‘레이트쇼’를 진행해왔다. 부시, 클린턴, 오바마 등 전·현 대통령을 비롯해 폴 매카트니, 밥 딜런, 톰 크루즈 등 지금까지 출연한 세계적 스타가 1만9900여명에 달하는 미국의 대표적 심야 토크쇼다. 배우 김윤진, 소녀시대 등 한국의 스타들도 레터먼의 쇼에 출연했다..

베일에 가려졌던 마지막 방송의 게스트는 알렉 볼드윈, 바버라 월터스, 짐 캐리, 빌 머레이 등 각 분야의 유명 인사 10명이었다. 이들은 차례로 나와 레터먼에게 그간 꼭 해주고 싶던 말을 익살맞게 전했다. 코미디 배우 짐 캐리는 “솔직히 말해 당신 늘 오버하더라”고 말했고, 배우 알렉 볼드윈은 “당신 쇼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 가까워서 출연해준 것”이라고 했다. 가수 겸 배우 스티브 마틴은 “여기저기 손을 본 당신, 성형수술이 필요해서 하긴 했는데 결과는 별로”라고 했고, 바버라 월터스는 “당신이 쓰는 향수가 독재자 카다피의 것과 같다는 것 아느냐”고 했다.

방송 시작 때 기립 박수를 받으며 첩보영화 주인공처럼 무대 위로 달려나온 레터먼은 특유의 위트를 끝까지 뽐냈다. 그는 방송이 끝날 무렵 “부탁하건대 눈물은 나중에 내 장례식을 위해 아껴달라”고 말했다. 이별을 슬퍼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이어 어머니, 아내, 아들과 방송 스태프에게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 “토크쇼를 봐준 시청자들에게 은혜를 갚을 길이 없다”고 했다. 그는 평소처럼 “고마워요. 잘 자요!”로 쇼를 마무리할 때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레터먼이 눈물 대신 웃음으로 자신의 시대를 마감했다”고 전했다.

▶2012년 팝 역사상 최고의 하모니 그룹
'비지스' 보컬, 로빈 깁 별세

하우 딥 이즈 유어 러브(How Deep Is Your Love)' '홀리데이(Holiday)' 등의 곡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전설적 팝그룹 '비지스(Bee Gees)'의 리드싱어 로빈 깁(Gibb·62)이 암 투병 끝에 20일 오전(현지 시각) 영국 런던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로빈 깁은 2010년 결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지만, 지난 4월 폐렴 합병증이 겹쳐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는 등 최근 병세가 악화됐었다.

비지스는 로빈이 그의 친형 배리 깁(65), 로빈보다 35분 늦게 태어난 쌍둥이 형제 모리스 깁(2003년 사망)과 함께 만든 삼형제 그룹이다. 부드러운 가성 화음과 펑크 비트의 사운드로 팝 역사상 최고의 하모니 그룹으로 불리며 1970년대 디스코 음악의 전성기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그룹은 전 세계적으로 2억장의 앨범을 팔았고, 그래미상에 총 16차례 후보에 올라 7번 수상했으며, 1997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기도 했다.

로빈은 비지스 활동 중간 중간에도 앨범을 내며 솔로로 활동했다. 1969년 첫 솔로 앨범 '로빈스 레인(Robin's Reign)'을 냈고, 이후 3장의 앨범을 더 냈다. 해체 후에도 2003년 솔로 앨범 '마그넷(Magnet)'을 내고 활동을 이어갔고, 2005년에는 내한 공연으로 국내 팬을 만나기도 했다.

로빈은 비지스가 해체된 뒤에도 2006년 2월 형 배리 깁과 미국 플로리다에서 합동 공연을 했고, 지난 1월 30일에는 런던에서 아프가니스탄 참전 용사를 위한 공연을 열었다. 지난 4월에는 타이타닉호 침몰 100주년을 맞아 아들 로빈-존과 함께 만든 첫 클래식 작품 '타이타닉 레퀴엠'을 발표하고 여러 공연을 앞두고 있었지만, 병마(病魔)는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2012년 TV 리모컨 만들어낸
'게으름뱅이의 아버지' 유진 폴리 별세

TV 리모트 컨트롤을 발명해 '생활 혁명'을 가져온 미국 기술자 유진 폴리(96)가 지난 20일 고향 시카고의 근교 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다고 AP통신이 23일 전했다.
  폴리는 1955년 제니스 일렉트로닉스사(社)의 신형 TV를 작동시키는 무선 원격조종기 '플래시-매틱(Flash-Matic·오른쪽 사진)'을 개발했다. 초록색 몸체에 빨간색 방아쇠로 된 권총 모양의 조종기는 TV 정면 네 귀퉁이에 설치된 광전지(photocell·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전지)를 향해 빛을 쏘아 점멸·채널전환·음량조절을 하는 원리여서 햇살이 강하거나 다른 조명이 있을 경우 오작동을 일으키곤 했다. 당대의 사치품은 "인체에 무해한 TV의 기적" "시끄러운 광고 시간을 묵음으로" 같은 광고 문구로 소개됐다.

게으름뱅이의 아버지 유진 폴리 ​

  폴리는 평생 집에 두고 산 자신의 걸작이 현대 최첨단 TV로 진화하는 데 일대 전기(轉機)가 됐음을 자부했다. 그는 혁신품을 발명한 공로로 제니스사 동료 로버트 애들러와 함께 1997년 에미상을,  미국전기전자엔지니어협회로부터 2009년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97·소니 공동설립자) 소비자 전자제품상'을 받았다.

  폴리는 1935년 일리노이주 링컨셔에 본사를 둔 제니스(LG전자가 1995년 인수)에 입사해 창고관리 업무부터 시작해 최고 장인으로 성장하며 47년간 일했다. 2차대전 중엔 미 국방부의 레이더 장비 개발 업무를 맡았다. 폴리는 자동차 내 버튼식 라디오, DVD의 원형 격인 비디오디스크 개발에 도움을 줬으며, 미국 특허를 18개 취득했다.

  폴리는 '게으름뱅이들(lazybones)의 아버지'로도 불렸다. 그의 발명으로 인해 '채널 돌리기(channel surfing)'가 새로운 사회 현상이 돼 광고주들을 당혹케 했다. AP는 폴리의 부음과 함께 "전 세계 TV 애호가들은 그를 위해 추모 묵념을 할 법하다"는 촌평과, "그는 (부모의 채널 바꾸기 심부름을 했던) 아이들을 편하게 만들었다"는 당시 소년 세대의 소감을 전했다.



▶2009년 종묘제례악 명예보유자
김종희씨 별세
▶2009년 인도네시아 군용기 추락
▶2007년 북한 선적의 상업적 정기 화물선
‘강성호’ 분단 후 첫 부산항 입항
▶2006년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피습

  2006년 5·31 지방선거 직전인 5월 20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지원유세에 나섰다가 보호관찰대상자인 지충호로부터 피습을 당했다.

  지씨는 20일 오전 한나라당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유세 일정 등을 확인하고, 사전에 현장에 도착해 문구용 칼을 구입했다. 그는 오후 7시 30분쯤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지원 유세차 박 대표가 단상에 오르는 순간, 박 대표의 오른쪽 뺨에 깊이1~3㎝, 곡선 길이 11㎝ 규모의 깊은 상처를 입혔다. 박대표는 신촌세브란스병원으로 옮겨져 60여 바늘을 꿰매는 수술을 받았다.

  지씨는 경찰에서 “잘못이 없는데도 15년 실형을 살았고 관계 기관에 진정을 내도 소용이 없어 억울한 마음에 범행을 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배후가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지만, 검·경은 지충호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내렸다.




▶2005년 해석학의 대표적 지성인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 사망
▶2005년 수원 삼성-
잉글랜드 첼시 친선경기
▶2001년 나차긴 바가반디
몽골 대통령, 재선
▶1999년 대구서 6세 남아에 황산테러
▶1999년 인천 영종도 신공항
관제탑 상량식
▶1999년 미국 조지아주 고등학교서
총기난사 사건 발생 - 학생 6명 부상


▶1994년 세기의 퍼스트레이디
재클린 케네디 사망

1963년 11월 22일 댈라스에서 총을 맞아 피투성이가 된 케네디의 머리를 부둥켜 안고 “Oh,  No~!”라고 비명을 지르던 재클린. 미국인에게 희망과 실망을 함께 안겨줬던 그녀가 1994년 5월 20일 64세를 일기로 파란 많은 생을 마감했다.

대통령의 젊은 미망인에서 그리스 선박왕의 아내로, 백만장자 보석상의 연인으로, 그리고 말년엔 평범한 어머니이자 할머니로서 그녀는 수많은 동정과 구설수 속에서 한 평생을 보냈다.

  1928년 돈많은 은행가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대학 졸업 후 워싱턴 타임즈-헤럴드의 인터뷰 담당 기자가 됐다. 그녀가 취재한 사람 중에 매사추세츠출신의 젊은 상원의원 케네디가 있었다. 케네디를 처음 만난 것은 1951년 어느 디너파티에서였다. 그녀는 12살 연상의 케네디와 1953년 로드 아일랜드의 뉴포트에서 성대하게 결혼식을 올렸다. 1960년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녀는 31살의 나이로 70년 만에 가장 젊은 미국의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그러나 남편의 피살과 함께 그녀의 화려한 퍼스트레이디 생활은 끝났고 5년 후 선박왕 오나시스와 재혼했다. 그러나 이 두 번의 결혼 모두 행복하지 못했다. 그녀와 결혼한 남자들은 진실로 그녀에게 충실하지는 못했다. 1975년 오나시스마저 세상을 떠나자 그녀는 편집자로 일하면서 철저히 매스컴을 피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던 64년의 삶을 뒤로 하고 눈을 감던 이날, 그녀의 3번째 남자인 뉴욕의 다이아몬드상 백만장자 모리스 템플즈만이 그녀의 곁을 지켰다. 그동안의 온갖 구설수와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그녀가 지금까지 자신들의 최고의 흠모대상이자 영원한 퍼스트 레이디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93년 공직자윤리법 개정
▶1989년 조자양 중국공산당 총서기 실각
▶1986년 서울대 이동수군 분신자살
▶1983년 서울 성북역서
열차 추돌 35명 부상
▶1983년 국제축구연맹(FIFA)
86년 월드컵 멕시코서 개최키로 결정
▶1982년 영국군 포클랜드섬
상륙작전 개시
▶1980년 신현확내각 국내 소요사태에
인책코 총사퇴
▶1980년 대법원
10.26사건 관련자 확정 판결
▶1978년 일본 나리타공항
(신동경국제공항) 개항
▶1977년 파리-이스탄불간
오리엔트 특급열차 마지막 운행

오리엔트특급열차 최종편이 파리에서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1977년 5월 20일 오전 1시 13분에 `꿈의 대륙횡단 열차`라고 불리우던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마지막 운행이 있었다. 파리의 리옹역을 출발하여 6개국을 횡단, 터키 이스탄불을 종착역으로 하는 마지막 운행 열차였다. 리옹에서는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오리엔트 특급열차의 마지막 운행을 지켜보려는 사람들로 붐볐다.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파리와 이스탄불을 잇는 유럽 최초의 대륙횡단 특급열차로 1883년 첫 기적을 울렸다. 특히 1889년에 운행이 시작된 직행 오리엔트 특급열차는 런던-파리-로잔느-밀라노-베오그라드-소피아-이스탄불 7개국 3500km을 횡단하며 1920~1930년대 철도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그후 2차대전에 비행기가 선보이면서 철도운행이 쇠퇴하기 시작, 오리엔트 특급열차를 운영하는 기업의 경영난 등을 이유로 1976년 9월 회의를 거쳐 운행 중지를 결정했다. 이로써 94년간의 역사를 마감했다.

▶1974년 한국-사우디
경제기술 협력협정 체결
▶1972년 닉슨 미국 대통령 방소 등정
▶1965년 카이로 부근서
파키스탄 여객기 추락 121명 사망
▶1964년 서울대 문리대서 민족적
민주주의 장례식 및 성토대회후 데모
▶1961년 장도영 내각수반 취임



▶1954년 제3대 민의원 선거

제3대 민의원 선거가 1954년 5월 20일 실시됐다. 이 선거는 여당인 자유당과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이 선거사상 최초의 입후보자 공천제를 채택해 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정당정치의 기틀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3대 민의원 선거도 2대와 마찬가지로 제헌국회에서 제정한 `국회의원 선거법`을 적용했다. 투표율은 91.1%였다. 선거결과 203명의 국회의원이 탄생했고 정당-단체별 당선자는 여당인 자유당이 114명, 무소속이 67명, 제1야당인 민주국민당이 15명, 국민회 3명, 대한국민당 3명 등이었다.

제3대 국회는 6월 9일 개원하여 의장에 이기붕, 부의장에 최순주, 곽상훈을 선출했는데 약3개월 후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의 3선을 위한 개헌안을 제안함으로써 초기부터 정치적 격돌을 빚어냈다.



▶1949년 미국 국무성 미군철수를 발표


▶1949년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 발표

1949년 5월 20일 검찰은 이문원, 최태규 등 국회 소장파 의원 6명이 남로당의 지령을 받아온 증거를 포착해 구속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소장파 의원들은 1948년 10월 13일 `외국군 철수안`을 긴급동의했으며 1948년 12월 하순경에는 제헌국회 개원 이전에 체결한 각종 한미협정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 이들은 국회의원  62명의 연서로 외군군철수촉구 건의안을 유엔한국위원단에 제출했으며 1949년 2월에는 `남북평화통일방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수사가 확대됨에 따라 국회부의장 김약수와 노일환 배중혁 의원 등이 잇따라 잡히는 등 관련 국회의원이 13명으로 늘어났다. 노일환 이문원은 징역 10년, 김약수 박윤원은 징역 8년, 김옥주 김병회 강욱중 황윤호는 징역 6년, 최태규 이구수 서용길 신성균 배중혁 등은 징역 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이들은 1950년 2월 1일 징역3년에서 10년까지 모두 실형선고를 받아 수감중 한국전쟁을 맞아 북한군에 잡혀갔다.


▶1948년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해산
▶1946년 영국 탄광국유화법 하원통과
▶1939년 미국 팬아메리칸항공 뉴욕-
유럽간 정기노선에 양키클리퍼호를 취항
▶1935년 카프(KAPF : 조선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 해체


▶1932년 아멜리아 에어하트 여성 최초로
대서양 논스톱 횡단비행에 성공

미국의 여성비행가 아멜리아 에어하트가 1932년 5월 20일 여성최초로 뉴펀들랜드에서 아일랜드까지 대서양을 논스톱 횡단비행했다. 거센 바람과 연료탱크가 새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그는  3,241Km를 13시간 30분 만에 돌파했다. 미국은 열광했고 전세계가 들끓었다. 에어하트는 그로부터 석달이 지나 로스엔젤레스에서 뉴욕까지 미국 대륙을 단독 횡단했고 1년뒤에는 하와이에서 미국 본토까지 논스톱 비행했다.

​`하늘의 퍼스트 레이디` 아멜리아 에어하트

  1897년 미국 캔자스주 애치슨에서 태어난 그는 1차대전이 끝난 뒤 캐나다 토론토에서 곡예비행을 구경하고 비행기에 매료됐다. 대학 2학년 여름방학때 조종을 배운뒤 몇년 안되어 비행기록 500시간을 돌파할 정도로 비행에 열심이었다. 1928년 6월17~18일 조종사와 기관사 두사람과 함께 3발 단엽기로 대서양을 횡단해 유명해졌지만 자신이 조종하지 못한 점을 늘 아쉬워하다 이날 결행했다.



▶1928년 독일연방 의회선거,
사회민주당, 독립사회민주당 양당 승리



▶1927년 린드버그,
뉴욕~파리 무착륙 단독비행

1927년 5월20일 오전 7시52분, 스물다섯의 우편물 조종사 찰스 린드버그가 뉴욕 롱아일랜드의 루스벨트 비행장을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가 비행에 나선 것은 8년 전 뉴욕의 한 호텔 경영자가 뉴욕∼파리 간을 논스톱으로 비행한 사람에게 2만5000달러의 상금을 주겠다고 발표한 것이 계기가 됐다. 그 실업가는 1919년 6월 아일랜드의 울콕과 브라운이 비행기로 대서양을 논스톱으로 처음 횡단했지만 이들이 미국∼유럽 사이의 가장 가까운 코스(뉴펀들랜드∼아일랜드ㆍ3030km)를 횡단한 것이 아쉬워 거금을 상금으로 내 걸었다.


​린드버그와 그의 애기(愛機) `세인트루이스 정신`

  당대 최고의 조종사들이 이 모험에 뛰어들었지만 비행 중 목숨을 잃거나 시험비행에서 탈락했다. 무명의  린드버그도 세인트루이스 실업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고 비행기도 직접 설계하며 꿈을 키웠다. 성패의 관건이 연료를 얼마나 많이 싣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린드버그는 꿰뚫고 있었다. 조종석을 줄였고, 조명탄과 낙하산도 싣지 않았다. 덕분에 1703ℓ나 되는 기름을 더 실을 수 있었다. 비행기 이름은 `세인트루이스 정신(Spirit of St.Louis)`. 그 지역 주민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하늘로 치솟은 린드버그는 뉴펀들랜드까지 올라간 다음 동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졸음과 피로가 몰려왔지만 날고 또 날았다. 파리 시각으로 5월21일 밤, 마침내 에펠탑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10만의 인파가 몰려든 르 부르제 공항에 내렸을 때는 밤 10시24분. 5815km나 떨어진 뉴욕을 떠난지 33시간 32분 만이었다. 세계최초로 대서양 무착륙 단독비행 성공, 새로운 영웅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27년 사우디아라비아,
영국으로부터 독립
▶1923년 임시정부
정무(政務)연구위원회 설치
▶1923년 토요회 결성
▶1920년 독일 공화국 제1회 국민대회
▶1920년 멕시코 초대 대통령 카란사 사망
▶1920년 런던서 영국-프랑스
경제협정 조인
▶1913년 발칸전쟁에 관한
2차 런던강화회의 개막
▶1902년 쿠바공화국 수립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섬 화산 폭발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섬에서 1883년 5월 20일 화산이 폭발했다. 폭발은 이듬해인 1884년 2월까지 이어졌다. 크라카타우 섬은 인도네시아 자바섬과 수마트라 섬 사이 순다 해협에 있는 무인도이다. 화산 폭발로 결국 바다밑으로 가라앉은 이 산은 1927년 해저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 1980년대 초까지 산발적으로 화산재를 내뿜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섬은 조각났고, 폭발음은 5천km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폭발로 인한 해일은 태평양 뿐만 아니라 대서양까지 영향을 미쳤다. 화산폭발 지점에서 1만7천km 떨어진 곳인 비스케이 만의 수위가 올라갔다. 대기권으로 높이 솟아오른 먼지층과 가스층은 화려한 일몰을 연출했고, 남반구의 평균기온은 대략 0.5도에서 0.8도까지 상승했다.

최악의 결과는 이웃한 자바 섬과 수마트라 섬에 끼친 재앙이었다. 거대한 40m 높이의 해일이 바다를 덮쳐 해안을 초토화시켰다. 거의 4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크라카타우 섬으로부터 40km 떨어진 수마트라의 마을은 불바다가 되었다.



▶1882년 노르웨이의 소설가 운세트 출생-
1928년 노벨 문학상 수상
▶1882년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3국동맹 결성
▶1875년 파리서 미터법 조약 조인
▶1822년 1901년 최초의 노벨 평화상
수상한 프랑스의 경제학자 파시 출생
▶1799년 프랑스 작가 발자크 출생



▶325년 그리스도교 최초의 공의회
`니케아 공의회` 개최(~6.19)

로마제국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25년 5월 20일 니케아에서 그리스도교 최초의 공의회를 개최했다. 교리해석 차이로 분열되어 있는 그리스도교를 통합하기 위해 지역적 종교회의를 일체 중지하고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모두가 승복할 만한 결론을 내리자는 취지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 본 아리우스파가 니케아 공의회 결정에 복종하고 있는 모습. 16세기의 프레스코화.


종교논쟁에 관심이 없는 서방에서는 대표들이 거의 참석치 않은 반면 한창 종교논쟁에 시달리고 있는 동방에서는 대규모의 파견단이 참석했다. 당시 동방에서는 3개 종파가 서로 교리문제로 대립하고 있었는데 특히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한 2개 종파의 반목이 심각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처럼 영원하고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를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 창조했으므로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아리우스파의 교리해석과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동일시하는 알렉산드리아 대주교 알렉산드로스파의 교리해석이 첨예하게 맞붙어 수백명의 아리우스파가 파문을 당하기도 했다.

콘스탄티누스는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아리우스파에 다소 불리한 결론을 내렸으나 계속적인 설득으로 그들로 하여금 최종합의문에 서명케했다. 교리논쟁을 불식시키고자 개최한 공의회는 결국 콘스탄티누스의 승리였다. 모든 주요 쟁점들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거의 만장일치로 결정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https://youtu.be/EEhBIl8fWE0







출처 네이버지식백과,반가운의hi스토리, 편집 달콤쵸콜렛